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인권이라는 단어들이 정치와 경제, 사회전반에서 세력을 장악한 시대가 계속되면서 정의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내가 옳은 것이 옳은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나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행동 규범을 이끌어왔던 보편적 ‘덕virtue‘의 정의는 변질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새로운 덕의 정의가 계속 확장된다.

목적론과 계급구조로부터 해방된 개별적 도덕 주체는 스스로를 자신의 도덕적 권위의 주권자로 생각하거나, 도덕적 철학자들에 의해 그러한 것으로 여겨진다. (…) 이 호소는 정말 개인적 욕망과 의지의 도구로 나타날 것이다."

매킨타이어는 "도덕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목적으로한다"라는 제러미 밴덤의 공리주의의 모순을 지적한다. 공리주의를 쉽게 말한다면 모든 사람이 최대로 행복해지는 것이고이것이 사회의 윤리적 기준(덕)의 목표라는 것이다. 개인행동의 윤리적 기초는 이익과 쾌락의 추구라는 공리에서 추론됐다. 자본주의의 근본원리가 된 이 공리주의로 인해 고통은 철저히 배격되기 시작했고, 고통과 불행은 인간의 삶에서 제거돼야 할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의 실현은 개인의 사익 추구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의 원리와 배치된다는사실이 드러났다. 이 모순이 같은 공리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발견되면서 그 의미가 상실된다. 신기한 것은 밀이 이같은 공리주의의 모순을 발견한 것이 그가 신경쇠약‘을 겪고난 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신경쇠약을 통해 개인의 쾌락과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공리의 실현이 불가능한 ‘지역‘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라는 자본주의 개념의 사회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자들의 삶은 제외되었다. 밀은 신경쇠약증을 앓는 중에 제어할 수 없는 고통의 존재가 삶에 확연히포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고통은 제거의 대상이 되는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삶에도 포함된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뇌기능장애자,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치료와 돌봄은 무너지는 가족제도를 복원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들과 그 가족들은 서로의 운명을 짊어진 채, 서로의 십자가들을 지고 대답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때때로 이 선한 싸움은 패배와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 후에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 이 싸움의 목적이다.

그는 항상 웃고 즐거워했다. 삶의 새로운 기쁨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성진의 부모는 그를 통해 성장했다. 장애자인 아들이 저렇게 밝은 삶을 이루어가는데 온몸과 정신이 멀쩡한우리가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불행은 개인의 주관적 느낌일 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성진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성진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불행한 것이었습니다."
·처되어야

점점 어두워지는 혼돈 속에서 그 원래의 뜻을 잃어버린단어들이 있다. 법률적인 단어와 의학적인 단어들이 혼용되면서 서로 경계를 넘나드는 비슷한 부류의 단어들이 됐다. 병자와 죄인과 악인이다.
죄인과 악인의 구분이 모호하고, 악인과 병자의 구분이모호하다. 죄인은 병자는 아니다. 죄인은 법적 혹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고, 병자는 의학적 의미이다. 죄인이 악인이 아닐수가 있고, 악인이 죄인이 아닐 수가 있다. 선한 사람이 죄인이되는 경우가 있듯이, 역으로 극악한 악인이면서 죄인으로 벌받지 않은 사람도 무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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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얀시는 그의 유명한 책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에서 나병 환자와 고통의 관계를 묘사했다. 고통은 ‘신체에 이상이 있다, 이에 대한 대처나 치료를 해야 한다‘
는 신호로서 고통이 없이는 신체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생명의 유지에 필수적인 활동도 불가능하다. 얀시는 인도의 나병 환자 병원에서 일하는 브랜드 박사가 나병 환자를 통해 깨달은 통증의 병리학을 통해 고통은 인생에게 영적으로 축복으로 다가온다는 메시지를 설파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화가 났을 때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나NPD들은 우월성 superiority의 과시와 함께 분노를 쏟아낸다.
(…) 그들은 어떤 때 스스로의 분노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
격한 분노의 장광설 외침 중에서도 "나는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야!"라고 소리친다. NPD들이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것을 회피하는 극단적인 상태이다.
호인 아버지의 경우는 나르시시즘의 지배자적 증상, 그리고 감정이나 그 표현을 두려워하는 ‘감정공포emotion phobia‘ 증상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이나 고통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 상태로서 감정표현에 두려움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아들의 고통이나 상한 감정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그의 ‘감정공포‘는 그 자신 속에 있는 실패에대한 두려움이나 공포이기도 했다. 그는 이 공포를 아들에 대한 우월성으로 표출했고, 폭언과 폭력으로 바꾸어 표현했다.그리고 아들의 병을 계속 악화시켰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병원 의사와 교수를 지냈던 크레이그 맬킨 박사는 그의 책 《나르시시즘 다시생각하기》에서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는 나르시시스트에대해 말해주고 있다. 깜찍하고 예쁜 연인에서 유능한 직장상사, 가장 가까운 가족 구성원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 ‘잠복‘해 있는 유해한 NPD 환자들은 우리 예상을 뛰어넘어 의외로많다. 맬킨 박사는 배우자나 동료, 가족들이나 자신에게서 다음과 같은 징후가 있을 때 주저하지 말고 즉시 대처 방안을 세울 것을 권고한다.
- 나에 대한 감정적·신체적 학대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사람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병이나 실직, 알코올 중독 같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병들지 않았다거나 괜찮다며 처한 위험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부정할 때
- 다른 사람들을 조정하며 자기의 우월성과 남을 이용하는조작자 manipulator로 드러날 때(이런 사람들은 강한 공격성으로도나타난다)- 

치료나 개선을 위한 변화를 거부하며 자신의 감정을 속이거나 드러내는 것을 막을 때

어떤 경우 며칠씩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분노와 퇴행의 불안함으로 이동한 것을 뜻한다) 비난이나 무관심으로 주변을 어둡게 만들 때

우리는 과거의 기억과 함께 고통을
붙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구원은 기억에 달려 있다.

미로슬라브 볼프

"착하고 예민하고 똑똑한 아이들에게 뇌질환이 잘 찾아옵니다. 발병해서 저희 정신건강가족미션에 찾아오는 청년들이 대부분 뛰어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들 청년은 마음이 고와서 불만이나 미움, 고통을 밖으로 내어놓거나 발산하지 못하고 자신 안에 쌓아갑니다. 마음의 병은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로 깊이 축적되고,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인해 뇌기능장애로 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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