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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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받아온 빛의 양이 느껴지는 듯, 어느 양반집 사랑채를 길게 드리우고 있는 듯한 발을 살며시 들고 들어간 곳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의>를 들고 책도 펼쳐보기 전에 그윽하고 고상한 빛에 이끌려 한동안 그 서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책걸이(書架) 그림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다소 딱딱해 보이는 <강의>실에 들어가 본다.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명성만큼이나 온화한 미소와 억양으로 설명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는 수월한 느낌으로.......  하지만 주역에 걸린 8괘부터 시작하여 어질어질한 발걸음이 잦아지다 이어지고, 끊어지려다 이어지며 양명학의 책장까지 어렵게 넘기게 되었다. 강의실을 나와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작은 책자를 찾는 일이었다. 몇 달전 도산서원과 병산서원등을 돌며 나름대로 필기해 놓은 소책자......  정확히는 기억나질 않으나, 유가, 법가, 묵가, 노자, 장자등의 이야기와 태극에 관한 설명도 좋았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던 것이다.  '언젠가는 차분히 읽어봐야지'라며 꼼꼼히 이야기들을 적었었는데,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질 않았다. 그때 불현듯 "탁은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은 믿을 수 없지요."라고 말하는 차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 한마디가 책을 찾고 있는 내 손을 멈추게 하고 그제서야 내 발을 쳐다볼 수 있게 만들었다.

내 발의 기억은 다시 주역의 8괘를 향하여 나아갔고, 이제는 늘 보고 있으나, 그 뜻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태극기 위를 거닐고 있다.  중앙에는 우주 만물의 가장 원초적인 상태인 태극(太極)이 서로 맞물려 성쇠(盛衰)를 반복하고 있다.  마주 보고 있는 하늘과 땅은 지천태(地天泰)와 천지비(天地否)의 대성괘를 오가며 서로 다가갔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태극처럼 함께 소통 통로를 찾아 나간다.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라는 통념을 깨고 64괘의 마지막 괘인 화수미제(火水未濟)를 기억하게 합니다.  불이 물위에 있는 형상으로 다 타지 못한다.  이 세상의 일을 다 끝마친다는 것도 또 다른 욕심임을 말하고 있다. 급한 마음을 누그러 뜨리게 하는 걸까?  '모든 것이 정리되길, 혹은 다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이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가슴에 손을 얹고 바라보는 순간에도 마음을 누그러 뜨리고, 짧게나마 묵상할 수 있게 됨이 <강의>를 통해서 얻은 작은 기쁨이 됩니다.

내 발길이 6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양의 성곽길을 찾아보게 된 것은 삼년전쯤 부터였습니다.  사십년을 살아온 서울의 옛 지층이 왜 갑자기 보였을까요?  두 권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던 <로마인 이야기>와 <우리 궁궐 이야기>였습니다.  로마 시내를 두르고 있는 아우렐리아 성벽을 보면서 서울도 '고도(古都)'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을 무렵, 너무도 적절한 시기에 <우리 궁궐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유교의 사단(四端) 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의미하며 동서남북의 성문이 열려 있었음을 알았을 때, 서울 속의 한양이 포근하게 그려지게 되더군요.  뿌연 매연 속의 흥미없게 느껴지던 남대문이 '숭례문(崇禮門)'으로  문이면서도 그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음이 신선했습니다.  이제  <강의>를 다 들었으니,  늘 부끄러운 마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며 생활의 터전인 서대문(敦義門)을 지나다녀야 겠지요.  측은해하는 마음을 담고 동대문(興仁之門)에서 출발하여 장충동 성곽길을 따라 남산을 거쳐 남대문(崇禮門)으로 걸어봐야  겠습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장을 보면서도 사양하는 마음을 가져 볼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대문 중 가장 한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북대문(肅靖門)에서는 우리 모두,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떠나지 않도록 잠시 기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강의>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우리는 세상으로 열려있는 소통의 문앞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서울의  사대문도 그저 서 있는 문화재로 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담겨있는 세상과의 관계망 속에서 그물처럼 얽혀있는 소통의 문으로 생각 되는군요.  이제 내년이면, 북쪽 찬바람을 맞으며 굳게 닫혀 있었던 숙정문도 활짝 열린다고 하니,  '상식'이 통하는 우리 사회의 소통의 문도 함께 활짝 열리길 기원해 봅니다.

<강의>를 읽으며 떠오르는 또 한권의 책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였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별반 생각 나질 않았지만, 마음 후련하게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는 기억은 생생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욕먹을 것을 작정하고 써내려 갔던 책인 만큼, 참으로 솔직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정확한, 아니, 대략적인 이해도 별반 없는 상태에서 이미 뼈속 깊이 파고들어온 유교의 형식주의, 관혼상제, '전통'의 이름으로는 존재하나 별반 자랑스럽지 않은 비합리적인 허례허식이 주변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맹목적인 아들 선호사상부터 알맹이 없는 권위의식에 이르기까지......   아마 노자는 그런 폐해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을 최고의 질서로 보는 노자에게는 인의예지와 같은 도덕적 가치는 인위적 재앙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겠지요.  옛 사람들의 생각의 갈피 갈피를 들여다 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에 수긍이 갑니다.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를 위한 실천을 보면서 자신에게 철저한 몇 사람들이 생각났지만, 언제나 그들은 소수였다는 사실에 안타깝습니다......  고전을 찬찬히 공부해보면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느끼는 것은  '그들도 우리처럼' 세상에 대해 고민했던 같은 사람들임에 친근감이 더해집니다.

<강의>를 통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언덕 위에 팔 벌리고 서 있는 어머니상인 키예프의 전승기념탑입니다.  절대로 소멸될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혼탁한 세상이라면 세상을 향해 팔 벌릴 수 있는 넉넉한 품이 우리의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맹자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라"라는  공자의 말씀을 '스스로 취하기에 달렸다(自取)'로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 불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그림이나 건축에는  맹자의 가르침인 '탁족(濯足)'의 의미를 많은 곳에 새기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그건 '내 탓이오,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를 조용히 묵상하도록 하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내 몸을 통해 세상과 만나게 된 아이들에게 조차도 '그들 탓'으로 돌리며, 미움의 마음이 들 정도로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창랑에 발을 담그라는 것이리라......   빛바랜 색으로도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장식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행복'을 선물하고 있는 단풍의 계절인 요즘,  창덕궁에 가봐야겠다.  조용히 발을 담그고 '탁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단아한 부용정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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