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춘화 朝鮮春畵 -상권
이혜경 지음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조선춘화'는 눈길을 끄는 제목과 흥미를 돋우는 책 소개글처럼 재기발랄, 쾌활 에로사극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봤는데 여러 인물들이 엮어나가는 이야기들이 결코 가볍지 않고 유쾌하며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설공찬의 조선춘화를 통해 선비들의 이중생활을 파헤치는 설정부터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설공찬 보늬와 유창이, 김완, 민영우, 조신선 등 각기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참 재밌게 전개된 것 같습니다.

좌의정 남인 영수의 자식인 한성부 정 4품 서윤, '김완'과 우의정 노론 영수의 자식인 예문관 정 8품 수찬, '민영우', 그리고 철저한 중도노선자이면 대대로 벼슬을 하지 않고 은둔하는 조선 최고 유림들의 왕국 소쇄원의 황태자, '유창이'. 당파도 당색도 다를 뿐더러 성격도 다른 세 사람이 친우라는 것도 눈길을 끌지만 이들의 한성의 밤을 접수하는 동안 이들을 따라 다니며 이들이 벌이는 행각들을 모조리 관찰하여 상황을 기가 막히도록 절묘하게 화폭에 담고 그 대상을 비웃는듯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만담형식으로 곁들인 설공찬의 <조선선비의 이중생활>을 통해 바라보는 세 사람의 이야기도 재미를 더했고, 세책점 최고의 베스트셀러답게 그 작가 설공찬의 호기롭고 유쾌한 성격과 흥미진진한 전개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어 읽었던 것 같습니다.

당색은 다르지만 한 스승 밑에서 배운 죽마고우로 여전히 친분 돈독한, 여심뿐만 아니라 남심까지 사로잡는 출중한 세 친구가 자신들의 밤문화를 사실적으로 담은 <조선 선비의 이중생활>이라는 춘화를 곁들인 잡록에 의해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지은이 설공찬을 잡아 이 사실을 무마하려고 하지만 영우가 책의 유혹에 못 이겨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당직을 서며 책을 탐독하다 조선이 낳은 최고로 똑똑한 왕 정조에게 딱 걸리게 되면서 이들의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세 친구가 찾아 헤맨 지은이 설공찬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세 사람의 주인을 맴돌았던, 조선팔도 안다니는 곳이 없고 책이 있는 곳이라면, 그리고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는 유명한 책쾌 조신선의 양자 조보늬였습니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인물들의 밤문화를 우연히 보고 배알이 꼬여 그들의 삶을 관찰하다 결국 화폭에 담고 책으로까지 내게 되었던 보늬는 책의 인기가 갈수록 치솟자 그만 두지 못하고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창작의 혼을 불태웁니다. 배포 크고 당돌한 보늬, 그에게도 비밀이 있으니 그의 정체가 여자라는 것입니다. 갓난 아기로 버려져 운명처럼 조신선의 손에서 키워지게 된 보늬는 조신선의 직업상 거처없이 여러 곳을 전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내로 키워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늬 또한 별 불만 없이 아니,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호기로운 사내로서 살아왔습니다.

설공찬이 자신인 것을 알면서도 위험한 처한 상태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창이로 인해 자진해 정조 앞에 나가는 보늬. 인재에 고팠던 정조는 영특하고 재능있는 이 네 사람을 자신 아래 두고 이롭게 쓰기 위해 청 사행단 합류를 명합니다. 그를 통해 가까워진 창이와 보늬. 보늬가 여자인 것을 알고 두 사람은 관계가 더욱 깊어지지만 신분의 차로 보늬는 끝을 바라보면서 지금 이 순간만을 즐길 뿐입니다. 창이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고자 하는 보늬이지만 까탈스럽고 질투쟁이인 창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과 원초적인 욕구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새 보늬를 사랑하게 된 창이는 보늬를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 죽음을 불사르기도 하고 도망치는 보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쟁취해 안해로 맞아들입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대략 이렇지만 책을 통해 직접 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다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보늬의 출생의 비밀, 주변인들의 이야기, 실존인물들과의 만남과 시대배경적인 역사의 절묘한 조화로 인해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으면 감탄했던 것 같습니다.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정조와 연암 박지원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에 따른 에피소드 뿐만 아니라 감초역할을 톡톡히 했던 조연들의 빛이 발했던 소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보늬라는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밤의 껍질을 벗겨내고 났을 때 나오는 속껍질이라는, 쓸모없고 성가시다는 뜻과는 달리 조신선의 말처럼 입 안에 둥글로 향긋하니 감도는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입 안에 맴도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친 딸이 아님에도 가슴으로 낳은 딸 보늬를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위해주는 조신선의 부정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구박하긴 하지만 사행단으로 가게 된 보늬를 걱정하고 뒤를 봐주는 모습이나 보늬가 자신의 친부모를 알게 되고 그래도 자신의 부모라고 도와달라고 할 때 거리낌없이 도와주는 모습, 보늬가 창이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을 때 무엇이든 최고로 해주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엿보면서 참 훈훈하고 따뜻했던 것 같습니다.

제목만 보고 가볍게 생각했던 '조선춘화'. 가벼운 듯 하면서도 닿는 이의 허한 마음을 채워줬던 춘화처럼 따뜻하고 유쾌한 소설이었습니다. 재미와 감동이 공존했을 뿐만 아니라 참신한 발상과 시대적, 장소적 배경이 역사와 절묘하게 만나 빛을 발했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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