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
이원숙 지음 / 동아일보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대관령국제음악제에 다녀온 후 정트리오에 대한 책을 읽고 싶었는데 정트리오에 대한 책이라곤 정명훈을 주인공으로 한 음악동화와 정명훈이 낸 요리책(; 그나마 절판) 외에는 정트리오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가 쓴 이 책 뿐이어서 사실 육아에는 아직 큰 관심이 없음에도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할머니(지금은 돌아가셨지만)는 그냥 사람이 아닌 것 같다. ; 그 시절에 7남매를 억척같이 키워낸다는 자체만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아이들 한명한명마다 각자의 재능을 찾아주어서 3남매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나머지 4남매도 버젓한 사회인으로 키워내다니. 그 밑천은 스스로 장사해서 번 돈으로 모두 마련한 것이라니. 입이 떡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몇 가지는 최근에 방영된 승승장구 정명화 정경화 편에도 소개가 되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극성 엄마라고 할 수 있겠는데, 강남의 극성 엄마들과는 극성의 유형이 너무 달라서 그 말을 붙이기가 좀 그렇다. 일단은 아이가 7명이나 되었고 생업도 직접 꾸려야 했기 때문에 여타의 극성 부모처럼 늘 아이들 옆에 꼭 붙어 있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자신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그 아이의 옆에 꼭 있고자 노력했다고. 양보단 질로 승부한 셈. 전업맘에 대한 열등감에 늘 시달리는 직장맘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듯. 늘 교육비와 생활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돈의 소중함을 알고 경제적인 독립심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다. 정명훈도 어린 시절부터 시애틀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용돈을 벌었고, 정명화와 정경화가 줄리어드를 다니던 시절에도 방학이 되면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 와서 서빙과 계산을 도왔다. 요즘 극성 부모들 같았으면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데 무슨 아르바이트냐며 만류했을 일.

아이들을 키우면서 세 가지만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첫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둘째는 아이들의 실수를 야단치지 않는 것. 셋째는 약간 신선한데, 칭찬거리가 아닌 것을 함부로 칭찬하지 않는 것. 정경화, 정명훈의 경우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에다가 안 그래도 완벽주의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다가 대고 실수를 지적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미칠 것이기에 실수를 절대 야단치지 않고, 지금 실수를 했으니 더 큰 무대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테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격려를 했다고. 그치만 아무 근거 없는 추상적인 칭찬은 아이를 오만에 빠지게 하거나, 혹은 오히려 열등감에 빠지게 할 수도 있기에 칭찬거리가 있을 때 칭찬을 했다고. 그냥 "똑똑하다", "예쁘다"가 아니라, "한번 들은 노래를 그렇게 잘 따라 부르니 참 똑똑하다."든가, "머리를 그렇게 묶으니 참 예쁘다."는 식으로. 그렇게 해야 아이가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원래의 목적이었던, 정트리오에 대해 알게 된 몇 가지.

* 정명화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첼로를 잡기 시작했다. 음악적인 기초가 탄탄했기 때문에 그때 첼로를 잡고도 대성할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재능이 반드시 5, 6세 때 발견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줌.

* 정명훈은 줄리어드 음대에서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을 제안받고도 줄리어드의 지나치게 경쟁적인 분위기가 싫어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학교인 매너스 스쿨을 택했고, 그곳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함께 전공하면서 촉망받는 학생으로 인정받아 자신감을 키우게 된다. 보통의 부모라면 줄리어드 이름값만으로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당연히 줄리어드를 권유했을텐데, 자식의 특성과 잠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면 지지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결정.

* 정경화와 핑커스 주커만은 갈라미안이라는 같은 선생 밑에서 배우던 경쟁 관계에 있었는데, 함께 레벤트리트 콩쿠르에 나가 공동우승을 했다. 사실 연주는 정경화가 훨씬 잘 했지만, 핑커스 주커만과 같은 유대인인 아이작 스턴이 공동우승을 고집하여 콩쿠르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우승을 줬다(물론 이것은 이원숙 여사의 버전이므로 객관성이 완전히 담보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 정명훈이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2등을 했을 때 정부에서는 카 퍼레이드를 해 준다. ;;; 외국에 나가 콩쿨에서 수상을 하는 것과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동일하게 대한민국의 존재를 해외에 증명하는 일로 인식되었던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