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 탱고를 찾아 떠나는 예술 기행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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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선생님의 새 책이 나왔다. 작년에 빈에 관한 여행 서적을 읽고 또 유럽에 가게 된다면 빈에만 1주일 동안 머무리라 다짐했었는데 그 꿈을 실현하기도 전에 또 다른 장소에 대한 책이 나와버리다니. 물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게 될 가능성은 빈에 갈 가능성보다는 훨씬 희박하긴 하겠지만.. 

 

탱고 춤에 관해서는 입문서가 있는 거 같은데, 탱고 음악에 대해서는 국내에 이렇다 할 책이 없는 가운데 알아주는 음악 안내자인 박종호 선생님이 이런 책을 낸 것이 몹시 반가웠다. 뭐 평소에 탱고 음악을 아주 즐겨듣는 편은 아니긴 한데, 언젠가 우연히 접해서 사게 된 피아졸라의 앨범을 직장 초년생 때 혼자 야근하거나 주말에 일을 하면서 자주 틀어놓았었던지라 피아졸라를 들으면 그때 기억에 젖게 된다. 옆방에서 역시나 야근을 하시던 부장님이 퇴근 전에 인사를 건네러 잠시 우리 방에 왔다가, "피아졸라를 좋아해요?"라고 물으셨던 기억이 가장 생생한데, 자타공인 클래식 애호가인 부장님께 음악과 관련한 관심을 받았다는 감격스러움? 뭐 그런 (부장님에 대한 나의 선망을 알지 못한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감정도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생애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1년이 아니었던가 싶다. 긴 어둠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내가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의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 부장님, 동료들과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느낌, 부장님에게 일을 열심히, 진지하게 한다는 인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 업무가 너무나 흥미로워서 평생 일만 하고 살아도 아무 불만 없을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 그 이후의 4년 동안에는 부분적으로는 존재했지만 총체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때의 1년이 더더욱 아련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위에 피아졸라의 애잔한 선율이 얹혀지는 것이다.

 

각설하고 다시 책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보자면, 이 책은 탱고에 대한 책이기도 하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탱고와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박종호 선생님은 탱고 음악에 대해 쓰기 위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2주 동안 체류하면서 다양한 탱고 클럽에 가서 탱고 춤과 음악을 감상한다. 말벡 포도주를 곁들여 아르헨티나산 스테이크를 썰면서 탱고를 혼자 감상하는 여행이라... 거의 혼자 놀기의 지존급이 아닌가 ;;; 클럽에서의 탱고 감상의 추억을 하나씩 공유하는 가운데, 탱고 춤과 음악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어우러진다. 유럽에서 일자리를 찾아 아르헨티나의 부두 지역으로 이주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려 사내들끼리 서로 부둥켜안고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탱고의 기원이라고 한다. 당시 함께 이주해 온 여자들 숫자가 워낙 적다 보니, 남자들끼리 외로움을 울부짖으며 춤을 추게 되었던 거다. 춤을 추려고 하니 당연히 음악이 필요하다. 이렇게 탱고 음악은 춤으로부터 시작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탱고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르면서 독자성을 갖추게 된다. 주로는 남자가 여자한테 실연당하는 내용인데, 역시나 여자들이 너무 적은 까닭이다.

 

탱고 음악이 체계화되면서 탱고 반주를 위한 악기도 발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중심 악기로 자리잡은 것이 바로 반도네온이다. 반도네온이 아르헨티나 고유의 악기가 아니라, 독일에서 들여온 악기라는 것도 흥미로운 점 중 하나다. 반도네온이 만들어내는 그 애잔하게 심금을 울리는 소리는 왠지 독일의 정서랑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은데.... ㅎㅎ 본래는 탱고 연주 앙상블이 바이올린, 플루트, 기타로 주로 구성되었었는데, 반도네온이 폭풍 인기를 끌게 되면서 반도네온이 플루트를 밀어내고, 나중에는 피아노가 기타의 자리에 주로 들어왔다. 거기에 콘트라베이스가 추가되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탱고가 아르헨티나에서 자리잡아 가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류층 문화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는데, 탱고를 고급 문화에 끼워주지 않고 유럽 문화만 선호하는 아르헨티나의 상류층들의 뒷통수를 칠 만한 일이 발생한다. 20세기 초에 우연히 파리에서 탱고 음반이 발매되었는데, 갑자기 그 음반이 큰 인기를 끌면서 파리의 엘리트와 상류층 중심으로 탱고가 유행하게 된 거다. 그러면서 다시 그 분위기가 아르헨티나로 다시 유입되고, 결국 탱고가 국민 음악으로서의 자리를 잡게 된다. 비유가 천박하지만 SM의 음악은 음악도 아니라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유럽 여학생들이 동방신기와 샤이니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고 한류 음악의 위상에 슬그머니 놀라는 형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탱고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 가면서 작곡가와 작사가가 함께 탱고 음악과 가사를 만드는 경향이 나타나고, 탱고의 가사가 단순한 실연의 노래에서 이별의 아픔과 환멸을 좀더 섬세하게 표현하는 시적 노래로 발전하게 된다. 그 이후의 사회상을 반영하여 탱고 가사의 주제가 변천하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한창 아르헨티나가 근대화되던 1900년~1920년까지는 도시화로 인한 각종 부작용들이 나타나면서 주로 어린 시절이나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노래하게 되었고, 세계 경제공황의 여파가 미친데다가 쿠데타까지 일어났던 1930년대에는 사회와 인간 전반에 대한 절망과 비탄을 노래하게 된다. 1940년대에는 탱고 가사가 문학의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고 평가되기도 했다는데, 이 당시 탱고 가사를 쓴 사람 중에에서는 - 비록 그 개수가 많지는 않지만 - 보르헤스의 이름이 단연 눈에 띈다.

 

탱고의 인기는 1950년대에 거의 정점에 달했지만, 헐리우드 문화가 유입되고, 룸바, 맘보, 차차차, 로큰롤 같은 외국 댄스 음악들이 들어오면서 탱고의 인기는 급격히 식었고, 탱고 무용수와 클럽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탱고 음악가들은 일자리를 잃으면서 고난의 세월을 겪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 자체로서만 살아남아야 헀기에, 춤을 수반하지 않는 연주 자체의 발전과 세련화에는 좀더 기여한 면이 있기도 하다. 그런 과정에서 나타난 최고의 탱고 음악가가 바로 아스토르 피아졸라이다. 피아졸라는 반도네온 연주자로서 18살 때부터 밑바닥에서부터 탱고 음악을 경험하면서 탱고를 작곡하게 되었고, 클래식의 구조를 탱고에 도입하기 위해 유럽으로의 유학을 감행한다. 사실 유학을 가서는 나디아 불랑제라는 유명 음악교사에게 클래식을 배우면서 마음먹은대로 잘 되지 않아 위축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어느날 혼자 탱고를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던 피아졸라에게 나디아 불랑제가 "지금 연주한 것이 당신의 진정한 음악이야. 그것을 그만두지 마. 지금까지 당신이 나에게 보여 주었던 클래식들은 유럽 문화에 대한 모방에 지나지 않았어."라고 말을 한 후, 피아졸라는 더이상 클래식을 답습하려고 하기보다는 탱고라는 자신의 음악적 원천을 중심에 놓고 그것을 클래식과 결합시켜 아디오스 노니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리베르탱고 같은 감상용 탱고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렇지만 역시나 탱고가 처음에 상류층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처럼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 곡들도 아르헨티나에서는 잘 안착하지 못했는데, 또다시 유럽에서 탱고 열풍을 일으키면서 아르헨티나로 역수입되었고, 반도네온을 연주하던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아르헨티나 최고의 오페라극장인 콜론 극장에서의 공연을 마침내 한다.

 

이후 탱고 곡들은 저명한 클래식 연주자들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는데, 그 연주자들 중에서는 역시나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낳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을 빼 놓을 수 없다. 비록 바렌보임은 9살 때 이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나긴 하지만, 45년이 지나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해서 반도네온 연주자 로돌포 메데로프와 만나 의기투합해서 예정에도 없이 탱고 바를 방문하고,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불려나온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엑토르 콘솔레와 즉흥 탱고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 탱고 바에 있던 손님들은 얼마나 횡재한 기분이었을까. 그런 즉흥 연주의 추억으로부터 나온 음반이 바로 아래 음반이다. 마침 집에 있길래 지난주 내내 이 책을 보면서 함께 음반을 들었는데, 아.. 정말정말 좋았다. 이 음반의 첫 곡은 내 사랑 부에노스 아이레스(Mi Buenos Aires querido)인데, 바렌보임이 치는 이 곡의 메인 선율을 듣고 있자면 오랜만에 고향땅에 돌아와 길을 걸으며 담벼락 한자락한자락을 손끝으로 만지면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초로의 신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무 과장스럽다고 욕하시지 말고 한번 들어보기를 권한다 ^^;;)  

 

                       

 

듣는 김에 바렌보임이 탱고 연주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서 유튜브 검색을 하다가 대박 영상을 발견했는데, 2006. 12. 31.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바렌보임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나선 Tango Argentina 실황 연주이다. 이 책에도 추천 DVD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클래식을 듣기 시작하면서 새삼 유튜브가 보물창고인 걸 느낀다. 이 콘서트가 열린 장소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7월 9일 거리', 왕복 24차선에 폭이 144미터인 세계에서 폭이 가장 넓은 도로 한복판에 있는 오벨리스크 앞에 설치된 야외 무대인데, 연주회가 시작될 때에는 밝은 저녁이지만 뒤로 갈수록 어둠이 드리우면서 건물 위의 네온사인이 조명 역할을 해 주는 가운데서 연주회가 진행된다. 그 장소도 멋지거니와, 카메라가 무대와 도로에 자리잡은 관객들을 번갈아가면서 비추는데, 관객들의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들 또한 보는 사람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지게 만든다. 어떤 관객들은 음악에 맞춰서 빈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탱고를 추기도.. ㅋ 연주회는 거의 클래식 탱고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는데, 반도네온 없이 오케스트라 연주만 하기도 하고, 반도네온 연주자인 레오폴도 페데리코가 이끄는 반도네온 팀인 티피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도 하고, 바렌보임이 혼자 피아노로 막 연주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오케스트라 지휘하기도 하고, 탱고 가수가 나와 노래도 부르고, 춤 추기도 하고, 유명한 탱고 작곡가인 오라시오 살간이 자기 곡 연주하기 전에 나와서 막 인사도 하고.. 암튼 다채롭고 감동적이며, 연주 또한 훌륭하다. 음악에 너무 빠져서 약간 얼빠진 듯한 표정으로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지휘를 하다가 한곡 끝나면 씨익 웃는 바렌보임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또한 무척 반갑다. 바렌보임이 스페인말로 뭐라뭐라 중간에 계속 얘기하는 걸 알아들을 수 없어서 좀 유감스럽긴 하지만.. (Dvd도 있는 걸 공짜로 보는 게 어디냐) 암튼 위 음반과 영상만큼은 시간 날 때 한번 봐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ㅋㅋ

 

                     

쓰다 보니까 굉장히 길어졌는데, 탱고에 대해선 이 정도로 얘기하면 충분할 거 같고, 사실 이 책에는 탱고랑은 크게 상관없는 아르헨티나와 관련된 인물들도 많이 등장한다. 에비타 페론, 체 게바라, 파블로 네루다, 디에고 마라도나 등등. 뭐 다른 부분들이야 그리 이질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는데 마라도나를 비롯한 아르헨티나 축구 얘기는 좀 이질적이었다. ㅋ 24시간 비행기타고 아르헨티나 가서 축구경기 관람했는데 아무데도 그 경험에 대한 글을 못 쓰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었다고 이해해 두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여러 관광 명소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콜론 오페라 극장도 아니고, 에비타 페론의 묘지도 아닌, 산타 페 거리에 있는 '아테네오 서점'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구조가 특이한데, 과거의 오페라 하우스를 서점으로 개조한 건물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무대는 레스토랑 겸 까페가 되었고, 1층의 객석과 2, 3층의 발코니는 서가가 되었고, 박스석은 사람들이 앉아서 쉬면서 책을 읽는 곳이 되었다. 천장에는 오페라 하우스 시절부터 있던 천장화가 그대로 남겨져 있다. 만에 하나 내 생의 어느 순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게 될 기회가 있다면 다른 곳을 제쳐두고 여기부터 가 보게 될 것 같다. ^^ 별 만점을 주고 싶었지만, 출판사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박종호 선생님이 여기에서만 책을 내시는 건 좀 아쉽다) 별 하나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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