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신안선 유물을 본 적이 있다. 수많은 그릇과 동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저 많은 물건을 어떻게 다 바다에서 건져올렸을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신안선이라는 배보다는 그 안에 실려 있었던 수많은 물건에 주목했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신안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 주목했다. 죽어나간 사람보다는 살아남은 사람.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며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배(신안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면?"(165쪽, 작가의 말)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뭇 사람들과 다른 재능을 발휘한다. '침몰한 보물선'을 보며 '보물'을 먼저 챙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피려는 마음이다. 몰락해가는 원과 고려에는 아마도 이런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달려드는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없을테니까. 보물을 보며 신세를 바꿔보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결국 역사 속에서 조용히 침잠했을테니까 말이다.
#궁금증 #하나
왜 이 소설의 제목은 '보물전'일까. 왜 '보물선'이 아닐까.
표지에는 주인공 맹랑이 바닷 속에 가라앉은 보물을 건지러 내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은 보물선의 침몰로 새롭게 만들어진 '보물의 밭(田)'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모르거나 죽은 사람이야 별 의미가 없다지만, 바닷 속에 가라앉은 보물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궁금증 #둘
왜 보물은 모두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드는가. 보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물의 존재를 알게 되는 인물은 주인공 맹랑, 류, 엄술, 싹수, 저미 아재와 윤씨 일가다. 그들은 모두 보물을 찾아 어떻게든 삶을 바꿔보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들은 모두 다른 처지에 있고,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삶에 대한 인식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하나같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그들을 결국 파멸의 길로 데려갈 것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주인공 맹랑은 어머니처럼 물질을 잘한다. 그 덕에 보물전에 직접적으로 다가갈 능력을 갖춘 아이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불행한 과거를 극복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류는 미지에 쌓인 인물이다.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은 것은 분명하고, 잠시 기억을 잃었지만 분명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아는 상류층 인물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끝까지 그의 정체를 숨긴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주인공 맹랑의 삶에 큰 깨달음을 준다. 기억을 잃었을 때에는 정의로운 마음과 솔선수범하는 행동을, 기억을 되찾은 후에는 맹랑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된다.
엄술, 저미 아재, 윤씨 일가는 주인공 맹랑이나 류와 다르다. 이미 고려에서 어느 정도 자기 삶의 기반을 가진 존재들이다. 엄술은 염전장의 아들로 온갖 아빠 찬스에 익숙해진 인물이다. 저미 아재는 동료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아내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염전 노동자다. 윤씨 일가는 염전 인근에서 거대한 농장을 차지한, 일종의 권문세가다. 그들은 이미 가진 것이 있고, 충분히 자기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음에도 보물에 욕심을 낸다.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자기 삶에 만족하고 보물을 내려 놓을 수 있었던 사람은 살아 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었다. 작가의 의도가 이런 부분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다.
#궁금증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