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선서문에서 천명하는 바와 같이 검사는 불의의 어둠을걷어내는 용기,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함,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함을 갖추어야 하고, 스스로에게 더엄격해야 합니다. 그런 검사임을 전제로 주권자는 검찰권을 검찰에 부여했지요. 만약 현실의 검사가 선서와 다르다면, 이런검사들이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있을까요.
검찰은 정권 교체 때마다 변신하며 권력의 총애를 받거나 여론의 환호를 받아 검찰권 사수에 성공하곤 했습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넘도록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 역시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언제까지 속으시겠습니까. 이제라도 검찰의 화려한 분장술 너머의 진실을 직시하고 검찰권을 나누고견제하는 개혁이 조속히 추진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검찰은 수뇌부의 결정에 대동단결하고 일치단결하기를 원할 뿐결이 다른 목소리를 참지 못합니다. 검찰의 위상과 권한 사수를 최우선시하다 보니, 수사권 조정 등 정부 방침과 대립할 때도 국가공무원 신분을 망각한 채 집단행동을 불사하며 이탈자를 용납하지 못하지요.

내부 고발자의 역할은 세례요한처럼 ‘외치는 자의 소리‘가되어 잠든 동료들을 깨우고, 세상에 알려 잠든 척하는 사람들마저 억지로 눈을 뜨게 만드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검찰 내부를 들여다보려 해도, 검찰은 수사 기밀 등 각종 핑계를 대며 자료를 숨기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검찰이 보여주는 자료만으로는 법과 원칙을 실제로 지켰는지를 확인하기 어렵지요. 제 능력이 부족하여 이런 검찰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검찰의 곪은 부위를 세상에 드러내는, 검찰을 비추는 CCTV가 될 각오로 공익 신고와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를 바꾸고 고치는 것은 검찰권을 검찰에 위임한 시민과 사회, 국회와 정부의 몫입니다. 어떻게 고치시겠습니까?

보수 언론은 검찰 수뇌부의 말을 속기사인양 그대로 받아쓰며 저를 매도하기에 급급했고, 진보 언론 역시 법령을 뒤져보는 수고를 게을리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기자들이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등을 확인하고 제대로 취재했다면, "검사는 법에 따라 무죄 구형을 해야 하는 것이니, 백지 구형을 지시하고 검사의 이의 제기를 묵살했던 간부들을 중징계해야 한다"고 검찰을 비판했겠지요. 그러나 보수 언론은 황당했고, 진보 언론은 태만했습니다.

공익의 대표자여야 할 검찰이나 사회의 공기인 언론이 부조리의 데칼코마니 같다는 건 비극입니다.
권력자에 대한 질문은 언론의 권리이자 의무지요. 또한, 언론은 시민인 독자에게 답하고 오보 피해자에게 사과할 의무 역시 있습니다. 이에 묻습니다. 왜곡하거나 부풀리는 등 편파적이거나 불공정하게 취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권력의 감시자인양하다가 권력화하지 않았습니까.
언론에게 언론다움을 요구합니다.

사설 논조가 미안했나 봅니다. 《조선일보》 기자가 서울중앙지검 공판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내용이 마음에 걸리겠지만, 1등 신문의 새해 첫 사설에 이름이 나온 거다. 그걸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 좋게 생각해 달라." 욱하는 마음을 누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기다리고계시다. 부모님이 너무 괴로워하신다."
1등 신문이 궤변과 오보를 늘어놓으면, 펜이 칼이 되어 1등살인 신문이 됩니다. 그 기자들에게 ‘지금 피 흘리는 사람들이보이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 기자가법조 출입 말진이기도 했고, 미안해했으니까요.

다만 오보의 피해자이자 독자로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언론 종사자에게 고언을 드립니다. 확인과 검증을소홀히 한 채 보도자료를 베끼고 특정 취재원이 불러주는 대로쓰면 기자라 하겠습니까. 언론의 사명과 책임을 늘 기억해 주십시오.

문재인 정부에서 공수처 도입 등 가시적인 성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사건 배당 제도 개선 등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의 여러 권고가 검찰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검찰이 반대하는 부분이 검찰의 급소입니다. 검찰이 찬성하는 것만 바꾸고서야 개혁이라 하겠습니까? 검찰의 저울이 고장 나 있다는 것을기억해 주십시오. 저울을 고치라고 계속 외쳐주십시오. 검찰이고치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으면, 더는 고장 나지 않을 테고, 편향적이고 불공정한 검찰권 행사를 다소나마 주저하지 않겠습니까?

몇 년 전, "십 원짜리 사건에 십 원어치의, 천 원짜리 사건에 천원어치의 공력을 기울이라"고 훈시하던 검사장이 있었습니다.
가격을 매기는 기준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회의만 길어질듯해 말을 삼켰지요. 반부패부(구 특수부)는 한정 수량 명품 생산 부서, 형사부는 염가 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부서로 비유한 간부도 있었습니다. 한정 생산 명품에 불량률은 왜 그리높은 거냐고, 형사부에 배당된 사건 당사자가 그 말에 수긍하겠느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역시 삼켰습니다. 현실 앞에선덧없는 이상론에 불과하니까요.

지휘·감독권과 직무 이전권은 검찰 수뇌부에게 최강의 절대반지입니다. 상급자의 지시를 기꺼이 따르는 성실함과 책임감으로충만한 검사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양심 있는 검사가 난관을 돌파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특수부 검찰만 들어갔다 나오면 모두 마법에 걸려 딴사람이 되어 나오니 정말 안타깝고, 두렵다. 슬프다. 하지만 증인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 내용을 조금도 동의하거나 인정할 수 없다"고 비감에 찬 비망록을 작성했지요. 

 2008년 "무죄판결이나도 좋으니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하라"고 지시하던 검찰수뇌부가 검사 선서> 문구를 확정했지요. 그 검찰 수뇌부에게<검사 선서>의 다짐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검사 선서>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주권자의 관심과 비판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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