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정의의 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여러 사례들이 시사하는 것처럼 법과 제도가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무렇게나 법치the rule of law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현실이 다소 불편하다. 그들에게 법치란 무엇일까? 물론 법치의 개념적기원은 18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갈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법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 우리가 동의한 것은 아니다. 법치 개념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법치의 의미는 계속 재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저 법에 따른 통치 시스템이 존재한다는것과 그 법이 정의로운가 아닌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존하는 법이 정의롭다고 가정하더라도 법의 집행 과정 전반에 걸쳐 모든 이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제도의 힘을 대리하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선택적 보호를 한다는 뜻이 아니다(물론 그런 경우도 존재한다). 법의 제정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우리도 모르게 사회문화적 편견을 작동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취약계층일수록 공정한 법 집행의 테두리 바깥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법안을 만들거나 이를 실행하는 이들이 기득권 바깥의 삶을 한번도 접해본적이 없을 때 더욱 그렇다. 따라서 법이 추구하는 정의와 윤리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리의 견제와 참여가 필수적이다. 페미니스트 법학feministjurisprudence의 창시자들 중 한명으로 일컬어지는 앤 스케일스Ann Scales는법치 개념 자체를 문제화하면서, 단순히 법칙 그 자체가 옳은 것이 아니며 공정 fairness은 오직 윤리적일 때만 공정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개인별‘ 사정에 맞춘 ‘공정한‘ 법 집행이 가능하다고주장하지만, 그들의 믿음과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개인은 사회적 편견 및 고정관념과 연결된 어떤 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에 따라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 물론 법과 제도는 공평무사해야 옳겠지만 실제로는오래된 인식론적 한계, 더 정확히 말하면 기득권의 인식론적 한계를 그대로 담고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바꾸어나가야만 한다. 이를 인식론적부정의 pistemic injustice라고 한다. 즉 법과 제도 역시 한 시대의 편견과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교차성 개념의 학문적 창시자인 킴벌리 크렌쇼 Kimberle Crenshaw 역시 법학자인데, 그가 교차성 개념을발전시키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미국 법원이 흑인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아예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식론적으로 기울어진 장 안에서 사고하게 되면 실재하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법이 내가 처한 현실을 보지 못할 때, 법과 제도가 우리를 보호하지않을 때,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를 우리 스스로 구현하려는 운동이 바로변혁정의 Gansformative justice 운동이다. 변혁정의의 철학적 기초는 그 근원을 따라가자면 미국의 원주민indigenous 공동체까지 도달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국가 폭력을 경험하고, 제도화된 ‘문명‘ 사회로부터 축출과 차별의 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수백년에 이어 전해진 집단적 트라우마를이겨내면서 쌓아올린 실천지phronesis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철학이자 사회운동인 것이다. 
변혁정의론은 법과 제도가 끝내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안전망을 꾸리고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공동체적 기반과 문화를 만드는 것을 매일의 목표로 삼는다. 홀로 외롭게 국민청원을 하거나 아무런보호막도 없이 폭력을 그저 참고 견뎌야 하는 상황을 종식시키고, 취약한 이들의 연대를 통해 지속가능한 돌봄의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한다.

변혁정의 운동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우리 손으로 만들자고 주장하며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외치는 풀뿌리 조직화rassro organizing의 가장 선명한 사례다. 일상 속의 작은 움직임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몸과 정신에 깊이 새겨진 낡은 이데올로기를 떨쳐낸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운동은 작은 목표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크고 아름다운 비전을 그리며 가장 이상적인 세계를 미리 상상해본다.

"시대와 불화하는 삶‘이라는 좌우명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미래는 지금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대의 한계를 느낄 때, 현재의 사회시스템에 순응할 수 없을 때, 법이 제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때, 그때 우리는 더 나은 세계를 그리며 미래를 이미 실천하는 정치를 꿈꾼다.

소수자들과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 비전에 대한 공통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협력, 목표를 위해 삶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실천을 모색한다. 더 나은 세계를 원한다면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고 믿어야 하고, 또한 그 믿음을 공유하고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혹시 여전히 손을 잡기가 망설여진다면, 나는 당신에게 미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뜬구름과 같은 그 무엇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구원자를 기다리며 미래를 영원히 지연시킬 수 없다. 그래서당신이 필요하다.

미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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