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공정으로서의 시험에 대한 절대적 지지는 결코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하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나는 가진 것도 없고 ‘부모 찬스‘도 없으니까 차라리 ‘계급장‘ 떼고 공정하고 평등하게 붙어보자는 이 요구는 10대 시절부터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강력한 정동affect 이자 생존본능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역사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

공정이라는 가치가 실제로는 보다 상위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능력대비 보상‘ ‘노력 대비 보상‘과 치환 가능한 개념으로 통용되거나, ‘공정경쟁‘과 같은 식으로 경쟁과 직결되어 논의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특징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샌델은 자만과 굴욕이라는 두개의 키워드로 능력주의를 설명했으니, 박탈감과 모멸감이 쉽게 발현되는 한국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 그의 인기가 많은 것은 당연한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능력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하버드 대학 교수에게 열광하는 현상 역시 그다지 놀랍지 않다.
샌델이 한국의 능력주의 논쟁에서 오랫동안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왔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베스트셀러인 그의 저서, 수많은 인터뷰와 인용 기사, 여러차례의 초청강연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는능력주의의 부작용으로서 자만과 굴욕을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샌델은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 뿌리는 건드리지 않는 길을 택한다. 사회구조와 물질적·문화적 조건을 혁신하는 방법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피해간다는 얘기다. 능력주의는 구조적 불평등, 차별, 행운이 미치는 영향을 은폐하고 우리의 위치를 ‘순수한 개인적 성취‘로 포장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런데 샌델은 이 중에서도 특히 운에 방점을 둔다. 일례로 명문대에 합격한 것은 남들보다 운이 좋았던 영향도 있는데 정작 사람들은 행운과 신의 은총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샌델이 제시하는 능력주의의 해결책은 추첨이다. 
그러나 이는 능력주의의 본질적 문제를 회피하는 해결책이다. 오히려 이 같은 개인화된 해결책은 구조적 문제를 개별적 마음가짐과 자세의 문제로 치환시킨다. 능력주의가 불평등과 차별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동시에 이를 재생산한다는 다른 연구나 담론과 비교할 때, 샌델의 주장은 단순히 온건한것이 아니라 능력주의 비판 담론의 보수화와 개인화를 가져왔다. 이는그동안 국내외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발전시켜온 능력주의 비판과도 크게 배치된다."

마이클 샌델을 넘어서: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

사교육업계에 따르면 2021학년도 영재학교 최종 합격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서울과학고 정원 120명중 절반 이상인 66명이 대치동 A학원 출신, 경기과학고 정원 120명 중절반 이상인 61명이 대치동 A학원 출신, 한국과학영재학교 정원 120명중 절반 이상인 64명이 대치동 A학원 출신, 대전과학고는 정원 90명 중에서 절반에 살짝 못 미치는 41 명이 대치동 A학원 출신이다. 

사교육으로 얻은 각종 인맥과 정보, 기출문제은행, 최신문제 유형 및 경향 분석을 동원해 시험 성적을 올리고 경쟁에서 우위를점할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교육투자 수준의 차이는 자연히 시험성적과 학력의 격차로 이어진다.

시험과 능력주의는 절대로 구조적 불평등과 무관하지 않다.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보자. 시험은 누구에게나 공정한가? 시험은 우리에게 ‘노력 대비 공정한 보상‘을 가져다줄까? 물론 노력하지 않으면점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핵심은 나의 노력의 양, 질, 효과가 구조적 불평등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가 1시간 동안 혼자 공부에서 올릴 수 있는 점수와 부유층 수험생이 1시간 과외를 받아서 올릴 수있는 점수에는 차이가 있다. 대학입시로 대표되는 능력주의 게임은 우리가 진정한 능력을 개발하고 추구하도록 돕기보다는 특정한 방식으로측정되는 점수 경쟁을 가속화한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청년의 성공 요인 1순위로 노력을 꼽았고, 중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은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한국대학생들은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 부모의 재력이라고 응답했다. 더구나 절반 정도인 50.5%가 선택해 압도적인 1위였다(반면 일본에서는6.7%, 미국과 중국에서는 약 12%의 응답자들만 부모의 재력을 선택했다)." 부모의 재력이 답이라면 앞으로 성공할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일까? 이런 결과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통속 이론인 ‘수저계급론‘과 맥을 같이하니 그다지 놀랍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취적으로 미래를 기획해야 할 20대 초반의 청년 세대가 이렇게 대답하게된 뼈아픈 현실에 대해 우리 모두 진지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학력주의와 능력주의가 오히려 부의 대물림과 불평등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물이 났다. 슬퍼서.무력감이 느껴져서.
이 책 왜 이렇게 읽기가 힘이 드나.

그 어떤 개인도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348조원을 벌어들일수는 없다. 이는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적 혜택이 장기적으로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 정책 개선이나 세제 개편과 같은 구조적 개혁 및 수정 조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능력주의는 허구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결국 당당하게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것이다. ‘능력 대비 보상‘이라는 저울은 이미 기울어져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보상 시스템의 보완과 재조정을 기획해야 한다. 

기득권 계층은 당연히 구조의수혜자임을 인정하고 재분배에 동참해야 한다. 기업 규모 및 고용 형태에 따른 임금격차 해결, 노동 조건 개선, 복지 제도의 확장, 세제 개편,공공부문 확장과 같은 정책적 논의도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동시에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시험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진지한 고민이 결여된 대중적영합이자, 오히려 근본 원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처사다.우리에게는 소모적 경쟁과 줄 세우기 없이도 스스로의 자리와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높은 시험 성적과 등수가아니라 가치와 탁월함을 추구하도록 돕는 교육 현장과 사회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책 입안자들부터 앞장서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비수도권또는 저소득층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잠재력을 실현할 기회를박탈당하지 않도록 교육 기회를 적극적으로 재분배해야 한다(교육 기회의 재분배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좀더 살펴볼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획일적인 잣대로 모두를 줄 세우기보다는 다원적가치와 능력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모델은어떤 지역의 작은 주민 자치 공동체에서 출발할 수도 있고 협동조합에서 탄생할 수도 있으며 느슨한 네트워크에서 시작된 실험이 퍼져나가는형태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신념 있는 정책 입안자의 오랜 구상에서비롯될 수도 있고 대의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정치인의 끊임없는 소통과 협력을 통해 추진력을 얻을 수도 있다. 능력주의 비판은 이미 충분히반복되어왔다. 이제이 비판을 정치적 의지로 바꿔낼 때다.

젠더와 관계없이 오직 능력만 보고 채용해야 하는데, 페미니스트는채용해서는 안 되고 남녀 간 임금은 차등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은 모순덩어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집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장에서는 능력주의 논리가 차별과 혐오로 확장되면서 생성된 이 단단한 교집합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볼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미국식 농담을 그대로 가져와서 표현해보면 이렇다.
"너희들 1만원 낼 때, 우리는 6,400원만 낼게!" 한국 여성으로서 너무 암담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금액이지만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2021년9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년 최신 통계다. 즉 남성이 100만원을받는다고 가정하면 여성은 64만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언제나 부동의 1위다. 사실북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미국도 격차가 큰 편이지만 한국처럼 여성의노동가치를 남성의 64% 정도로 취급하는 OECD 회원국은 없다. 한국에 이어 항상 2, 3위를 다투는 일본과 이스라엘도 77% 수준이다. 덴마크나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약 95%로 남녀 간 임금 수준에거의 차이가 없다." 남성 100만원과 여성 64만원의 간격은 너무나 멀지않은가? 그런데도 남녀 간의 임금격차는 ‘공정‘한가?
한국은 해외에서 이른바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어 성별 임금격차가이 정도로 클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사례는 외국의 유명 경제학자들이 대중 강연에서 언급하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불평등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성별 임금격차를 지적할 때 유일하게 한국을 예로 드는 것이다. 

1장에서 ‘피해입은 특권‘에 대해 살펴봤듯이, 그들은이 사회가 오히려 남성들을 차별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들의 박탈감은 특히 여성과 소수자를 향해 표출되는데 그럴 때마다 능력주의 논리가 손쉽게 동원된다. "능력도 안 되는데 소수자 정체성 때문에뽑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정체성에 기반해" 약자와 소수자를배려하는 것은 불공정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틀린 말이다. 3장에서 논의했듯이 능력은 경제적 계급과 구조적 불평등의 영향을 받는다. 

1장에서 ‘피해입은 특권‘에 대해 살펴봤듯이, 그들은이 사회가 오히려 남성들을 차별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들의 박탈감은 특히 여성과 소수자를 향해 표출되는데 그럴 때마다 능력주의 논리가 손쉽게 동원된다. "능력도 안 되는데 소수자 정체성 때문에뽑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정체성에 기반해" 약자와 소수자를배려하는 것은 불공정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틀린 말이다. 3장에서 논의했듯이 능력은 경제적 계급과 구조적 불평등의 영향을 받는다. 

백래시와 무지의 결탁

애그노톨로지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로버트 프록터Robert Proctor는 무지를 크게 세종류로 구분했다. 원초적 무지, 선택적 무지, 전략적 무지가바로 그것이다.

1. 원초적 무지
모르면 배우면 되고 때로는 굳이 배워야 할 필요조차 없는

2. 선택적 무지
윤석열 대통령의 무지에서 비롯된 발언의 반복. 배울 마음도 고칠 의지도 없다. 사는데 아무 지장없고 무지와 무감이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름.

3. 전략적 무지
 ‘적극적으로 형성하는 무지‘다. 사람들의 의심,정보의 부족이나 불확실성, 허위정보를 이용해서 무지 혹은 거짓을 적극적으로 구성, 조작, 유지하는 것이다. 백신음모론이 이와 같은 전략적 기획의 대표적인 사례다. 차별금지법이 가족과 사회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위협.이처럼 다양한채널을 통해 허위 정보를 유통하고 서로의 거짓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사람들의 무지를 굳혀가는 것이 바로 전략적 무지다.

선택적 무지와 전략적 무지는 백래시가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공급되는 산소와 같다. 이 둘은 독자적으로 기능하기보다는 함께 시너지를 내는 경우가 많으며, 현실 부정과 백래시의 ‘논거‘를 계속해서 조달해준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택적 무지, "오직 능력만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설파하는전략적 무지는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내 옆에 있는 여성이 소수자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성차별이 종식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정책과 법안을 만드는 사람은 특별한 성공 사례가 아니라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답을 찾아야 한다.

능력주의의 한계는 단지 계급과 구조적 불평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정체성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를 생략한 채로 능력주의의문제를 논할 수는 없다. 앞에서 언급한 일련의 연구들은 여성혐오가 능력주의 시스템에 어떻게 침투해왔는지를 숫자로 증명한다. 하일먼은 이를 두고 "여자들은 성공한 죄로 벌을 받는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성공한 여성들에 대한 반감은 한국 사회에서도 쉽게 발견되고, 신입사원 중 여성 비율이 높다고 하더라도 전문직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은 줄어든다. 하지만 하일먼의 연구에 참여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이 평가 과정에서 성차별을 했다거나 여성혐오를 표출했다고 깨닫지는못했을 것이다. 그저 서류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점수를 매긴 것뿐이니까. 저들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는 정상 규범을 학습하며 자란 모든 이들이 차별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능력주의뿐만 아니라 능력 그 자체가 차별에 기반해구성된 허구라는 점을 짚어보자.

능력과 능력주의, 차별의 공모자 

기업의 연구 후원금 역시 해당 시점에 ‘돈이 되는‘ 분야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돈을 많이 따오는‘ 학자가 언제나 남들보다 능력과 재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사학자보다는 공학자가 대체로 연구를수주할 기회가 더 많지 않은가?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능력‘의 개념과속성 자체가 절대로 경제논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를 두고 로널드잭슨Ronald Jackson은 "능력의 레토릭thetoric은 곧 시장의 레토릭"이라고 했다

이미 유명한 사람이 이익을 선점해 더 유명해지는 현상을 매튜 효과 Mathew effect라고 하는데 25쉽게 표현하자면 ‘부익부 빈익빈‘과 비슷하다.

자본주의와 남성중심주의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여성의 능력과노력이 저평가되는 젠더화된gendered 노동의 영역도 있다.
돌봄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직접적으로‘ 생산해내지 못할 뿐 아니라, 마치 여성이라면 돌봄의 재능을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돌봄노동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많은 훈련과 배움을 필요로 한다. 또한돌봄의 사회적 기여 역시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팬데믹 이후 돌봄노동의 필요성과 중대성에 대한 논의가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돌봄 노동자들은 심각한 번rgbunput 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남성중심주의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여성의 능력과노력이 저평가되는 젠더화된gendered 노동의 영역도 있다.
돌봄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직접적으로‘ 생산해내지 못할 뿐 아니라, 마치 여성이라면 돌봄의 재능을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돌봄노동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많은 훈련과 배움을 필요로 한다. 또한돌봄의 사회적 기여 역시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팬데믹 이후 돌봄노동의 필요성과 중대성에 대한 논의가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돌봄 노동자들은 심각한 번rgbunput 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피나는 노력으로 경쟁을 통과해 ‘월드 클래스‘에 선발되었다고
 믿었고, 그러므로 여전히 클래식 영역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고정관념이 옳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고작 커튼 하나로 그 신화가 완전히 깨진 것이다. 이 역사적인 드라마는 실제로 능력주의의 허구성을 증명하 는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클래식 음악계의 경우처럼 어떤 분야에서는 적극적인 소수자 배려 정책이 필수적이다. 여성, 저소득층, 비수도권 지역이 과소 대표된 영역이 있다면 할당제와 같은 수정 조치가 도입되어야 차별과 불평등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지역균형선발 전형, 기회균등전형과 같은 정책이 입시 제도에 도입되어 농어촌 지역과저소득층 가구의 청소년들이 입시 과정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소수자 배려 조치 역시어디까지나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한걸음 더 나아가 차별과 불평등을 발본적으로 깨뜨릴 수 있는 방안을모색해야 한다. 3장에서 논의한 부의 재분배와 함께 인정의 재분배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 중 하나다.

차별과 혐오를 넘어: 인정의 재분배

첫째, 소수자 배려 정책은 불평등한 구조는 혁신하지 못한 채 일시적으로 약자들에게 기회만 제공할 뿐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입시와 채용의 관문을 통과하는 소수자들이 증가하면 해당 정체성 집단의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 확대될 수 있고, 이들이 성공함으로써 또다른 변화를 나비효과처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부의 성공이 곧 불평등한구조를 혁신해내거나 부의 재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평등한 구조는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소수자를 그 구조에 동참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둘째, 소수자 배려 정책은 사회의 약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함으로써자원은 재분배 mediscribution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사회적 인정recognition의획득은 오히려 어렵게 한다. 진짜로 역설적인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지균충. 기균충. 소속감 느낄 수 없고 개인 역량 온전히 발휘 못해.

그래서 우리는 재분배에 보다 전폭적인 힘을 쏟아야 한다. 특히 교육영역은 더욱 중요하다. 교육은 부의 재분배와 인정의 재분배 모두를 가장 효과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영역일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생애 주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교육 기회의 재분배는 당연히 할당제 이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물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부의 재분배와 인정의 재분배가 완전히 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분석적 측면에서는 둘을 분리해서 논하는 것이 유용할 때도 있지만,
사실 이 둘은 긴밀하게 얽혀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부와 인정의 주변부‘에 놓여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불공정하다"는 외침도, 타자와의 차별화 전략도, 혐오와 무시의 레토릭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지금처럼 단편적이고 획일적
인 기준으로 사람들의 지위가 매겨지고 인정이 배분되는 사회가 아닌, 다원적 가치와 기회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삶과직업을 의미화하고 진학과 취직의 경로를 다변화함으로써, 사회적 지위에 대한 기존의 일방적인 인식체계를 낙후시켜야 한다.

모든 이들의 인간적 존엄과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모두 조금씩 힘을 더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각자의 고유한 가치로 인정과 존중을 받는 사회. 그래서 ‘소수자‘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조차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본다.

모두를 위한 돌봄: 두려움 없이 연대하는 나 그리고 우리

번아웃이라고 느껴질 때

하지만 지금 당장 구조를 바꿀 수 없거나 개인의 힘으로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변혁시킬 수 있을까? 제도를 당장 바꿀 수 없을 때,혹은 조직이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을 때, 우리는 나 자신을 돌볼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서로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나와 동료들을 돌보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활용도 높은 부품‘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온전히 존중하고 돌보면서 일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돌봄의 윤리와 관계적 존재론

나는 우리가 사회를 운영하는 기초 원리로서 정의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돌봄의 가치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와 돌봄은우리의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두개의 필수 기능이다. 우리의 삶은 ‘옳고그름‘만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정의의 원리 하나만으로 우리의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돌봄 이론은 이 거대하고 오래된 철학사를 다시 쓰기 위해서 시작되었고, 정의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래서 돌봄의 윤리는단순하지 않다. 이는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다른 이를 돌보자"는 착실한 구호가 아니라 인간, 관계, 사회에 대한 대안 개념을 제시하고자 하는원대한 기획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관계적 존재론 relational ontology이다. 돌봄 이론은 인간의 속성을,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그동안 간과되었던 공동체의 운영 원리로서 돌봄을 제시하고 발전시켜왔다. 초창기 돌봄 이론은 정의론을 염두에 둔 대항 담론으로 시작되었기에 그만큼의 시대적 한계도 있었지만, 그 이후 빠른 속도로 이론적 진전을 이뤄냈고 지금은 위기와 재난의 시대에 우리의 생태계를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철학적 바탕을 탄탄히 다져가고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포함해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시기를 거쳐왔다. 개인이 존재하기 이전에 수많은 관계, 공동체, 생태계가 엮여 있었고, 바로 그 안전망이 있기에 우리가 온전한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적 존재론은 이처럼 나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들의 영향을 인지하는 태도, 그리고 윤리적결정을 내릴 때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필요를 고려하는관점을 뜻한다. 
최근 돌봄 이론가와 활동가들이 역설하는보편적 돌봄universal care 은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일반화된 보편적 원칙이나실천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보편적 돌봄은 내가 모르는 타인들까지도 돌봄의 기본 전제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윤리적 실천의 대상을 더이상 "나의 주변 인물"로 한정하지 않는 것, 즉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향한 마음으로 돌봄을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생존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돌봄,어디에나 있는 돌봄을 상상할 수 있을까? 재난, 감염병,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적 돌봄이 더 중요해진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고, 타인의생존 기반이 흔들리더라도 나의 보상이 우선이며, 협력보다는 경쟁의원리로 사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인식은 슬프게도 한국 사회의 공기를가득 채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존재론적 기반으로는 어떤 사회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이미 살펴본 바 있다. 분열과 경쟁, 차별과 혐오가더욱 악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관계와 돌봄을 삶의 원리로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시급한 과제다.
사회적 공동체적 맥락에서의 부정의도 고려해야.

급진적 자기돌봄

나는 그런 접근과는 다소 다른 의미로 연대를 전제로 한 돌봄, 다시말해 자기돌봄과 공동체를 향한 돌봄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전제로 한 돌봄의 윤리로서 급진적 자기돌봄을 정의하고자 한다

급진적 자기돌봄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나의 회복이 곧 모두의 회복인 돌봄, 연대를 위한 손을 맞잡기 위한, 동지가 되기 위한 돌봄.내가 속한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자기돌봄. 그러므로 자기돌봄self care은곧 타자돌봄 othercare이 된다. 사회적 부정의와 제도적 공백 속에서도 삶을 이어나가기를 선택한 우리는 서로를 지키고 보호하는 투쟁과 연대의한 양식으로서 급진적 자기돌봄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급진적 자기돌봄은 구조적 폭력과 부정의로 인한 상처를 직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일상을재조직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자본주의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회복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또한 그런 사회를 요구해야 한다. 스스로의 회복을 위한 시공간을 확보하고 온전히나의 삶과 생명을 회복시키는 실천적 의례가 무엇인지 탐색할 수 있는기회를 만들자. 나를 살리는 행위를 습관화하자. 나의 동료들에게 급진적 자기돌봄의 방안을 적극적으로 묻고, 가능한 실천을 함께 모색하고 공유하자.

둘째, 연대와 상호부조mutual aid 를 통해 급진적 자기돌봄을 확대할 수 있는 심리적.물질적 토대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도움을 청하고, 서로를 돌보고, 함께 연대할 수있는 사회의 윤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내곁에 있는 이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면서 상호부조의 기반을 만들자

셋째, 급진적 자기돌봄은 무조건적인 긍정을 강요하지 않으며(즉"긍정적 마음가짐"을 유지하라는 뜻이 아니며,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들에게 억지로 긍정을 강요하거나 힘을 낼 것을 바라지 않고도 돌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들이 자기돌봄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급진적 자기돌봄은 나의 고통이 사회적 부조리 및 폭력과 연결되어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다. 일터에서 번아웃을 경험할 때 적극적으로 회복의 시공간을 확보하고, 언론을 통해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소식을 접할때 그런 소식이 나의 감정과 일상을 잠식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재난 위기, 구조적 폭력, 사회의 실패를 지속적으로 목도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하고 다양한 급진적 자기돌봄의 양식을 발명해내야 한다.

보편적정의: 모두가 온전히 평등한 세계

자유라는 이름의 사기극: 무한 경쟁,제1라운드

하지만 우리가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부터 "완전한 자유경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선택과 노력만 있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경쟁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기는 사람이 있다면 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자유주의 경제 이론은 개인의행동을 합리성과 이해관계 추구로 설명하며 이들의 활동 무대는 자유경쟁 시장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같은 룰을 가진 게임에서 이기는 사람은 당연히 이미 충분한 소득과 자산을 보유한 기득권일 가능성이 높다. 기득권자들은 딱히 사회안전망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규제 없이 마음껏 돈과 자원을 굴릴 수 있어야 빠른 속도로자산을 증식시킬 수 있다. 약자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복지 정책, 독과점 규제, 부의 재분배와 같은 움직임에 반대하는 이들은 "구조적 차별과불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

비교와 선별의 위계: 무한경쟁,2라운드

이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는, 말 잘 듣는 모범적 주체들을 중심으로 지원을 제공하는 국가·민간 정책은 비교와 선별의 위계를(재)생산하고 정당화한다. 누구든 지원을 받고 싶다면 국가경제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주체 경쟁을 통과해 정책 수혜 대상자로 선발되어야 하므로, 이런 체계는 훈육과 억압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자유경쟁에 마음껏 뛰어들 수 없는 ‘낙오된 자들은 비교와 선별의 위계를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사회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한경쟁을 통과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범적인 (또는 자격을 갖춘) 존재로 인정받음으로써 능력주의 시장 혹은 자유경쟁 시장에 자신을 편입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격 있음‘ deserving과‘자격 없음‘ undeserving을 구별하는 과정은 정상 이데올로기와 능력주의를강화할 수밖에 없다. 경쟁, 비교, 선별의 무한루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나의 능력을 내세우는 경쟁부터 나의 바람직함을 내세우는경쟁까지, 우리는 서로를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할까?
경쟁과 비교의 가치로 운용되는 사회가 아닌, 다른 가치에 기반해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는 없을까?

무한경쟁의 스펙트럼을 넘어서: 모두를 위한 정의

한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보편적 정의는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똑같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기본소득basic income 개념이 제안하듯이 누군가가 처한 현재의 상황이나 경제적 조건과 무관하게 무조건 동등하게 일정 금액을 배분하자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보편적 정의는 한 사회의 평등적 이상을 설정하고, 그 이상에 모두가 분명히 도달할 수 있도록 배분의 수준을 달리하는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즉 모든 이들이 누려야 할 이상적 삶의 조건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모두가 그 조건을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분배정의를 실현하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분배해야 할 몫은 개인들 사이의 상호 비교와 경쟁이 아니라, 개인적 현실과 공동체적 이상 사이의 비교를 통해 결정된다. 그 간극을 채움으로써 그 누구의 존엄한 삶도 위협받지 않도록 중재하는 모델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 권리를 이상적 목표로 설정하고, 모든 이들이 그 목표에 이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 아닐까. 그 누구도 자신만의 능력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세계에서 모두를 위한 돌봄과 정의가 우리의 삶과 관계를 어떻게 변혁시킬 수 있을지 함께 사유하자. 구조적 불평등을 ‘자유‘와 ‘공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동시에 개인의 ‘무능‘과 ‘무책임‘이라고 비난하는the common goou.
세계를 무너뜨리자. 경쟁과 능력주의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공동선의 세계를 상상하자. 우리는 모두의 기회, 안전, 존엄을 위한 정의의 원칙을 만들고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더 높은 목표와 기준을세울 수 있다. 각자가 평등하면서도 고유하게 대우받는 보편적 정의의이상을 그리기 위해 함께 마음을 맞대자. 모든 이들의 존엄한 삶이 보장될 때, 우리는 끝없는 경쟁과 비교의 굴레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전혀다른 차원의 심리적·물질적 풍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도 함께 대안적 여정에 동참했으면 한다.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의 모습을 다시 그려내기 위해서는 당신의 힘과 마음이 필요하다. 경쟁하는 개체들의 군집이 아니라 함께 연대하는 신뢰와 우정의 공동체를만들어나가자.

고특히 윤석열 대통령은밀턴 프리드먼12Milton Friedman의 『선택할 자유를 27년간 끼고13다닌 ‘인생 책‘으로 꼽을 정도로 자유 시장 경제fice market economy 를 노골적으로 옹호해왔다. 

정의로운 조직: 모두가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곳.

갑질은 왜 이렇게 흔할까.

때로는 지는 싸움이라도 꼬 해야 한다.
스티브잡스의 유명한 갑질
. 개새끼론 asshole 로버트 서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유능한 개새끼brilliant jerk
마크저크버그 우버의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수많은 고위직 자리가 공석.진정한 자율주행 기업이 되었다고 농담.

정의로운 조직은 가능하다

 또한 어느 대선후보가 "주 120시간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 120시간을 채우는 이들은 과연누구일까? 이런 환경 속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되는 이들은 비현실적인 마감도 맞추고, 상사의 심기도 살피고, 살아남기 위해 자존감을잃어가며 스스로를 끝까지 몰아붙인다. 그렇게 아무런 안전망도 없이알아서 생존해내는 것이 바로 각자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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