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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기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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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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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거에요.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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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테이블 너머로 건너갈 때
조나단 레덤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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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가볍고 엉뚱하고 조금은 귀여운 로맨스를 곁들인 SF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연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감정선을 따라 읽다 보니 소설에 쉽게 몰입이 되었고 이미 소설의 내용과 동화되었을 때에는 결말을 이해할 수 없는 미궁 속에 있게 된다. 실험에 몰두하는(그래서 나를 바라보아 주지 않는) 물리학자를 사랑하는 인류학자의 사랑 이야기가 뒤로 가면 갈수록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연인을 사랑하는 일에 관한 진중한 고찰로 이어지다가 결말 부분에 가서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철학 책으로 변해 있있었다.


참고로 SF 소설이다 보니 버블이나 암흑 물질이나 여러 물리학 용어가 나오기는 한다. 나는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설 초반에 나오는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래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읽어 나갔다. 문장이 쭉쭉 읽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기도 했거니와 인류학자인 화자가 가지고 있는 물리학적 지식 수준과 나의 지식 수준이 비슷해서 소외감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크게 한 몫을 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책 앞, 뒤 책 날개를 펼쳐서 이어 붙이면 매우 귀여운 고양이가 등장한다! 존재자들의 영역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무의 공간이라 일컬어지는 '결함' 안에서는 존재하는 이 고양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연상케 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앨리스는 결함이 완전한 사랑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 '결함'은 우주를 창조하고자 했던 실험이 실패한 산물이었다. 

이 '결함'을 결여로 바꿔 읽을 수 있다면, 인간에게는 근원적인 결여가 있고 사랑은 이 결여를 메우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여를 채워줄 존재로서 눈앞의 타자를 사랑한다. 그것은 앨리스도, 필립도 마찬가지다. 필립은 앨리스 자체를 사랑하지 못 하고 본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랑, 나를 사랑해 주는 연인으로서의 앨리스를 원한다. 자신의 결핍과 결여, 불완전한 나를 완전한 존재로 채워줄 존재를 앨리스에게 투영한다. 


그리고 앨리스는 추상적인 관념(혹은 대상)으로서의 '결함'을 사랑한다. '결함'은 앨리스를 받아주지 않고 앨리스는 필립을 받아주지 않는다. 결여를 채우기 위해 사랑할 대상을 끊임없이 갈구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대상이 나의 결여를 채워주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랑을 멈출 수 없다. 결국 앨리스도 필립도 나에게 없는 것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둘은 닮아 있고, 결여는 언제나 나의 빈 구멍이기 때문에 이 사랑은 나르시시즘적일 수밖에 없다. 


책의 결말 부분에 가면 '결함'이 앨리스의 나르시시스트적 반영임이 드런나다. 사랑은 언제나 나르시시즘적일 수밖에 없다. 동일시를 하고 그가 나와 같기를 기대하고 부족한 나를 채워줄 것으로서의 상대방을 사랑할 뿐이다. 사랑은 언제나 자기애의 변주이다. 


2. 

앨리스-필립과 대구를 이루며 등장하는 장님 쌍둥이도 흥미롭다.(나는 이 두 커플?이 대구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서로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 울고 있는 앨리스-필립과는 다르게 항상 붙어 다니는 쌍둥이 장님은 서로가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고 믿을까? 그들은 떨어져 있지 않고 날 때부터 함께 지냄으로써 결여를 겪지 않은 존재들일까? (다른 이야기인데,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시각 장애인들에 대해 최근에 읽은 책인 '거기 눈을 심어라'의 저자는 뭐라고 평가할지도 궁금하다.)


3. 

양자 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관찰자에 의해 현실은 촉발된다는 것은 양자 물리학적인 관점인 듯 하다. 그 전까지는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하다가, 그것을 인지하는 의식이 탄생하는 순간 세계는 세계로서, 현실은 현실로서 출현하게 된다는 것. 이것은 일견 근대 경험주의 철학자 버클리의 철학과도 유사해 보인다. 



'결함'은 의식이 진화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고 그래서 가까운 앨리스의 의견과 취향을 받아 들였다는 전개도 매우 흥미롭다. 그렇게 앨리스의 취향을 받아들인 '결함'이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사람은 앨리스가 아닌 두 장님과 필립(책의 주인공)이었으니까. 결국 돌고 돌아 필립은 앨리스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아직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 정교하게 글로 풀어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건 아마 내가 철학을 전공한 것과 관련이 있을 듯 싶다. 동일자와 타자, 현실 세계와 모방의 세계, 존재와 무, 자아의 상실. 




*황금가지에서 서평 이벤트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앨리스, 결함은 하나의 관념일 뿐이야. 당신을 투영해 만들어진." - P153

"그렇다면 결함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누구ㄴ가보다 훨씬 나은 관념이야. 완벽함과 사랑, 완벽한 사랑 그 자체야." - P153

"세상을 세상으로 인정하는 정신이 없으면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시죠." - P276

이제 결함은 국제적인 상을 받을 만한 연구 대사ㅇ이 아니라 주관성에 의해 잘못 생성된 구멍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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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뼈대처럼 강한 기개을 찾으려 더듬거렸을 때 내 손에 잡히는 건 모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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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FIKA(피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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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님을 비롯해 많은 이들의 추천사에 홀려 읽었으나 내가 기대하던 책도, 상상하던 책도 아니었다.
다음 챕터는 괜찮을까라는 희망 고문 속에서 읽어 나갔지만 고문만 당하다 끝이 났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최고의 책일 수 있을 테니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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