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권함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늦은 오후에 시작된 눈이 어둠 깊어지자 반은 물기 섞여 쌓이지도 못하고 떨어진다. 
해외에서 돌아온지 2주 가까이 되어서야 몸이 낮밤을 구별하고, 이제는 오래되고 익숙한 사물과 공간이 편하게 느껴진다. 늙나보다.

침대 곁 테이블에 놓인 책을 펼친다. 슬픔을 권함. 오늘 같은 밤에 읽기에 참 어울리는 문장들이다. 그의 슬픔은 간결하고, 깊다. 수식되지 않는 서러움은 한겨울 나목처럼 빈 몸으로 시리다. 때로 질펀한 해학에 웃음 베어문 뒤끝엔 남루한 삶의 비애가 명치를 누른다.

남덕현의 첫 책, '충청도의 힘'에서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때론 터무니없이 소박하고 터무니없이 낙관적이었다. 재미 하나도 없을 것같은, 아니 오히려 따분하고 권태에 질릴 것같은 일상을 생기발랄하고 뭉근한 이야기들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눈물조차도 햇볕 냄새 나는 까실까실한 그것이었다.

그런 그의 글이 무겁게 젖어든 물기를 그대로 드러내 버린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쌍차, 재능, 코오롱... 다 기억하기도 힘든 숱한 해고 노동자들이, 밀양의 할매들이, 강정주민들이 거리를 벗어나지 못한채 여전히 반복되는 겨울을 맞으면서였을까. 세월호가 잠기던 그 애간장 타던 봄날부터였을까. 아니면 저 십대 혹은 이십대의 어느날부터 유구했던 그의 통증이 더이상 무게를 못이겨 저절로 배어난 것인가.

어찌되었든 우리들 누구나 시작은 제 존재에서 비롯된 서러움에 운다. 또한 슬픔을 품어보지 못한 이가 다른 슬픔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시작이 무엇이든 그는 제 슬픔을 넘어, 이 시대 서럽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울음 울고자 한다. 슬픔에 젖어 슬픔의 바닥으로 내려가 투명해진 모습이라야 이 고통의 시간들을 전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곧 슬픔은 성찰이고 연대이며 저항인 것이다.

전복. 이번 겨울도 여전히 환자스럽게 보내느라 소심할 대로 소심해진 내게는 새삼스럽고도 아련한 말이다. 또한 간절하게 품어보고도 싶은 뼈시린 소망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등불을 끄며 그저 헛될지라도 주문을 걸어본다. 아직도 거리에서 시대와 삶의 아픔을 버티고, 저항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는 오늘 밤 이 눈이 피해가기를. 더불어 차가운 눈 내린 자리, 나의 사소한 슬픔 한자락도 놓아두고 가슴과 이마에 흐르는 생각이 한가지로 명징해질 때까지 울음 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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