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은수연 지음 / 이매진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이제 아빠를 미워하던 것을 그만두려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용서받은 자로서 아빠를 용서합니다.

아빠가 성폭력 한 것을 용서합니다. 어린 나이에 성폭력으로 임신하게 하고, 낙태까지 경험하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수능 전날 밤 호텔에서 성폭력 하려다 말을 안 듣는다고 밤새 때린 것을 용서합니다. 강제로 행한 온갖 더러운 짓거리들, 그 짓들로 나를 상처 입힌 것을 용서합니다. 하루는 기절할 때까지 나를 떄리고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때린 뒤 다음 날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밤에 으슥한 산길에 차를 대놓고, 그곳에서 성폭력 한 것을 용서합니다. 내가 기침 감기가 심하게 걸려 계속해서 기침이 나오는데 그 짓거리 하겠다고 내 위에 올라타서는 계속 기침한다고 주먹으로 내 얼굴과 가슴을 내리치던 것을 용서합니다. 그 밖에도 참 많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풀어내려고 한 자 한 자 쓴 것이 이 책으로 묶였습니다. 이제 곧 책이 세상에 나옵니다. 그 책을 통해서라도 아빠가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아빠가 제게 상처 준 것이 무엇인지, 제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분명하게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아빠를 용서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필자가 18년만에 아버지를 용서하며 보낸 편지 중에서)

 

 

 

이 책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http://www.sisters.or.kr/index.php/subpage/pds/4에서 연재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에 연재되던 성폭력 치유일기를 한권의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극적으로 경찰에 신고하여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까지, 8년이라는 기간을 친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며 살아왔던 여성입니다.

 

94년도만 하더라도 친족 성폭력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그리 크게 부각되던 시절은 아니었기는 하지만, 필자는 다행히도 상식적인 사고를 갖춘 형사와 검사를 만나 수사와 재판 단계에서는 그나마 큰 고통은 겪지 않고 아버지를 7년 동안 감옥에 보낼 수 있었고(아버지가 했던 행동들은 7년으로도 사죄하기엔 부족한 기간으로 보이긴 합니다만...) 그 후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에는 성폭력의 경험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요, 수능 전날에도 강간을 시도했다거나, 초등학생 딸을 임신시켜 놓고는 낙태를 하러 데리고 가기 전, 당분간 성관계를 갖기 어려울테니 한번 하고 가자며 강간을 했다거나, 물 한잔을 떠 놓고 딸과 결혼하는 시늉을 하며 엄마를 앞으로는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 와중에, 가족들은 폭력이 두려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면서도 침묵을 지켰고, 필자는 8년 동안 학교에 가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 한 명을 두지 못한 채 외로운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랬기에, 필자가 자신을 돌보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삼았던, - 목사라는 직업을 가졌던 -  친아버지를 용서하기까지 1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들... 이런 고통어린 기억을 자기 안에만 조용히 숨겨 놓고 생각날 때면 숨죽여 우는 것 밖에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주변에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필자는 자신의 고통을 당당히 세상에 드러내는 길을,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받고, 또 위로해주는 길을 택했습니다. 물론 필자가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 아파했을지는 역시 상상하기 어렵긴 합니다..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필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을 필자처럼 당당히 대중 앞에 드러내지는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갖지 않는 데에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국내에서 근친 성폭력 생존자의 수기로서는 처음으로 출간된 이 책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손에 닿을 듯 말듯한 느낌으로 대했던, 근친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중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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