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답이 있다 - 과학적 혁신에 영감을 준 자연의 13가지 아이디어
크리스티 해밀턴 지음, 최가영 옮김 / 김영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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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자연에 답이 있다 (크리스티 해밀턴, 김영사, 2024, 1판 1쇄)

제목이 책 내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부제가 ‘과학적 혁신에 영감을 준 자연의 13가지 아이디어’이다.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의 답은 모두 자연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의약품 보존기술부터 의료영상진단기술까지 최신 연구 성과들이 어떻게 자연에서 답을 발견했는지 사례로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수많은 과학적 혁신이 자연의 진화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을 동시에 전한다. 이 책을 통해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류의 지식이 확장될수록 더욱 겸손한 자세로 자연을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저절로 그러한 것(자연)이 가장 최상의 덕이라는 철학적 깨달음을 과학적 혁신을 통해 재확인하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관심과 끈기가 있어야 답이 보인다.-

 

이 책에 소개된 과학적 혁신은 모두 누군가의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어떤 문제든, 답이든 관심이 없으면 찾을 수 없다. 또한, 그 관심을 바탕으로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끈기’가 없다면 최상의 답에 도달할 수 없다. 나는 저자가 소개한 연구자들이 모두 관심과 끈기가 있었기에 결국 답을 찾았거나, 앞으로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날 앤절은 훗날 수백만 광년 떨어진 엑스선도 잡아내는 망원경의 개발로 이어질 아이디어를 이 사소한 해양생물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56쪽, 별을 낚다.)

 

문제든, 답이든 그것이 아무리 우리 주변에 널려있더라도, 그것을 발견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시급한 곳은 학교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은 물론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암기력만을 가르치고 절대적인 평가 기준으로 활용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암기 공부 이외의 다른 영역에 관심을 두는 순간, 학생은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이 책을 옮긴이도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년이 꿈을 꾸기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과학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꿈꿀 수 있어야 미래도 있다.”(401쪽, 옮긴이의 글)

 

우리 학생들이 관심과 끈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어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학생들이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끈기 있게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도록 실패를 인정해주고, 끝까지 지원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선 당장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지원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어야 한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우리 교육의 폐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이 하나뿐이라는 믿음’이다. 이 잘못된 믿음은 우리가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크나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정답이 하나만 존재할 수 없음을, 그리고 답이 하나의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이곳저곳에서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화는 선구안을 갖고 있지도, 신성한 계획 같은 것을 미리 세우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 생체모방은 주어진 제약 조건 안에서 적당한 방향을 제시할 따름이다.”(12쪽, 들어가는 글)

 

“벌집 구조는 자연이 튼튼하고 가벼운 건축을 위해 발전시킨 기술이지만 망원경용 반사경에도 쓸모가 크다.”(51쪽, 별을 낚다.)

 

교사로서 십수 년을 살아왔다.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은 신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늘 자괴감이 드는 것은 모든 수업이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정답’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할 때, ‘정답’을 하나만 쓸 수밖에 없도록 평가 문항을 만들 때, 학생이 ‘시험에 나오나요?’라고 질문할 때 그런 자괴감이 든다. 시험에 나오는 것은 중요한 것인가.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공부할 가치조차 없는 것일까. 이런 식의 교육으로 우리 학생들은 정말 우리 문제를 해결할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자연은 거대한 도서관이다.-

 

자연에서 답을 찾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공통으로 발견한 부분이 있다.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다. 연구자들은 자연은 거대한 도서관으로, 엄청난 지식을 품고 있는 가능성의 보고(寶庫)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아주 소중하게 다룬다. 우리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고 그 가능성을 파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그 자연을 아주 쉽게 대상화하고, 전혀 거리낌 없이 파괴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아마 자신이 파괴한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졌는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지 못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교육을 통해 최소한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주변(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면 우리는 인간의 시야와 사고가 얼마나 편협한지 알 수 있다.”(71쪽, 별을 낚다.)

 

“벌 무리는 협동 본능이라는 타고난 특기를 십분 발휘해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엄청나게 빨리 모은다.”(125쪽, 누가 책임자입니까?)

 

“자연의 탄소 처리는 순식간에 감쪽같이 끝난다. …… 자연스럽게 소멸된다. 인간의 창작물에서 나온 탄소가 대부분 고스란히 쌓여갈수록 태산을 이루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211쪽, 콘크리트처럼 탄탄하게)

 

자연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엄청나게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과학적 혁신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세상 모든 물질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통해 내가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고, 어떤 물질과 함께 생활하는지를 찾아보게 되었고, 과한 것보다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결과를 보여준 곰의 동면을 통해 영양제를 과다하게 복용할 바엔 손실을 줄일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몸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화학적 약물치료로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빛과 눈과 두뇌가 창조해낸 바깥세상이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내 잘못된 태도를 반성할 수 있게 되었다.

 

 

-답을 발견하더라도-

 

관심과 끈기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은 연구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답은 우리 삶에 바로 적용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가 인정하는 안정적인 해결책이 우리 앞에 딱 나타나더라도 우리는 그 답을 실제로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욕구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도 하다.”(350쪽, 창문이 주는 고통)

 

인간의 욕구와 새의 안전 중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내 불편함을 통해 새의 안전을 지켜주겠다고 선택하는 인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의 욕구가 중요한가, 해결책이 중요한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자연에서 발견하기가 어렵다.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은 단순한 개인의 의지에 맡겨서는 해결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정치적 논쟁과 제도적 규제를 통해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초 연구는 인간에게 직접적이고 분명한 파급력을 미치는 이른바 ‘상급’ 연구의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387쪽, 지혜의 빛)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당장 상품화가 되는 기술은 투자와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의 기초가 되는 연구들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순수한 호기심과 관찰에 투자할 기업이 있을까. 역시나 이 부분도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자연은 우리에게 엄청난 영감과 혁신을 줄 수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완해줄 답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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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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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한겨레출판, 2024, 초판 1쇄)

산문, 에세이를 읽은 것이 참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뭔가 허름한 노포 술자리에서 임지은이라는 사람과 진지한 대화를 하며 술 한잔을 진하게 기울인 듯한 느낌이 든달까. 그녀가 내 곁에 앉아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최근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매우 진솔하게 말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세이란게 이런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이 매우 신선했다.

 

“선생님, 에세이는 도대체 뭘까요? …… 그러니까 에세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고 급기야는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야말로 에세이인가 싶기도 하고 …… 아직까지 제게는, ‘나 자신의 이럴 수밖에 없음’에 대한 글이긴 한데요.”(221~222쪽, 우정)

 

저자의 말 대로라면, 작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쓴 이 글이야말로 에세이인가 싶다.

 

 

-좋아함과 싫어함-

 

작가의 깊은 통찰에 탄복했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한 쌍이라는 부분을 읽으며 내가 왜 그토록 밋밋한 삶을 사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없는 만큼, 싫어하는 것도 별로 없다.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길수록 거기에는 모난 마음들이 불현듯 솟아나는 나에게 짙은 애정과 미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쌍이다.”(7쪽, 작가의 말)

 

내가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좋아하게 될수록, 그것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떤 친구를 매우 좋아한다면, 그 친구가 내게 소홀히 대하는 경우, 나는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작가의 이 통찰 덕분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비법(?)같은 것을 하나 얻을 수 있었는데, ‘이유 없이’싫어하는 마음은 분명 어떤 ‘좋아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균등하지 않은 사랑’(15쪽)이다.

비단 이 진실은 내 마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내가 싫어하는 만큼, 다른 누군가도 나를 싫어할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쉽게 알아챌 수 있지만, 그가 나를 왜 싫어하는 지는 사실 잘 알아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지 생각해 본다면, 나를 싫어하는 그는 바로 그것이 싫었던 것일테니까.

 

 

-타인으로 인한 그늘-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지만, 모두 다 의존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만큼이나 ‘타인으로 인한 그늘’(33쪽)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심지어 그것은 자라나기까지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나보다 훨씬 잘 알려진 사람이기에 분명 많은 사람으로부터 수많은 말을 들을 것이다. 나 또한 지금껏 살아오면서 타인에게 나에 대한 다양한 말들을 들었다. 오늘만 해도 어떤 말이 내 기분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것이 나를 흔들고 불쾌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꼭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말 덕분에 내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불필요한 눈치를 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비유해 보자면, 나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다. 수많은 말(파도)이 나를 이리저리 흔들어 댄다. 나는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무거운 평형추(타인으로 인한 그늘)가 필요하다. 타인의 말을 들으며 자라난 그 평형추는 큰 파도가 몰아쳐도 나를 안정감 있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자라나는 그 그늘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자신의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의 세상을 벗어나려 애썼다. 자신의 경계를 끊임없이 재설정하고 배반(54쪽)하며 살았다. 안정감 있는 평형추가 있었기에 작가는 좁은 연안을 벗어나 더 넓고 거친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작가가 그 흔들림과 든든함을, 밝은 면과 어두운 그늘을 함께 가져가려고 한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내가 더 오래 세상을 살아왔지만, 작가는 마치 인생 선배인 양 내게 아주 훌륭한 조언을 건네고 있었다.

 

 

-묘한 기시감-

 

이 책을 읽으면서 든 그 기시감. 너무도 이상했다. 뭔가 작가의 모습 속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이 겹쳐 보인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봐야겠다.

일단 어린 시절 가정환경으로 반지하. 맞벌이로 귀가가 늦은 부모님. 나를 위해 사주신 비싼 전집, 대백과사전. 그리고 그걸 열심히 읽는 나. 그 덕에 부모님보다 더 좋은 학력을 갖게 되었고, 인생을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술을 마셔도 절대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취한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일 바엔 위험하더라도 그냥 집에 혼자 가버리는 나. 외로움에 사무쳐 친구보다는 연애에만 집중했던 대학 생활. 미친 듯이 이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마셔버리겠다는 호기로 매일 술을 마셨지만, 지금은 술을 거의 입에 대지도 않는 모습. 결정적으로! 작가의 동거인의 이름이 나오는데... 내 이름과 같다. 뭔가 이 부분에서는 화들짝 놀라게 되었다. 덕분에 이 책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작가의 마음과 생각을 따라가며 예전의 내 모습과 지금을 비교해 보았다. 무엇이 달라졌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작가가 언급한 그 ‘리셋 버튼’(177쪽)도 지금의 내가 거의 매일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내 인생에 후회할 일들이 너무도 많다.

 

작가는 화실에서 강사로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이 부분 또한 내게 뭔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가 도망가지 않으면 아이들도 도망가지 않는다. 내가 진지하게 대하면 아이들도 진지해진다. …… 아이들은 어른보다 심장도 빠르게 뛰고 체온도 높아서 그 열기로 뭐든 익힐 수 있다.”(192쪽, 쓰잘데기 없는 예체능)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당당함, 진지함, 아이들을 존중하고 믿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 아이들을 충분히 믿고 있는지를 반성해 본다. 작가는 내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사람, 뭔가 멋짐이 뿜뿜 느껴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는 친구가 되어보고 싶다. 간절히 이런 친구를 사귀고 싶다. 어쩌면 작가는 내가 학생들 때문에 열을 뿜어내고 화를 토해낼 때,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사다 줄 것(208쪽)만 같은 그런 친구다.

 

 

작가는 이미 충분히 든든한 어른이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나도 그처럼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어른들처럼 힘 있는 인간은 힘없고 연약한 인간을 사랑하고 지켜줄 수 있었다.”(227쪽, 나의 쪼그라든 개구리)

 

“같이, 많이 웃고 살아!”(247쪽, 죽은 할머니 안심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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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탐정 사무소 2 - 울음은 금이 될 것이다,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연작
이락 지음 / 안녕로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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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시 탐정 사무소 ② (이락, 안녕로빈, 2024, 1판 1쇄)

글이 유독 매끄럽고 편안하다. ‘시’를 억지로 추리소설 속에 억지로 끼워 넣었지만, 그 설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을 받았다. 매력적인 전편만큼 후속편에서도 색다른 즐거움을 기대하면서. 역시나 이번에도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었다. 읽기 전 느꼈던 아쉬운 점은 오직 책이 전편보다 얇아졌다는 것뿐이었다. (전체 쪽수는 줄었지만, 오히려 에피소드는 늘었다. 그 점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독자가 소설적 설정(시를 읽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탐정)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었다.”(8쪽, 작가의 말)

 

나만 유독 이 소설적 설정에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니란 것을 작가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작가는 소설을 통해 ‘시’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 본래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듯하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가 되는 단서가 ‘시’로 대체된 점만 뺀다면, 이 책은 명탐정 셜록과 왓슨의 활약으로 해결되는 흥미진진한 사건들로 가득하다.

 

 

-‘시’로 마음을 전하다. -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은 속마음을 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말을 못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내 마음을 적절한 단어로 바꾸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성격상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속마음을 더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다른 이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만 끙끙 앓는 상태를 ‘어른스러움’이라 표현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소통의 어려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상황,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시 탐정 설록과 그의 조수 왓슨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물어봤더랬죠. 하지만 도무지 말을 하지 않습니다.”(15쪽, 명태)

 

왜들 그럴까. 왜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질책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겐 입을 떼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도 어려운 일일 수 있으니. 대신 그 털어놓을 수 없는 심정을 ‘시’로 공감해줄 수 있으면 어떨까.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시’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용기’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내 마음에 와닿은 ‘시’-

 

이번 책에서 내 마음에 와닿은 시는 김종길의 ‘성탄제’다. 특히 다음 구절이 내 마음에 꽂혔다.

 

“어느새 나도 /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52쪽, 똑같은 부자(父子))

 

나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다. 사실 아버지를 증오한 시간이 더 많았다. 아버지의 말과 행동이 내 어린 기억 속에 좋지 않게 ‘콕’ 박혀 있는 뺄 수 없는 가시같은 상처가 된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젠 나도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세 아이 모두 나보다 엄마를 더 좋아한다. 그럴 땐 좀 서운하기도 하다.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감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아들의 마음이 어떨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내가 아들일 때, 내 아버지가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는 내 거울일 것이다. 아버지 덕에 나는 아들과 잘 지낼 수 있길 바란다.

 

저자는 ‘자신에게 맞는 시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끌리게(108쪽)’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좋아하는 음식에 끌리는 것만큼 시가 끌리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배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완승의 ‘시 낭독’이 내게도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낭독은 나같이 시에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가슴으로 읽지 않는 낭독이 이 친구의 장점이죠. 듣는 이로 하여금 작품 자체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낭독이랄까요.”(110쪽, 해바라기 살인 사건)

 

그리고 비록 ‘시’는 아니지만, 시를 이용한 관계 회복 프로그램이 참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은 정부가 예산을 들여 지원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나도 적극 참여해보고 싶었다.

 

“신청자는 관계 회복을 원하느 사람과 관련된 시 한 편을 짤막한 사연과 함께 프로그램 주최 부서로 보낸다. 담당자는 사연의 진정성이나 초청에 응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선별한 사연을 설록에게 보낸다. 그러면 설록은 신청자가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사무소로 초청하여 대화를 나누며 둘의 관계 회복을 돕는다.”(83쪽, 금이 될 테지)

 

 

-시 탐정이 된 이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탐정보다 형사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사설탐정은 불법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일본이나 영국만큼 탐정 관련 유명한 작품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시 탐정’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처음에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약간 변형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형사가 아니라네. 내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도 있고, 진실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자유도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76쪽, 과거를 묻고)

 

“자유.” 나는 저자가 그 자유로움을 위해 탐정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를 비롯한 문학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법과 다르다. 시는 자유로워야 한다. 정의로운가를 판가름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법보다 더 정의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은 최소한의 정의이지만, 자유는 우리를 가장 정의로 이끌어줄 수 있다. 그래서 시 탐정 설록은 진상을 밝히는 것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저자에게 ‘시’는 무엇일까. 시는 보통의 이야기(128쪽)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란다. 그러니 수업 시간에 배우는 천편일률적인 해석은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무시하는 행위(136쪽)가 되는 것이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근무하는 나로서는 가장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한국사 수업은 우리 현실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 나는 시험에 무엇이 나오는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시야를 길러야 하는 것보다 문제를 풀 때 필요한 함정을 기억해야 하는 그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오늘도 갈등을 느꼈다. 과연 학생에게는 시험이 중요한가, 현실이 중요한가.

 

흥미진진한 이 추리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또 다른 후속작을 예고했다. 마치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는 터미네이터의 엄지처럼. 언젠가 다시 돌아올 후속편에서 시 탐정 설록(셜록)과 그의 조수 완승(왓슨), 그리고 괴도 류반(루팡)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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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내 편이 되지 못할까 - 타인을 신경 쓰느라 내 감정을 외면해온 당신에게
정우열 지음 / 김영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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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나는 왜 내 편이 되지 못할까 (정우열, 김영사, 2024, 1판 1쇄)


최근 여러 방송에 출연한 정신과 의사 정우열이 썼다.(자신의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이분의 삶은 내 목표다.) 책은 마치 누군가의 사연을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어주는 어떤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 같다. 먼저 저자는 신청자의 사연을 정성스럽게 읽는다. 주인공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담담한 목소리로, 하지만 따뜻한 애정을 담아 소개한다. 주인공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진심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나선 따끔하게 신청자에게 조언을 던진다. 여기부터 마치 솔로몬의 판결을 보는 듯한 분위기로 바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는 그의 공식 직함이 힘을 발휘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지금 주인공이 왜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는지, 주변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는지 속 시원하게 분석하고 풀이해준다.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던 그 답답한 문제가 단숨에 간단해진다. 그리고 해결책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네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사연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은 이 문장으로 귀결된다. 결국엔 모든 답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을 알아차려야 내가 건강한 상태를 만들 수 있고, 내가 건강해야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그 건강한 관계를 토대로 절대로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그 지옥같은 상황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게 된다. 모든 변화는 결국 내 안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연을 읽어주는 의사-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사연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매우 익숙하다. 마치 내 이야기 같거나, 아니면 바로 옆집에서 있는 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저자는 이 사연들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하고자 했을까.

 

“각 사연에 공감하고 나에게 해당되는 솔루션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상황은 다 달라도 ‘아, 사람의 마음은 이렇구나’하는 깨달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8쪽, 작가의 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를 잘 읽어낼 수가 없었다. 솔직히 각 사연에 공감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만큼 내가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감정의 무감각”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밝히기는 어렵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사연들 속 누군가의 모습과 비슷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사연을 읽으면서 공감하기 어렵지만, 일정 부분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사람이 이런 마음을 당연히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만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점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감정 표현에 매우 서툴렀다.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어서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한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도 어려워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라고 스스로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읽어주는 사연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제안하는 동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적 어려움이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 마음과 친해지게 도와드릴게요-

 

저자는 유튜브 메인 화면에 “내 마음과 친해지게 도와드릴게요”라는 문장을 써 두었다고 한다. 사실 내가 가장 서툴고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다. 왜 그리도 어렵고 힘들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대단한 위치에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막상 내면을 바라보면 생각이든 감정이든 기대에 비해 형편없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죠.”(7쪽, 작가의 말)

 

결론은 내가 너무 형편없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 스스로 내가 형편없음을 무의식적으로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별로인 자신을 감추기 위해 나와 마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며 살아왔다. 생각해보니 그 허무맹랑한 자신감은 나만 우선 생각하는 이기심이었다.

 

 

-내 감정을 마주하기-

 

저자는 지속적으로 나 자신과 마주하라고 주문한다. 게다가 저자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기를 써보길 추천한다. 이미 감정이 완전히 메말라버린 내겐 너무도 어려운 주문이다. 그래서 고민했다. 일기랍시고 매일 기록을 블로그에 남기고 있지만, 저자가 주문한대로 감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약간 색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었다.


이 책에 소개된 사연이 매우 다양하다 보니 내 상황에 거의 딱 들어맞는 것들이 많았다. 이 사연 속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을 내 상황에 이입해보는 것이다. 게다가 그 상황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해결책도 함께 나와 있으니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내 상황에 대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사연은 ‘청소년기 자녀가 있는 부모’, ‘인생 첫 좌절을 경험한 사람’, ‘부모(처가 포함)와 갈등을 빚고 있는 중년의 자녀’ 그리고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다. 이 사연 속 주인공의 상황을 자세히 읽어보고, 나와 비슷한 점, 다른 점을 찾아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정리해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 감정을 발견한다기보다 이 사연의 주인공이 경험한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는 연습이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하거나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매우 큰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사연 속 주인공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내겐 꼭 필요한 노력이라고 판단했다. 비록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내면의 문제다. 내 마음이 건강해야 주변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주변과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한다. 분명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다. 이것을 알아차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한 것 자체가 매우 큰 성과라 생각한다. 나도 저자의 조언대로 감정 일기를 써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은 사실 책을 읽고 그것에서 느낀 생각을 솔직하게 옮기는 서평을 더 열심히 한다. 뭔가 나와 다른 생각과 시선을 가진 사람이 색다른 주장을 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나와 다른 사람이 내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해 써 내려간 책이 가장 매력적이다. 어찌보면 이 서평 작업도 저자가 말한 감정 일기의 내용과 유사한 면이 있지 않을까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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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 스위치 - 고객의 무의식을 사로잡은 히트 상품의 비밀 86
하쿠호도 히트 습관 메이커스 지음, 정문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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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으로 고객의 지갑을 여는 "본능 스위치"라는 것이 있을까. 그 순수한 궁금증 때문에 서평단에 참여했다.

이 책에서 제시한 본능 스위치는 다섯 가지다.

① 민트형

② 컴포트형

③ 댐형

④ 아날로그형

⑤ 세리머니형

16~17쪽, 1장 본능 스위치란?

일본에서 인기있는 상품을 구체적 사례로 제시하면서 이 상품들이 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사람이 상품을 구매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본능)에 작용하여 습관적으로 행위를 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뜻한다. 이를 다른 말로 '촉매'(15쪽)라고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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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히 각 유형을 소개하면,

① 민트형은 강한 자극을 통해 실제보다 더 큰 효과​​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사례로는 치약을 제시했는데, 치약에서 나는 민트 맛은 실제 효능과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저 효능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강한 자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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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컴포트형은 민트형과 달리 강한 자극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자극이다. 대표적으로 말랑말랑한 촉감이 주는 기분좋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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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댐형은 점차 어떤 대상이 쌓여가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프나 수치를 이용하는 사례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먼지가 쌓이는 것이 보이는 청소기 디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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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아날로그형은 디지털 환경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는 감각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감각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휴대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실제 카메라에서 나는 소리를 넣은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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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세리머니형은 특정한 의식이나 절차를 거쳤을 때 기억을 자극해 기분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장치다. 하이볼 잔을 맥주 잔의 모양으로 만들어서 맥주를 마실 때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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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부터 6장까지는 각 유형의 본능 스위치를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면서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간략한 도표를 이용하여 요지를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케팅, 아이디어 기획 등에 활용하기 편하도록 간단한 매뉴얼로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일본 문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책에 나오는 사례나 공식을 이용한다면 간단한 아이디어는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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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맨 마지막 7장에서는 실제로 이 책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 본능 스위치를 활용하여 실제 마케팅에 적용해보는 사례까지 제시하고 있어, 저자들이 실제로 이 매뉴얼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그들과 유사한 결과를 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구체적 사례들이 일본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제품이나 적용한 마케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편의점의 '사바나 효과'(75쪽)다. 이런 아이디어는 전세계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분야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다만 일본과 다른 우리 문화에서는 어떻게 변형하여 적용해야 할지 고민해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벽걸이형 CD 플레이어'(165쪽)다. 일본 주택에서 활용하는 환풍기는 끈을 잡아당겨 팬을 돌리는 형태다. 대체로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형태의 환풍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느끼는 감정이 우리에게는 나타나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CD를 활용하지 않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아날로그식 환경을 디지털 제품에 활용해볼 수 있는 다른 사례가 있을 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우리 학교에서 적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바로 '독서 통장'(101쪽)이다. 은행에서 통장에 입출금 내역을 기록해주는 것처럼 독서 기록을 해주는 기계가 있는가보다. 이런 기계가 있다면 학교에 바로 도입해서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문제는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실물 통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이다. 적립식으로 학생들에게 기록을 남겨 준다는 점은 매력적이나, 다만 통장이라는 실물이 우리 학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통장 말고 다른 적립식 매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본능 스위치가 대체로 '일부러 발상법'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일부러'라는 말이 '상식을 깬다는' 뜻이라고 한다. 당연하고 쉽게 보이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런 창의적 생각은 쉽게 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식을 깨는 창의적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소개하고 있다. 또한, 마케팅에서 이런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획이 현재 활용되기 위해서는 최근 시장 경향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바로 '고객 체험'(CX, 225쪽)과 본능 스위치(무의식적 충동)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과대광고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비자가 지갑을 열고 상품을 소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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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나는 상품을 판매하는 입장이 아니라 구매하는 입장으로 이 책을 읽었다. 그러다보니 구매자의 본능 스위치를 실제 마케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물건을 소비하게 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케팅을 잘 하고 싶은 사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비 습관에 대해 반성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그 패턴을 한 번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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