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전 - 1323 고려, 바다를 삼킨 소년 ㅣ 오늘의 청소년 문학 48
모세영 지음 / 다른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보물전_1323 고려, 바다를 삼킨 소년(모세영, 도서출판 다른, 2026, 초판 1쇄, 167쪽)
보물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신안선 유물을 본 적이 있다. 수많은 그릇과 동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며, 저 많은 물건을 어떻게 다 바다에서 건져올렸을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신안선이라는 배보다는 그 안에 실려 있었던 수많은 물건에 주목했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신안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 주목했다. 죽어나간 사람보다는 살아남은 사람.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며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배(신안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면?"(165쪽, 작가의 말)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는 뭇 사람들과 다른 재능을 발휘한다. '침몰한 보물선'을 보며 '보물'을 먼저 챙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피려는 마음이다. 몰락해가는 원과 고려에는 아마도 이런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달려드는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없을테니까. 보물을 보며 신세를 바꿔보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결국 역사 속에서 조용히 침잠했을테니까 말이다.



#궁금증 #하나

왜 이 소설의 제목은 '보물전'일까. 왜 '보물선'이 아닐까.

표지에는 주인공 맹랑이 바닷 속에 가라앉은 보물을 건지러 내려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은 보물선의 침몰로 새롭게 만들어진 '보물의 밭(田)'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모르거나 죽은 사람이야 별 의미가 없다지만, 바닷 속에 가라앉은 보물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궁금증 #둘

왜 보물은 모두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드는가. 보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물의 존재를 알게 되는 인물은 주인공 맹랑, 류, 엄술, 싹수, 저미 아재와 윤씨 일가다. 그들은 모두 보물을 찾아 어떻게든 삶을 바꿔보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들은 모두 다른 처지에 있고,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삶에 대한 인식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하나같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그들을 결국 파멸의 길로 데려갈 것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주인공 맹랑은 어머니처럼 물질을 잘한다. 그 덕에 보물전에 직접적으로 다가갈 능력을 갖춘 아이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불행한 과거를 극복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류는 미지에 쌓인 인물이다.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은 것은 분명하고, 잠시 기억을 잃었지만 분명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아는 상류층 인물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끝까지 그의 정체를 숨긴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주인공 맹랑의 삶에 큰 깨달음을 준다. 기억을 잃었을 때에는 정의로운 마음과 솔선수범하는 행동을, 기억을 되찾은 후에는 맹랑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된다.

엄술, 저미 아재, 윤씨 일가는 주인공 맹랑이나 류와 다르다. 이미 고려에서 어느 정도 자기 삶의 기반을 가진 존재들이다. 엄술은 염전장의 아들로 온갖 아빠 찬스에 익숙해진 인물이다. 저미 아재는 동료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아내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염전 노동자다. 윤씨 일가는 염전 인근에서 거대한 농장을 차지한, 일종의 권문세가다. 그들은 이미 가진 것이 있고, 충분히 자기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음에도 보물에 욕심을 낸다.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자기 삶에 만족하고 보물을 내려 놓을 수 있었던 사람은 살아 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었다. 작가의 의도가 이런 부분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다.



#궁금증 #셋

침몰한 배는 원과 고려의 몰락을 상징하는가.

'벼루'라는 물건으로 이어진 중국 천주 지역의 거상 문씨 일가와 고려의 위씨 일가. 그들은 단순히 벼루라는 물품만으로 이어진 교우 관계인 것일까. 아니면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는 원과 고려의 멸망을 대비하는 사람들일까. 거대하고 화려했던 보물선이 침몰했듯, 그들도 원과 고려의 몰락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까. 보물선의 침몰과 함께 거상 문씨 일가는 자취를 감췄고, 위씨 일가의 위계손만 류와 맹랑을 돕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주인공 맹랑은 사실 이들의 관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처지다. 그저 보물선에서 살아남은 류와 친밀한 관계가 되어 그를 살렸고, 그 덕분에 류와 함께 보물을 얻어 중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원과 고려의 몰락을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오늘의 삶이 버거운 하층민들이었기 때문이다. 국제 관계나 정치적 변화는 고사하고, 그들 주변 동네에서 벌어졌던 일들 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위씨 일가가 천주의 거상 문씨 일가와 교유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70년 뒤 미래를 쉽게 판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지금 발딛고 있는 자리에 서서, 어떤 변화가 닥칠 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 적극 대처해 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맹랑이 류와 떠나지 않고 엄술과 현실로 돌아오겠다는 선택을 한 것만 봐도 그렇다.



#역사 #배경

덧, 이 소설에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 있었다. 일단 문씨 일가가 '은괘'(은괴 또는 은궤의 옛말 또는 오기로 추정됨)를 가득 싣고 천주항을 떠나 경원항, 고려로 가는 경로를 선택한 이유가 인삼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고려는 인삼을 수출하기는 했지만, 거대한 양의 은궤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규모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활구라고 하는 은병이 거래되기는 했지만, 소수의 개경 귀족이라면 몰라도 대다수 하층민은 은을 사용한 거래를 할 수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고려에서 구입한 인삼을 '서역' 상인에게 판매하려고 한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천주항의 거상이라면, 분명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항로에서 대규모 상단을 운영했을 것인데, 그들이 서역보다는 동남아시아나 아라비아 상인들과 거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들에게 인삼이 그토록 중요한 거래 물품이었는지가 의아했다.

또한, 맹랑이 살고 있는 고려의 소금밭이 '향소부곡'에 속한다는 설정, 그리고 그들이 노비로 팔려 나간다는 설정이 조금 어색해보였다. 염전이 향이나 소, 또는 부곡 중에서 하나로 불렸다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고,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명백한 양인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비록 다른 양인들에 비해 매우 힘겨웠다는 것은 사실이나(신량역천) 그들이 노비로 팔려갈 수 있다는 설정은 맞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고려 말이라면 스스로 권세가들의 노비가 되어 가혹한 국가의 세금 수탈이나 노역 징발을 피하려는 양인들이 더 많았을 것인데, 그런 분위기가 반영되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