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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감 -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ㅣ 창비청소년문고 31
김중미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평점 :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가 말하길, 강연집을 낼 때 겁을 덜컥 먹었다고 했다.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소설이나 동화 뒤로 숨었던 작가가 독자 앞에 벌거벗고 서는 느낌이었다고.
작가의 개인적인 삶과 생각과 신념이 담긴 책을 읽는 것은 독자인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신념과 반대되는 신념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큰 생채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데는 나에게도 각오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 읽은 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과, 이 책을 쓴 김중미 작가에게 마음으로부터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내가 행복해지는 일은 나만의 성취로만 이룰 수 없어요.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가 사는 세상이 변해야 해요."
지금까지 짧은 시간을 살아오며 수백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동화책부터 시작해 소설책, 때로는 수필, 자기계발서, 만화책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그 중 내가 눈물짓게 한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책 정도일까.
그리고 그 책들 중 이 책이 포함되었다.
저자는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살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목소리들이 이 책에 담겨 내게까지 닿았다. 사회가 외면해 온 목소리가 이 책에서는 하나하나 모두 주인공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안타까워 울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 첫 번째로 소개되는 사람은 시각장애인 '진영이'이다.
인대를 다쳐 얼마간 목발을 짚고 다닌 적이 있다. 그때 강의실에서 기숙사까지 올라가는 길의 보도블록이 얼마나 울퉁불퉁한지 처음으로 뼈저리게 실감했다. 차라리 차도 쪽이 더 매끄러웠을 정도여서 아예 인도에서 내려 아스팔트로 다녔다. 사람 다니는 길보다 차 다니는 길이 더 평이하다니,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딛으며 실소했다.
나야 잠깐 다쳤으니 잠깐만 고생하면 되는데, 평생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없는지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 진영이에게 이런 세상의 장벽은 너무도 높았다. 아마 세상이 자신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으리라.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복지 시설이나 편의 시설이 거의 전무하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나 장애인용 좌석이 있으면 뭐하나, 애초에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든 세상이다. 장애인이 길에서 잘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았을 때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곧 장애인 배척, 차별, 혐오로 이어진다. 이래서는 안 된다.
"평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그저 함께 사는 것이지요."
김중미 작가의 작은따님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학교는 교복 치마 길이를 심하게 단속했다고 한다.
내가 기회만 닿으면 외치는 말인데, 학교는 인권의 사각지대다.
일반 성인에게 적용하면 인권침해로 들고일어날 만한 제도를, 학생에게 적용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납득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정말 많다. 교복 치마 길이 역시 그 중 하나다. 미니스커트 길이 재던 때가 몇 년도인데 아직까지 학교가 치마 길이를 재고 있다니.
현재 교육제도의 폐해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며칠 밤낮을 주워섬겨도 끝나질 않겠지만, 그리 길게 말하지 않겠다. 수시 제도가 등장하며 교사는 더욱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교사의 마음에 따라 생기부가 달라지고, 대입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들은 더욱 교사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학생보다 웃어른이라는 데에서 오는 권위, 교사라는 지위가 주는 권력. 학생들은 교사가 인신공격성 발언을 해도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참고 넘어가는 법을 익혔다.
이 나라는 청소년이 목소리를 낼 법한 기회도 자리도 전무하다. 그럴 기회나 자리가 생겨도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은 드물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탓이다. 이게 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제도인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분명 파멸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학교 안에 있는 벽을 허물어 인권이 존중받고 학생과 교사가 서로 소통하려면, 학생들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해요."
장애인, 어부, 농부, 이주 노동자, 흑인 무용수, 양심적 병역거부자,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동안 외면해 왔던,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순히 들려줄 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보고 느껴 온 사회문제를 하나하나 생각하고 정리해 보았다.
한 문제만 들여다보아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둘이 아니었으며, 그 순간에도 뉴스는 울음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너무도 막막했다.
하지만 이런 책이, 이런 사람들이, 내가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나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는데도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해지며 많은 것을 얻은 듯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김중미 작가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책 속 구절 중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아, 나도 저런 어려움에 처할 수 있어. 저렇게 아플 수 있어.' 하고 상상하고 연민을 느낀다면 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어요."라는 말이 있다.
'나도 저런 처지에 놓일 수 있어서'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내가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아도, 그것이 내 일이 아니라도,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받지 않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의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다 저마다 생긴 대로 살아요.
내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면 나를 억압하는 세상이 좀 달라질 것 같아요.
저는 여러분 하나하나가 다 세상에 그런 균열을 내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숨 쉴 만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