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 ㅣ 필로테라피 5
셀린 벨로크 지음, 류재화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11월
평점 :
"좌초하지 말자. 실패하지 말자.
이런 다짐이 어떤 용기가 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의 새로운 불만족과 끝없는 불안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책을 열고, 몇 장 넘기면서 아, 상당히 위험한 책을 골랐구나, 라고 생각했다.
쇼펜하우어,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조차 이름 정도는 들어봄직할 만큼 이름 있는 철학자이다.
나 역시 철학을 잘 알지 못해서 '쇼펜하우어'하면 고슴도치의 딜레마 정도밖에 모른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느끼길, 쇼펜하우어는 참 범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우리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것은 행복한 나날들이 불행한 나날들에 자리를 내줄 때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기쁨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그것을 맛보는 능력은 떨어진다.
습관이 된 기쁨은 더 이상 기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라는 제목을 보고, 나는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렇듯 '어떻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서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내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쇼펜하우어에게 그것은 차선순위이고, 그는 먼저 '우리가 왜 괴로운지'를 탐구한다.
그 탐구 과정이 놀랍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행복해지려 애쓰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행복을 손에 쥐려 해 봤자 행복을 멀리 도망간다. 행복은 부정적인 것에 가깝다. 삶은 '살고자 하는 의지'에 따른 투쟁이고, 거기에서 승리를 거머쥐어 봤자 그것은 잠깐에 불과하다. 곧 우리는 다시 투쟁 속으로 뛰어들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면 지치게 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삶의 목표는 자연성 본성에 가까운 '의지'라 불리는 것에 의해 결정되며 이성은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진정 행복하지고자 한다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그만두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버려야 한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정말 파격적이었다. 지금까지 윤리와 사상이나 생활과 윤리에서 배워 온 철학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철학이었다. 이것을 염세주의라고 하던가?
인간과 삶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본다는 이유로 싫어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전혀 색다른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그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사람과 나누는 아주 좋은 대화라고 하는데, 나는 철학책만큼 이 말과 어울리는 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대화체가 아닌데도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옆에서 듣는 느낌이었다. 나는 때때로 그의 말에 맞장구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였으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의 철학은 그와 다르다고 반박하기도 하였다. 좋은 말상대를 만났다고 악수라고 하고픈 마음이었다.
"선적인 시간으로부터 구원된 세계를 보는 것,
그 세계의 모든 것이 여러 가능성 형태로 현존하는 것,
이것이 우리를 시간의 압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우리는 이제 '고통의 대가를 치를 만한 어떤 것'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의무로부터 벗어난다.
행해지지 않은 것, 빛을 보지 못한 보물들, 보지 못했거나 창조되지 못한 아름다움은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발현될 것이다.
이 다른 사람들이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변형일지 모른다."
이 지독한 염세주의자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연민을 제시한 것 또한 참으로 흥미롭다.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 '자기애'로부터 주의를 돌리라는 것이다.
"자애는 자아를 포기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어떤 감정이나 욕망 따위도 포기하게 만든다.
자애는 범사랑을 만든다."
비록 염세주의의 형태를 띠었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 않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평화를, 인생을 사랑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진하고 깊고 마음껏 투쟁하며 살다 가고 싶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욕망이라고 생각했기에, 마음껏 욕망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고자 했다.
쇼펜하우어의 사상과 완벽히 반대다.
당연히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이다. 나는 그 고통조차 내 삶의 일부로 함께 가져가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날 더 강하게 만들 거라고.
나와 반대되는 태도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기뻤다. 그것이 쇼펜하우어라서 더욱 즐거웠다. 한바탕 열띤 토론을 나눈 채 진심으로 상대에 대한 경외감을 담아 악수를 나눈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