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웅 안중근 -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다
전우용 지음 / 한길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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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민족의 영웅 안중근

생명을 버리려는 마음을 가졌기에 그의 마음이 안정되었다.

마음이 안정되었기에 손이 안정되었다.

손이 안정되었기에 탄알마다 명중했다.’

(홍콩 화자일보, p. 107)


2019년 더운 여름,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믿을 수 있는 국가) 국가에서 제외한다고 발표를 했다. 결국 복잡한 수출입 통제를 통해 경제에서 일본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한국을 쥐락펴략하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국민들은 일본 극우들의 조치에 다시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긴 시간도 꽤나 길게 이어졌다. 이 때 다시 우리는 안중근 선생을 소환했다. 선생은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국민이 국가가 뭉칠 때마다 소환했다. 이것이 바로 안중근의 힘이다. 선생은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운 곳에 근심이 있기 마련이다.’라는 유묵 인무원려 필유근우를 정확히 실천한 사람이다. 그 실천이 우리를 멀리 생각하게 하고, 국가를 생각하게 하는 힘이 된 것이다.



1909, 시모노세키에서 출발해서 대련을 이어 장춘으로 가고, 채가구를 통해 하얼빈에 이토는 도착한다. 선생은 신천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다시 연추로, 블라디보스톡으로 마지막 하얼빈에 도착한다. 서로를 반대로 걸어가서 한 곳에 머문다. 그것이 역사다. 그곳이 하얼빈이다.

선생은 대한에 미친 대한의 평화, 동양의 평화를 해친 적의 장수로 그를 척살했다. 선생은 평화를 중국, 일본, 한국, (=태국), 버마 등 아세아주 모든 나라가 자주독립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며, 그 중 일개국이라도 자주독립이 되지 않으면 동양평화라고 말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p.297) 하지만 이토의 평화는 대동아공영, 즉 문명은 선진에서 후진으로 흐르며 평화와 문명개화가 같은 방향이라는 수평적 평화가 아닌 수직적 평화를 말했다. 안중근선생의 총알이 명중한 것은 그의 망상을 향하여 쏜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대표로서 정의를 실천했다. 이토 처단은 동양평화를 위한 의로운 싸움이었으며, 재판은 동양편화 문제 관한 의로운 논의를 제기하는 일이었다.(p.269) 육신은 죽어도 정신은 살 수 있다는 믿음, 국가가 망해도 민족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신념은 당시 민족운동 세력이 공유하던 바였다.(p.425)


패배하는 정의는 불의가 되고, 승리하는 자가, 승리하는 역사가 질서의 중심이 되며, 정의가 된다. 정의가 되지 못한 것은 불의가 되어 사라지거나 악이 되어 버린다. 이게 세계의 질서이다. 하지만 선생의 정의 당장에 정의는 되지 못했으나 정의가 되어 지금도 한국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 ‘불의라서가 아니라 어떠한 것인 정의인지를 보여주기에 가능한 것이다.


선생은 법정에서 이토를 살해한 이유를 묻자, 15개의 죄목을 제시한다.

1.     한국 황후를 시해한 죄

2.     한국 황제를 폐위한 죄

3.     오조약과 칠조약을 강제로 정한 죄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6.     철도와 광산, 산림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죄

8.     군대를 해산한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의 보호를 받으려 한다고 세계를 속인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싸움이 그치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것처럼 천황을 속인 죄

14.  동양평화를 파괴한 죄

15.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선생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고, 평온했으며 결의에 차 있었다. 이게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선비정신이다. 그렇게 너무도 당당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선생의 生은 청년에서 중년을 거치지 못하고, 장년으로 넘어가 마감되었다.


역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1909215일 동의회를 결성, 35일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대한독립회복과 동양평화 유지를 위해 목숨을 걸기로 하고, 맹세의 표지로 왼손 약지를 자르고 태국기에 혈서한다. 그리고 1010, 16명이 대동공보사에 모여 이토 척살을 위한 극비회의를 진행한다. 이 회의에서 안중근을 실행 책임자로, 우덕순과 천완일을 보조역으로 선정했다고 이강은 회고했다. 이를 선생에게 전달하였다. 선생은 이를 흔쾌히 승낙하며 죽고 싶었던 차에 자기에게 그와 같은 사명을 주니 이 기회에 보람 있게 싸우겠다고 거듭 맹세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그의 말에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그의 눈에는 광채가 번뜩이었다고 회상했다.(p114~115)


19091025일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는 중국인인이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촬영을 한다. 우리에게 영화를 통해, 소설을 통해, 구전을 통해 전달되었던 이 모습, 당시 선생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러시아측 문서는 그들의 이별 장면에 대한 목겸담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 그들은 안중근과 작별을 고했다. 그들의 이별은 비장해 보였으며, 목격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안중근은 땅에 닿을 듯이 공손한 인사로 답했으며, 이에 그의 동료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답했다. 그들의 얼굴은 슬퍼 보였으며,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안중근은 4번 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떠났다.(p.106, 러시아국립역사문서보관소, ‘한국 테러리스트 체포에 관한 내용’, 홍웅호.)


1026일 조도선과 우덕순은 채가구에, 안중근과 유동하는 하얼빈역에 머무른다. 그날 채가구를 통과하여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선생은 사진을 통해서 본 이토를 척살한다. 선생이 지닌 브라우닝 권총에는 7발의 탄이 들어 있었다. 정확히 4발은 이토에게, 3발은 다른 이에게 명중시켰다. 이토는 죽고, 선생은 러시아장교에게 체포되어 뤼쉰감옥에 투옥되어 한번의 공판으로 1910326일 교수형에 처해진다. 선생이 죽기 전 어머니에게 남긴 이 편지는 책을 읽는 내내 가슴에 메아리쳤다.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서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주시니 훗날 천당에서 만나뵈올 것을 또 기도하옵니다.(p.169)


어머니는 아들 정근과 공근에게 어미(조마리아)의 말을 선생에게 화답했다.

만인을 죽인 원수를 갚고 의를 세웠으니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큰 일을 하였으니 목숨을 아끼지 말라. 일본 사람이 너를 살려줄 까닭이 없으니 비겁하게 항소 같은 것은 하지 말라. 깨끗이 죽음을 택하는 것이 이 어미의 희망이다. 사형 언도 소식을 듣고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모여 너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네가 사랑하는 교우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살려달라고 구걸하면 양반집 체면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제는 평화스러운 천당에서 만나자. (정근과 공근을 통해 전한 말이다. (p.233)

아들과 어미, 이생과 저생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말들이라 생각한다.


안중근, 황해도 해주부 광석동에서 안태훈과 조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슴과 배에 점 7개가 있어 북두칠성에 감응했다는 뜻으로 응칠로 지었다. 천주교에 입교하여 세례명 토마스, 도마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도로 살아간다. 이후 돈의학교, 삼흥학교 등을 설립하여 계몽운동에 참여학 미곡상, 만인계 등의 기업을 운영한다. 1909동의단지회를 결성하여 대한독립운동을 전개한다. 19091016일 대한제국 적의 심장, 이토히로부미를 척살, 일본에 의해 뤼순감옥에 투옥되어 19010326일 청년에서 바로 장년의 삶으로 생을 마감한다. 선생은 결국 신앙과 정의, 신앙과 정치사이에서 깊은 영면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를 의사(義士)라고 부른다. 선생은 유독 의() 강조했다. 義는 바름을 뜻한다. 義는 곧음을 뜻한다. 그래서 곧고 바름이라는 뜻으로 우리는 선생에게 의사의 칭호를 헌정했고, 선생의 행위를 의거라고 부른다. 선생은 의사이기도 하면서 선비였다. 기재와 지조를 지녔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선생을 또 장군으로 칭한다. 장군은 전장에서 병사를 지휘하는 리더의 호칭이다. 선생을 장군으로 부르는 것은 계급적인 의미가 아니라 국가 위기 시에 몸을 던진다는 상징적이고 포괄적인 무관의 의미다.(p.585)


선생은 한국 민족운동과 민족주의의 모범이 되었다.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했기 때문이 나라, 자기 목숨보다 민족의 자존을 더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듯 하면서 멀리 있고

멀리 있다가도 가까이 다가온다.'


그래서 선생은 대한 민족운동과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나약한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의로움의 극한을 보여주었기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선생이 남긴 장부가를 부르며 이 책 민족의 영운, 안중근을 덮는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운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차가워짐이여 장사의 의기는 뜨겁도다

분개히 한 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 도적 이등이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

어찌 이에 이를 줄 헤아였으리오 세상일이 본래 그러하도다

동포 동포여 어서 빨리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세여 대한동포로다


좋아하는 역사학자, 전우용교수를 만나서 반가웠다.

전우용교수를 통해서 안중근의사가 태어나서 고마웠다.

안중근의사의 정신이 태어나 다시 나를 조국인으로, 대한인으로 태어나게 해서 무진장 눈물이 나게 했다.


한동안 안중근으로 살았다. 전우용교수의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읽었고, 김훈의 하얼빈을 읽었다. 희곡 정의의 시대를 읽었고, ‘안응칠역사를 읽었다. 그리고 선생의 동양평화론을 다시 읽었다. 주말에는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다녀왔다. 밀린 숙제를 다 한 느낌이다. `모두가 전우용교수가 내게 던져준 선물이었다. 모두가 민족의 영웅 안중근이 던져준 선물이었다.


잠시나마 안중근으로 살게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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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트래블 완주 소도시트래블
맛조이코리아 편집부 지음 / 맛조이코리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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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로 여행을 반드시 꿈꾸게 할 책입니다. 읽고 완주여행을 계획하게 되네요.
코로나로 인해서 촌캉스, 시골여행을 원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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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우문현답 - 미래를 준비하는 사장님들을 위한
박진우 지음 / 형설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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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사장님들께 추천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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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우문현답 - 미래를 준비하는 사장님들을 위한
박진우 지음 / 형설출판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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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을 하고 있는데 많은 도움과 자신감을 가지게 해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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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직장인 레시피 - 직장인 비밀 에세이
박진우 지음 / 형설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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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하는 저로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진짜 웃기는 부분도 많고 앉자마자 3시간에 훅 다 읽었네요.

완전 100% 공감

너무 재미있어요

외식업에 대한 이해도 했구요

박진우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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