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
이강룡 지음 / 유유 / 2014년 3월
평점 :
공부하는 번역가의 필독서
번역 공부를 시작하면서 수없이 책을 사들였다. 주로 글쓰기 관련 책이었는데, 여기저기에서 추천받은 책부터 유명 작가의 책까지 서가 한 칸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배달되는 책 상자를 보다 못한 엄마가 책 때문에 아파트 내려앉겠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 많은 글쓰기 책 중에서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 바로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다.
공공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는 등 글쓰기 교육 전문가로 활동 중인 저자 이강룡은 번역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에는 문장 작법이나 다양한 지식뿐만 아니라, 저자가 번역하면서 겪은 오역사례와 경험담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저자는 번역자라면 3~4백 쪽이 넘는 책 내용을 독자에게 서른 줄로 설명하거나 서너 줄로 요약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만큼 책의 전체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료를 조사할 때 왠지 미심쩍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용어를 만나면 설사 친숙한 말일지라도 원래 맥락이 무엇인지 파헤쳐 봐야 한다고 말하며, 독자가 오해하기 쉬운 문학 작품 속 단어를 예로써 설명해놓았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정지용이 쓴 <향수>의 한 구절을 인용한 부분이었다. 나 또한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이 시를 배웠고, 좋아하는 시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향수>는 노래 가사로도 쓰이며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제까지 내가 시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니, 조금은 충격이었다.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난 그동안 위 구절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를 아무 의심 없이 ‘누런 소’라고 생각해왔다. 얼룩무늬 황소는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 시에 나오는 황소는 누런 소가 아닌 ‘큰 소’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황소’의 ‘황’은 뒷말에 ‘크다’는 뜻을 부여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난 수십 년간 얼토당토 않는 오해를 해왔다.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번역자라면 늘 어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어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본래 뜻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 불필요한 오해나 단어 오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번역자는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그 밖에도 우리가 평소 잘못 이해하고 사용해왔던 용어에 대한 다양한 예와 설명이 실려 있으므로, 번역자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시신을 부검하여 사망 원인을 밝히는 어느 법의관은 시신의 모습을 ‘죽은 모습’이 아닌 ‘삶의 마지막 모습’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 애정을 품고 오랜 세월 성실히 일하다 보면 누구나 그 분야의 훌륭한 번역자가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주제처럼 ‘공부하는 번역자’에게야말로, 머지않아 말과 글과 삶이 하나로 만나는 기쁨을 누릴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번역 지침서로 옆에 두면서 책장이 닳도록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