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어머니가 아버지의 부하직원에게 강간 당하는 것을 지켜 보아야만 어린 소녀는 그 깊은 상처를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못하고 가슴 깊이 걸쇠를 걸어 잠그고 맙니다. 그리고는 형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피해당하는 약자들이 생겨 나지 않도록, 그리고 인간의 탈을 쓰고 잔인한 짓을 저지른 파렴치범을 끝까지 쫓아 죄의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연약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잔인한 사건 현장 속에서 과거의 잔상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범인을 잡기 위해 무모한 행동을 하는 재이를 보고 있자면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 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겹쳐 보이곤 했습니다. 피해자들을 마치 힘없이 당해야만 했던 자신의 어머니와 동일시하면서 가슴 아파하는 재이의 모습이, 그리고 그러한 상처를 준 사람들을 벌하고자 하는 그녀의 몸무림이 느껴져 왔습니다. 딸의 상처는 보지 않고 끝없이 탐욕을 추구하며 딸을 이용하려는 아버지에 의해 여러번 난자질 당하는 그녀의 가슴을 보면서 그녀가 정말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그 내면에는 어머니가 유린 당하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 보아야만 했던 어린 소녀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재이. 그런 재이의 내면을 알아 주고 그 상처를 치유하며 지켜주는 무진이 정말 멋져 보였고 든든해 보였습니다. 재이가 혼자만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의 상처를 같이 아파해 주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랑이 함께 한다는 것이 참 위안이 되었습니다. 무진은 재이에게 안식처이자 파트너였습니다. 자신의 상처에 몸부림 치며 무모하게 달리는 재이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남자. 어떻게 보면 차가워 보이고 냉정해보이는 형사이지만 재이 앞에서는 한없이 따뜻해지는 사람이 바로 이무진이라는 남자였습니다. 자신의 여자 앞에서는 모든 것을 내 보이며 감싸주는 그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글의 전개 방식이나 문체적이면서도 너무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아쉬움이 간혹 보이기도 했지만 이 소설이 따뜻하고 흐뭇하게 자리잡은 것은 스토리 자체적인 면과 남주인 무진때문인 것 같습니다. 재이를 향한 순애보적이면서도 강한 무진의 사랑이 돋보였던 작품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형사물이다 보니 안타까우면서도 섬뜩한 사건들로 인해 자칫 어두워 보일 수도 있었는데 에필에서의 사랑스러움과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준희와 윤필 덕에 미소 지을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