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국자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질투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아이들은 과거에 관심이 없었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였고, 결말도 닫힌문처럼 명료했다. 그런데 가끔 그 단단하게 닫힌 줄 알았던 문이 아귀가맞지 않아 살짝 열려 있을 때도 있었다. 역사 선생님의 이야기처럼, 역사선생님은 학교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선생님이었는데 바싹 말라비틀어진 노송처럼 얼굴에 주름살이 자글자글했다. 눈빛도 마치 나무 옹이처럼깊고 어두웠다. 선생님은 말할 때마다 기침을 멈추지 못했는데, 옛날이야기를 할 때는 기침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들도 딴짓을 멈췄다.

"공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결함을 입증하기 위해서정치에 무지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선거권도 필요가 없겠습니다."

"네, 우생학만큼 유구한 전통이 있는 학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떡잎이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어떤 나무는 자라기도 전에 베어내야 하는 건가요?"
"국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저해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라도 한 겁니까?"
"이보세요. 아주 쉬운 문제입니다." 여당 대표는 아이 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매스게임을 생각해봐요. 한 사람이라도 제멋대로굴면 그림이 영 보기 좋지 않잖습니까."
"보기 좋은 게 사회입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공부도 잘한 양반이 왜 이러실까? 정부를 우습게 보는 것도 어지간해야지. 응? 오합지졸로 구성되어 있으면 누가 정부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이 난세를 뚫고 나갈 선장과 선원들을 뽑는데, 응?"
"무슨 미스코리아 대회입니까? 정부에 토 달지 않고, 장애 없이 그럴싸한 능력자만 골라서 뽑는다니." 단체장은 여당 대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에 비하면 국회의원 뽑는 기준은 한참 낮은 모양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모욕했다며 의원들이 삿대질과 욕설을 퍼부어대는가운데 경찰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단체장은 어떤 저항도 없이 끌려갔다.
씨앗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세간에는 단체장이 반동 세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텔레비전에 나온 기능력직 공무원은 조국을 위해 헌신한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편 언론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어느 신문사에서는 정부의 비난에 동조하여 씨앗을 비방했으나 다른 신문사에서는 정부의 위선이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표명했다. 정부측 심리학 전문가의주장에 반발하는 전문가들이 성명문을 발표했으나 이 역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단체장은 항소했으나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이유로삼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수감중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교도관들은 유가족에게 그가 죄수 간 싸움에 휘말렸다고 통보했다.

정부는 다중능력검사의 평가 방식이 매년 바뀐다고 발표했지만, 매해나오는 예상 문제집은 베스트셀러 목록 안에 꾸준히 들곤 했다. 숨겨진능력을 끌어내 능력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불법 시술도 판을 쳤다. 공직에 지원한 적합 판정자들은 등급이 낮아 국가기관에 배정받지 못하더라도 연수만 마치면 노후는 보장받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로또라고 표현했다.
행운아들이 조명받을수록 적합 판정을 받지 못한 아이들 위로 드리운그늘은 더 두터워졌다. 의무교육과정에 인권 교육이 포함되었으나 형식에 불과했다. 학교는 작은 사회였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계급을 나누고인정을 구했다. 부끄러워하는 대신 정당화하는 편이 더 낫다고 믿었다.미지는 그렇게 믿는 아이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동기들도 동의했다. "어른들이 가르쳤지."
교육부는 능력자가 시비에 휘말렸을 때 학교측의 일방적인 판단을 막기 위해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아이들을 더 불리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의원 대다수는 부적합 판정자라면 괜히 원한을 품고 누군가를 해코지할 수 있다는결론을 내렸다. 설령 피해자라도 다른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강제전학을 보냈다. 다수결의 원칙은 부적합 판정자들을 더 손쉽게 사회반경에서 밀어내는 데 쓰였다.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모두가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소문처럼 실례가 떠돌았다. 연금 지급 제한 조치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무고한 가족에게도 여파가 미쳤다.등급이 높고 배정받을 예정이었던 부서가 중앙에 가까울수록 괴롭힘은더 치밀하고 교묘했다.
미래를 본들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국자와 글로리아는 너무 일찍 그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능력은 그들이 모르는 새 다가와 맴도는 사자와 같았다. 누구도 다가올 수 없도록 막아주는 한편 방심한 순간을 틈타 자신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국자와 글로리아가 등급 심사를 조작한 이유이기도 했다.

영웅은 국가에서 고르는 도구였다. 기능력직 공무원으로 뽑힌 시시콜콜 반발하거나 친정부적이지 않으면 도구로 적합하지 않았다. 국가는위험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했다. 국자는 텔레비전에 영웅이라며 몇몇 기능력직 공무원들이 나올 때마다 채널을 돌렸다. 그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의심 하나 없이 환한 그들의 미소가 불편했다. 국자는 반장의 확신이 깨지지 않길 바랐다. 확신은 소망에서 비롯하고, 소망은 아무리 강력해도 언제든 허상처럼 흩어질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떤 확신도 근거가 부족한 믿음에 불과했다. 그리고 확신은 무력해지는 순간 모든 걸망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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