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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년 - 현대의 탄생, 1945년의 세계사
이안 부루마 지음, 신보영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2월
평점 :
오늘날의 정치 사회상의 혼란을 보며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냐”며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세계,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의 한반도를 떠올리곤 합니다. 지옥 같던 그 시절을 견뎌내고 다시 일어선 인류는 현재의 혼란쯤은 또 한 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안 부루마의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시기 그 혼란의 중심으로 들어가 그 때의 현장과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들의 말과 생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굵직 굵직한 사건과 결정들에 관한 책이 아니다 보니 경우에 따라 읽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걸 가중시키는 요인이 저자의 화법 때문인지 번역자가 하나 하나의 문장과 사항, 그리고 맥락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번역해서인지 살짝 모호합니다.
평범한 독자인 저에게도 눈에 띄는 아래 예와 같은 너무 노골적인 실수들을 보면, 전문 번역가도 역사 전공자도 아닌 역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죠. 역사서를 많이내는 출판사인 글항아리의 편집부에도 아쉬움을 품게 되고요.
p217 이런 방식을 통해 독일을 증오하는 국가와 민족들은 21세기 초반 10년간 인종적 순수성과 국민주의를 내세우면서 집권했던 히틀러의 프로젝트를 완성한 셈이었다.
> 일단 20세기 얘기를 하는 중이니 20세기를 21세기로 잘못 써놓은 걸텐데, 히틀러는 20세기 초반 10년에 집권한 게 아니니 뭔가 문장이 이상합니다.
In this way Hitler’s project, based on ideas going back to the first decades of the twentieth century, or even well before, of ethnic purity and nationhood, was completed by people who hated Germany.
‘20세기 첫 10년, 혹은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민족적 순수성과 nationhood라는 사상에 기반을 둔 히틀러의 프로젝트’라는 의미겠네요. 민족주의의 태동과 부흥의 시기를 언급한 것이니.
p332 로테르담은 시내 중심이 폭탄으로 파괴된 첫 번째 서유럽 도시였다. 1939년 9월 로테르담은 앞선 8개월간 폭격을 받은 바르샤바만큼 막대한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도심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 1939년 9월은 로테르담이 아니라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된 때이고, 바르샤바는 8개월간 폭격을 받지도 않았죠. 나치의 로테르담 폭격은 1940년 5월입니다.
즉, “로테르담은 8개월 전인 1939년 9월 폭격을 받은 바르샤바만큼 막대한 피해를…”식으로 번역해야 할 내용일겁니다. 원문도 그렇네요.
Rotterdam was the first city in western Europe to have its heart ripped out by bombs. The damage was not as vast as in Warsaw, bombed eight months before Rotterdam in September 1939, but the center of the city was pretty much obliterated.
p370 독일인에게 미국은 모방해야 할 모델이긴 했지만, 빙 크로스비의 뮤지컬에서 ‘러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s’(재즈 음반 이름-옮긴이)까지, 스윙 음악에서 껌에 이르는 미국 문화에 대해 독일인들은 다소 양면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 Lucky Strike는 너무 너무 유명한 담배 브랜드이고, 한국 전쟁 후 이 땅에도 그랬듯 담배나 껌 같은 상품들이 미국의 풍요의 상징으로 암시장에서 거래되곤 하는 건 워낙 전형적인데, 뜬금없이 재즈 음반이라고 적어뒀네요. 뮤지컬-담배, 스윙-껌, 딱 대칭되게 글을 써놓은건데.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재즈 음반도 아니거니와, Lucky Strikes라는 제목의 재즈 음반은 1964년 Lucky Thompson이 발매한 음반이 있는데, 년도도 이 책에서 언급하는 시기 이후인데 당혹스럽네요.
p399 영국이 참전하기 전인 1940년 미국에서 기독교회 연합협의회라는 단체가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연구하는 위원회를 발족했다.
> 영국은 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 침공하자마자, 9월3일 선전포고하고 참전했는데, ‘영국이 참전하기 전’인 1940년이라니 이상합니다. 더군다나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인데…
원문 찾아보니 미국이 참전하기전인데 영국이라 잘못 썼네요.
In 1940, before the U.S. had even joined the war, an outfit called the Feder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Christ in America set up a commission to work on a “Just and Durable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