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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꿈 - 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시론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이가림 옮김 / 문예출판사 / 198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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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 그러나 이 책 이제는 누군가 다시 번역할 때도 됐다. 너무나 빈번한 번역체(?) 문장이 독해에 방해가 된다.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라, 한글로 풀어내질 못한 기계적 번역. 80년대 말(중도 포기), 90년대 중반, 지금 이렇게 세번째(?) 읽는데, 솔직히 짜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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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역에서 2018-05-04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소 짜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읽고 그냥 치워두기가 아까워, 바로 한 번을 더 읽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다. 책과 무관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에선 <불의 정신분석>을 언급한 사람은 봤어도 이 책을 언급한 사람은 기억에 없다.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함에도... 유치한 도식을 펴 비교하자면, <물과 꿈>6-4<불의 정신분석>이 내 평가. 그러기에 외국, 특히 프랑스 문단에선 이 책이 인용되는 걸 종종 보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유독 평가절하된 느낌인데, 이 책의 정당한 가치를 <불의 정신분석>이 터무니없이 빼앗아갔다고 보는 게 맞을 듯.
 
대장 몬느
알랭 푸르니에 지음, 김치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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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재미있다! 무지하게 재미있다!
그 재미만큼 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먼저, 작가 알랭 푸르니에.
거의 모든 책에서 그는 <대장 몬느> 한 편을 발표하고 28세에 요절했다고 나온다. 요절했다는 말은 부당하다. 전사했다고 해야 한다. 인류의 악습인 전쟁에 휘말려 전쟁터에서 죽었다. 1차 세계대전 때 모든 교전국들이 그러하듯 프랑스에서도 수많은 작가가 전쟁터에서 죽었다. 모든 죽음이 다 고통일진대 유독 작가의 죽음만을 끄집어내어 가슴 아파하는 건 옳지 않겠지만 이렇게 재능 넘치는 작가가 인류의 가장 부당한 행위, 전쟁 때문에 죽어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건 부당하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한번 더 부당하다.

 

최근에 읽은 프랑스 출판史의 증언인 <가스통 갈리마르>의 한 대목.
"전쟁이 끝났다. 프랑스는 승리했지만 프랑스 국민이 하얗게 질리도록 피를 흘렸다. 131만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110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1914년 전에는 부유했던 나라가 폐허로 변했다.
<.....>
많은 사람이 '겁쟁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가스통 갈리마르)는 초연했다. 그의 결심은 단호했다. 도덕 교과서, 심지어 입증된 영웅에게서마저 어떠한 교훈도 얻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군인들의 죽음에 그의 냉소주의가 간혹 흔들리기는 했지만, 인플루엔자에 걸리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1918년의 어느 날 저녁, 뷔퐁 병원에서 속절없이 죽어간 친구 피에르 마르가리티의 죽음에 더 가슴 아파했다. 하지만 그의 냉정한 가슴을 뒤흔들어놓은 수치가 있었다.
450! 작가재향군인회가 발표한, 전쟁으로 사망한 작가의 수였다."
저 중 한 명이 알랭 푸르니에다.

 

-나의 <대장 몬느>
나의 어린 시절에도 몬느 같은 대장이 하나 있었다. 주인공과 몬느처럼 동갑은 아니었고 네 살 위였다. 다른 건 다 기억이 나는데 하필 이름 하나가 떠오르질 않아 안타깝다. 명자가 들어간 것 같은데... 명섭? 재명? 그 형 생각이 무척 난다.
훤칠한 키에 항상 웃음 띤 환한 얼굴. 그 표정이 아주 근사했다.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가릴 나이가 아니어서 그때는 무심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생긴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얼굴의 미소와 여유로움은 남들과 전혀 다른 그만의 특별함이었다. 그 얼굴에서 나오는 목소리도 맑고 풍성했다.
대장 OO.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부르자. 그의 등장은 초등학교 3학년 말쯤인 것 같다.
대장 OO는 모든 걸 잘 했는데, 노는 방면에서, 특히 스포츠에서 발군이었다. 축구, 농구, 권투 그리고 아이스하키. 웬 아이스하키?

겨울이면 우리동네 얼음판에선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는 게 아니라 동네에 흔한 건축자재를 주워 하키 스틱을 만들고, 그걸 들고 아이스하키를 했다. 대장 OO의 발상이었다.

-무너진 대장 OO.
저 중에서 특히 돋보인 건 농구였다. 큰 키에 유연한 동작. 주위를 의식할 줄 아는 특별한 매너와 폼. 그래서 그가 하는 건 일단 보기에 아주 좋았다. 한마디로 '우리 동네 신동파!'
<그런데 어느 날.....>

 

-잃어버린 이름들.

-이야기로서의 소설.

-약간의 아쉬움.

-작가와 대장 몬느의 방.

이걸 다 쓰면 양이 너무 많아질 것 같다. 그래도 써야만 할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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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초니에레 - 나남소네트 2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이상엽 옮김 / 나남출판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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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초니에레는 전체 366편으로 된 사랑의 시다.

대부분이 소네트(4행-4행-3행-3)이며 몇편의 장시로 이루어졌다.

국내엔 나남출판과 민음사, 이렇게 두 종의 칸초니에레가 나와 있다.

그러나 둘 다 너무나 미흡하다.

두 권을 다 봐야 그나마 조금 본 기분이 들 것 같다.

 

나남출판: 366편 중 100편을 선별해 번역.

민음사: 366편 중 1번부터 50번까지만 번역.

 

처음 책을 고를 때 나남출판 게 분량이 좀더 많길래 그걸 사서 봤다.

보고는 빠진 것들이 궁금해 도서관에서 민음사 걸 빌려와 대조해 봤다.

빠진 걸 찾는 거보다 중복된 걸 찾는 게 더 빠르다.

 

두 책에서 중복된 건 불과 20. 민음사 기준으로 30편이 빠졌고, 그래서 30편이 다르다.

결국 두 책을 모두 봐야 130편을 가까스로 맞출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복된 게 적어 오히려 이득이다.

민음사 책을 새로 본다고 해도 지나친 아닌 게 된다.

 

페트라르카.

이름부터가 겁나 멋있다. 물론 성일 테지만.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나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퐁스 도데의 <>을 '특별히' 기억한다.

뤼벨롱 산과 소르그강.

뤼벨롱 산은 별의 무대다. 목동이 산다. 그 산 아래에서 소르그 강이 발원하는데,

거기가 보퀼리즈다.

그곳에서 살았다, 페트라르카가!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강물에 빠져 집에 가질 못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와

양치는 목동과 같이 밤을 보내게 만든 소르그강.

그 강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아비뇽이 나온다.

학창시절 아비뇽 유수로 배웠던 그 아비뇽.

 

이번엔 다시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보자.

, 아비뇽에서 소르그 강을 거슬러 동쪽으로 가면 도달하는 보퀼리즈까지.

이 지역이 페트라르카의 무대다. 아비뇽에서 보퀼리즈까지.

특히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집이 틀림없이 있었을 보퀼리즈.

시를 읽다가 그 곳을 말하는 때면 괜히 더 두근두근거린다.

 

"이 달콤한 곳 사랑이 내 가슴을 옥죄어 올 때

 수없이 울며 돌아오는 곳이라오"

 

"한 번은 요정의 모습으로 혹은 다른 여신으로

 소르그 강의 가장 깊고 맑은 물에서 나와

 강둑 위에 앉아 있었고

 

 한 번은 싱싱한 초원 위에서

 이승의 여인처럼 내게 연민을 갖는 표정을 보이며

 꽃을 따는 그녀를 나는 보았네"

 

지금도 보퀼리즈엔 페트라르카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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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비르지니 - 그린북스 92 그린북스 92
생 피에르 지음 / 청목(청목사) / 198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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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비르지니, 1788> 베르나르댕 드 생 피에르(1737-1814) 著.

이 책은 라마르틴(1790-1869)에게 분명 경전인 듯하다.
<폴과 비르지니>는 라마르틴의 소설 <그라지엘라, 1852>에서 몇 차례 비중 있게 언급이 된 바 있는데 <호반의 연인, 1849>에서도 수차례 등장한다.

심지어 여자 주인공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나는 비르지니의 고향과 가까운 열대지방의 한 섬에서 태어났어요. 그곳은 시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꿈의 나라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다 보니 자연 <폴과 비르지니>에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게 됐다.

 

인터넷, 이 문명의 이기는 우리에게 물릴 만큼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우선 비르지니의 고향이란 그곳은, 남아프리카의 섬 마다가스카르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지명은 모리셔스 섬이며 현재 독립국가인 모리셔스공화국이다.

과거 네덜란드-프랑스-영국의 순서로 섬을 지배한 이력이 있다.

 

이어지는 관심사는 소설의 줄거리.
하지만 개인적으로 난 줄거리엔 별 관심이 없다. 연애소설에서 줄거리에 집착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연애소설이란 남녀 두 사람의 마음을 작가가 어떻게 싹 틔우고 꽃피게 하는지, 그리고 다행히 열매를 맺는다면 그 모습이 어떠한지, 하나하나 장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만이다. 그게 낭만주의 소설을 가장 낭만주의적으로 감상하는 태도가 아닐까.

 

한편 문명의 이기는 과할 정도의 정보들을 제공해 주지만, 정작 현실에선 다른 문제들이 남는다. 작품 자체를 접할 길이 없는 것이다. <폴과 비르지니>는 과거 60년대, 80년대 두 차례 출간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시중에서 중고 서적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리저리 헤매던 중 90년대에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금성판 세계문학대전집'에 <폴과 비르지니>가 포함돼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도서관을 뒤져보니 다행히 책이 있다. 더 다행인 것은 최근 집 근처에 새로이 도서관이 생겨서 가까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점이다.
도서대출은 학교를 졸업한 이래 처음으로 해 보는 것이니 어언 사반세기만이다.

 

그리고 전집엔 운 좋게도 라파예트 부인의 소설 <클레브 공작부인>까지 들어있다. 일거양득. 실은 <클레브 공작부인>에 <폴과 비르지니가> 끼어있는 거라고 해야 맞지만 어쨌든 내게 둘 중 하나는 보너스인 셈이다.
작가 라파예트 부인은 카뮈가 그의 메모인 작가수첩에서 극찬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문체는 두 가지가 있다. 라파예트 부인과 발자크. 전자는 디테일에서 완벽하고, 후자는 큰 덩어리를 다루는 데 능해서 네 개의 장 정도만 읽어도 벌써 그의 호흡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고 한 바로 사람.
그 극찬이란 실상 발자크의 몫이지만.

 

*사진: 파리식물원에 조성된 <폴과 비르지니>, 그리고 저자인 베르나르댕 드 생 피에르의 기념 조상

 

 

*사진: 사반세기만에 대출 받아본 책. 금성판 세계문학대전집, 7권 <클레브 공작부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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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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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김남주 이 사람 무지 웃기는 사람이다.
다음은 김남주가 번역한 민음사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작품 해설 끝부분이다.

 

"(전략) 페스트균처럼 뻔한 결말로 독자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멜로드라마에 머무는 대신, 갑자기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지는 각성의 '엔딩'을 선사하고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강을 다시 읽는다."


작품 해설 하다가 밑도 끝도 없이 불쑥 페스트를 들먹며 뻔한 결말이라는 둥, 의식을 마비시킨다는 둥 무언가를 비판하고 있다.

저 지적이 분명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두고 한 비판이란 것쯤은 누구나 알 터.

 

그래서 저게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작품 해설 중에 밑도 끝도 없이, 아무런 맥락도 없는 상태에서 페스트를 들먹이는 게 웃기다.

앞전에 어떤 도입이라도 있다면 모르겠다. 그냥 불쑥 등장하는 비판이다. 말 그대로 뜸금없는 비판. 앞.뒤 아무런 맥락이 없다. 저 무슨 억하심정이란 말인가?

 

둘째, 소설에서 독자들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부류가 있다면 오히려 이런 연애소설들이 아니었던가? 그렇다고 난 연애소설 무용론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지금 라마르틴의 <그라지엘라> 읽고 있다. 이거 원단 연애소설이다)

그래, 김남주 말에 억지로라도 동의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김남주가 번역해서 낸 이런 연애소설들은 도대체 어떤 의식을 고양시킨다는 거지? 어떤 각성을 가져온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지.

 

그리고 소설 페스트가 단지 의학 관련 드라마적인 소설이던가?

전쟁 상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그 고립된 상태를 페스트균 전염 상태로 빌어온 것 아니었나? 그것도 모르고 읽었나 이 사람이? 그리고 사고의 치밀함 같은 건 마이동풍이었나? 그 유명한 제사도 눈에 안 들어왔단 말인가?

"일종의 감금 상태를 다른 종류의 그것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마치 무엇이든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합리적이다. -다니엘 디포-"

이 사람 페스트를 읽기나 읽은 사람인가 의문이 든다. 사람이 왜 이리 편견이 심한고?

 

저게 작은 부분이란 건 나도 안다. 그러나 질적으로 심대한 무게를 갖는 문장이 아닌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맛 있게 밥을 먹다가 마지막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는데 그게 쥐똥이었던 거다. 이 기분 그대로다. 전체 양으로 보면 그저 한 숟가락. 그러나 이게 눈 감고 넘어갈 사소한 문제일까?

 

한 줄 요약. "뭔가를 찬양하고 싶거들랑 그거 하나만 하시오. 애먼 사람 잡지 말고."

한 줄 추가. "아니면 정당한 방식으로 제대로 평을 하든가. 뭐요 저게? 속 좁은 애들 편견 덩어리지."

 

학창시절에 <브람스......>를 읽고서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려고 읽었는데 사실 나이 들어 읽기엔 간질간질했다 유치해서. 그래도 그건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작품해설이랍시고 떠드는 저 황당무계한 말이 끝내 기분을 잡쳐놓았다.

사강이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싫지도 않았는데 이젠 김남주 저 사람이 저런 식으로 찬양하는 꼴을 보자니 솔직히 싫어지려고 한다.

이 사람이 불법 번역물로 돈 좀 벌더니 보이는 게 없나 보네.

도대체 이 사람이 번역한 책 중에 저작권료 주고 적법하게 번역해 낸 책이 몇 권이나 되나?

그렇게 살았으면 사람이 입이라도 진득해야지.

그나마 이건 라이센스를 얻은 책이군.

 

그리고 김남주뿐 아니라 이젠 제발 불법 번역물좀 그만 찍어내자.

언제까지 저작권 무시하고 해적판만 이렇게 찍어낼 건가? G20 이네 뭐네 떠들어대면서 맨 후진국 행태만 대대손손 물려줄 건가?

 

내가 마이 리뷰 이런 거 한 번 써본 적이 없는데 기분 엿 같아서 썼다. 옛날엔 범우사 판으로 읽었던거 같은데 괜히 민음사 거로 사서 읽고 기분만 조졌네ㅡ,ㅡ

 

 

 

*한 달 후(9월 26일)에 추가*

 

『나는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 현대소설을 단 한 편밖에 알지 못한다. 카뮈의《페스트》다. 그러나 그건《페스트》가 이별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카뮈는 심지어 이별이 주테마가 되길 바랐다. 왜냐하면 그는 이별을 그가 우의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있는 그 전쟁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다. 카뮈는《작가수첩》에 1940년대 문학이 에우리디케 신화를 활용하고, 남용하고  있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그 설명을 찾아낸다. "숱하게 많은 연인들이 이별했기 때문이다."』 <로제 그르니에, 책의 맛,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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