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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벽(壁)’은 매우 흔하다. 동네 골목에도 있고, 학교 둘레에도 있고, 심지어 내가 잠을 자는 방에도 빙 둘러 있다. 그 다양한 벽이 어떤 세계사를 만들어왔을지 매우 궁금했고,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 책에는 전근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벽이 수없이 등장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어렸을 적 따뜻한 이부자리에서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같이 필자는 벽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재미를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당시의 (옛날이야기의 교훈 같은) 생생한 지식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시간적으로 전근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장벽을 서술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대상이 먼저 나오고,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먼저 정리한 후에 우리에게 생소한 대상을 대입시켜 그 대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벽’하면 떠오르는 가장 일반적인 대상인 ‘만리장성’으로 시작해서 그와 유사한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연결하여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앞의 일반적인 내용과 뒤의 생소한 내용이 서로를 보완해주면서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베를린 장벽을 설명한 뒤 우리의 군사 분계선을 설명한 부분이다. 베를린에 장벽이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는 과정을 먼저 서술한 뒤, 아직도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군사 분계선을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유사한 방식으로 설명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에서는 금기시되는 군사분계선의 성격이나 월북의 문제까지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베를린 장벽을 먼저 제시했기 때문에 거부감이 적은 것이다. 심지어 지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후 독일에서 나타나는 흔적들은 우리에게 앞으로 닥칠 수 있는 문제를 예견해주기까지 한다. 우리가 평소 가까이 대하고 있었으면서도 그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이런 구조로 깨우쳐주는 것이다. 필자가 교육자로서 일반 독자에게도 이와 같은 깊은 통찰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부러웠다. 내가 역사교사로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역사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 역사교사의 사명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벽은 평등하다.
“장벽은 두 세계를 모두 사로잡는다. 그런 점에서 양쪽에 평등을 부여한다.”(186쪽)
이 책에서 벽은 대부분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선이다. 그렇기에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내쫓고 쌓은 성이든 침략자를 막기 위해 방어자가 쌓은 성이든 기본적으로 나는 벽을 기준으로 하는 두 세계는 불평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필자는 벽이 만들어내는 두 세계가 벽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장벽에 의해 나뉜 이쪽과 저쪽은 모두 ‘악의 포로’가 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벽이 만들어지기 전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도 벽이 만들어지면 벽에 의해 구분되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인데, 평소 건전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독일인) 젊은이가 유대인 소녀를 강간하는 것도, 게토에 갇힌 유대인들이 자신의 동족을 배신하고 죽음의 길로 내몰거나 뇌물을 받는 모습은 모두 벽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사람이고, 벽에 의해 사로잡혔다는 점에서 평등했고, 고통 받는 것은 동일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모든 종류의 장벽은 양쪽 세계를 평등하게(?) 옥죄어 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벽이 남기는 흔적
“이렇게 (키프로스 섬 니코시아) 장벽은 34년 만에 사라졌다. 그러나 아직 분단은 남아 있다.”(204쪽)
벽이 처음 만들어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벽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지 그 벽이 통행에 불편을 주고, 내 삶의 터전을 빼앗아가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 정도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벽은 오랜 시간 경계로 남아 있게 되고, 그 경계가 정치적, 민족적, 문화적으로 오랜 시간을 유지되면 물리적인 벽이 사라지고 나서도 그 흔적이 오래도록 남는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도 북한과 통일이 된다면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북한을 이해하고 그들에 대해 알아두려는 노력을 모두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우리의 벽인 군사 분계선이 사라진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하고,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될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벽이 허물어진 다음의 그 흔적을 지울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벽을 허무는 것이 그 오랜 기간의 단절을 치유할 수 있는 최종적이고 완성된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 벽이 없는 세상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신이 만든 대지에 사람은 장벽을 세웠다. 그리고 그 장벽을 허문 것도 사람이었다.”(231쪽)
결자해지(結者解之)]인가? 사람이 장벽을 만들었으니 그 장벽을 허무는 것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 장벽을 만든 것은 분명 그 당시의 정책 결정권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성이 인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도 그 부분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 1차 세계 대전의 경험이 가져온 결과인 마지노선, 수많은 해킹 공격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사이버 장벽 등이 그 사례일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겼다. 벽은 그 당시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결국 지난 역사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좋지 않은 흔적들을 남겼다. 그렇기 때문에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해야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벽이 완전히 없는 세상은 또 다양한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한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장벽은 이중적’이다. 우리를 보호해주는 동시에 우리를 이웃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벽은 사라지지 못하고 계속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는 것을 반복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말하는 ‘벽이 없는 세상’은 “인류애라는 이상을 품으며 손에 손잡고 벽을 넘는 일이 순진하다는 놀림을 받지 않는 사회”(301쪽)이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이 현실에 도래할 수 없는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난민의 후손이다.”(285쪽)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것보다 먼저 이동을 했다는 점은 나도 동의한다. 구석기인들은 사냥을 위해 계속 이동생활을 해왔을 것이고, 대제국을 세운 설립자들은 다양한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이주민(난민)을 경계하는 것은 역사적 경험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긴 역사의 틀에서 보자면, 어차피 고인 물은 썩어 도태될 것이 당연하고 언젠가 그 난민이 새로운 번영의 길을 열어줄 선구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런 이유에서라도 우리가 벽을 세워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활발하게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썩어버리지 않고 계속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기존의 세상보다 더 발전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