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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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이나 읽을걸>
이 책은 고전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가져다 마치 가까운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독자에게 설명하는 독특한 방식의 에세이다.
역시 유즈키 아사코 보통 작가가 아닌 건 확실하다.
각 장의 타이틀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1장.
‘그래도 꿈꾸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프롤로그없이 바로 시작되는 이 책의 첫번째 이야기는 절망 속에서 더욱 눈부신 부잣집 아가씨의 낙관주의로 시작된다. 위험한관계, 보바리 부인, 여자의 일생에 각각 등장하는 여주인공 세실, 에마, 잔을 한 자리에 모은 저자는 자신의 학창시절의 반 친구들처럼 여기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특히 여자의 일생에 여주인공 잔은 비참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아내는 성향을 지닌 사람이기에 바람기 많은 남편을 두었음에도 그를 포기하고 자신의 애정을 모두 아들에게 쏟으며 자신의 삶을 이어나간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잔은 후반부에 자신의 남편을 깔보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통쾌하다고 한다. 아직 여자의 일생을 읽어보지 못한 나조차도 저자의 짧은 글을 통해 잔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또 등장인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고 심지어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소설가 다나베 세이코(대표작으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있다—옮긴이)는 ‘마음을 고쳐먹고 기운을 내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재능이라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머릿속에 벌써 친구 여럿이 떠오른다. 그녀들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어도 멋을 부리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단숨에 기운을 차리고, 친구와 수다를 떨며 기분 전환을 한다. 그녀들에게서는 하나같이 묘한 자신감이 보이고 즐거움마저 비친다. 경박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들은 강인하다. 절대로 자기감정을 남에게 떠넘기는 법이 없다.

책이나 읽을걸 _15p



여자의 일생 속엔 잔의 어둡고 비극적인 모습 외에 여자들의 우정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충실한 옛 친구 로잘리가 잔을 위해 달려온다. 그녀의 재등장에 비로소 마음이 푹 놓였다. 로잘리는 슬픔에 잠겨 우울해하는 잔을 위로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가차없이 질타하기도 한다. 잔의 가장 소중한 벗인 로잘리. 때로는 다정한 엄마 같다. 마지막까지 제 버릇 개 못지 주고 아들에 이어서 이번에는 손녀에게 꿈을 의탁하려 하는 잔에게 로잘리는 무뚝뚝하지만 따스함이 깃든 말을 던진다. “세상이라는 개 말이야. 생각만큼 좋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또 나쁘지도 않더라고”

책이나 읽을걸 _16p



이 글을 읽는 내내 여자의 일생을 제대로 읽고 싶다는 마음을 느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잔의 삶이 더욱 궁금했다. 저자 유즈키 아사코가 원작소설의 내용을 최대한 간추려 말해주고 있기에 내용을 깊이 들어가진 못하지만 굉장히 매력적으로 글을 표현해주었다. 그럼에도 드는 생각은 역시 어떠한 책이든 제대로 읽어야 그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여주인공에 대한 자신의 생각만을 전하기보단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글을 통해 고전문학에 관심을 가지도록 돕고자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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