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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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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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경북 방언의 억양을 입고 있었을 침착한 문장들 아래에서 무엇인가 새어나오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촛불의 빛을 타고 끈끈하게 흘러나오는 것, 팥죽처럼 엉긴 것, 피비린내나는 것이있다. - P276

더 내려가고 있다.
굉음 같은 수압이 짓누르는 구간, 어떤 생명체도 발광하지 않는 어둠을 통과하고 있다. - P281

나는 스크랩 뭉치를 내려놓는다.
더이상 뼈들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모은 사람의 지문과 내 지문이 겹쳐지기를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 - P284

그걸 펼치고 싶지 않다. 어떤 호기심도 느끼지 않는다. 그 페이지들을 건너가라고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다. 복종할 의무가 나에게 없다. - P285

얼마나 더 깊이 내려가는 걸까, 나는 생각한다. 이 정적이 내 꿈의 바다 아랜가. - P286

기억나는 건, 그렇게 물을 때면 엄마가 내 손을 놓았던 거야 너무 세게 잡아 아플 정도였던 악력이 거품처럼 꺼졌어. 누군가가 퓨즈를 끊은 것같이, 듣고 있는 내가 누군지 잊은 것처럼, 찰나라도 사람의 몸이 닿길 원치 않는 듯이 - P298

밤새 끓으며 타는 죽처럼 그렇게 우린 함께 튀고 흘러내렸어. 도와주라, 나 구해주렌 속삭이다 잠든 얼굴에 손을 뻗었다가 물에 빠진 사람같이 젖은 뺨이 만져지면 엄마를 등지고 누워 생각했어. 내가 어떻게, 어떻게 당신을 내가 구해. - P313

이상하지. 엄마가 사라지면 마침내 내 삶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갈 다리가 끊어지고 없었어. 더이상 내 방으로 기어오는 엄마가 없는데 잠을 잘 수 없었어. 더이상 죽어서 벗어날 필요가 없는데 계속해서 죽고 싶었어. - P314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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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여전한 정적과 어둠이 기다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눈송이들이 우리 사이에 떠 있는 것 같다. 결속한 가지들 사이로 우리가 삼킨 말들이 밀봉되고 있는 것 같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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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어. 평소에 떠올렸던 일도 아니었어. 왜 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어. 멈출 수 없었고, 그렇다고 물 흐르듯 계속할 수도 없었어. 저 벽 아래에서, 장비가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시간을 그렇게 더듬거리며 다 썼어. 그 일을 한번 더, 다시 한번 더 반복했어.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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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다. 그는 나의 혈육도 지인도 아니다. 잠시 나란히 서 있었을 뿐인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작별을 한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는가? - P122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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