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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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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남아 있는 나날, 영국 남자의 문제. 내가 읽은 부커상 수상작들인데, 모두 재밌는 좋은 책이었다. 노벨상의 경우 수준이 너무 높아 읽기 어려운 작가도 많은 반면에, 부커상을 받은 소설은 항상 재밌었다. 영화로 치자면 노벨상은 칸 영화제, 부커상은 아카데미 작품상 정도라고 할까.


2022년 부커상 수상작인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이 최근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따끈따끈한 기대작이다. 기회가 되어 나오자마자 읽어볼 수 있었다. 스리랑카의 내전과 대학살 등을 배경으로 하는 책이라니 좀 무거울 수도 있겠다 했지만, '저승 누아르'라는 책 소개처럼 납량특집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말하자면, 귀신이 주인공인 소설.


말리 알메이다는 죽어서 중간계에 왔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은 기억에도 없고. 저승 입구에 창구가 있다면, 아마도 이 소설에서처럼 아우성일 게다. 뭔가 착오가 있었을 거라고, 내가 벌써 여기 올 때가 되진 않았다고, 억울하다고, 죽어도 꼭 해야 하는 일과 그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는 꼭 전해야 하는 말이 있다고. 다들 결사적으로 항의와 요청을 할 수도 있겠다. 어차피 죽었으니 죽을 각오로 뭐든 할 수 있겠다.


이걸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 아니 존재들이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절대자의 일갈이면 한 방에 정리될 수도 있겠으나, 이 소설은 저승을 그렇게 강력한 곳으로 그리지 않았다. 다분히 행정적이고 다분히 어중간하게, 이 소설에는 저승의 입구라 할 수 있는 중간계만 다루고 있다. 윤회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어쩌면 그 중간계가 저승의 전부이고, 저승이란 개념 자체가 종착점이 아닌 중간에 머물다 또 새로운 생으로 연결되는 관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죽어 저승(의 중간계)에 간 말리는, 일곱 개의 달이 뜨고 지는 동안, 행정 처리를 완료하고 새로운 빛으로 나아가도록 안내 받는다. 새로운 곳에 가면 아무리 누가 친절히 안내를 해준다 해도 어리둥절하게 마련일 텐데,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이 그린 세계에서도 딱 그랬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뭘 해야 하지? 어딜 가야 하지? 그리고 그 다음은?


재밌는 건 여기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귀 검사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귀에는 지문처럼 개인의 고유한 무늬가 있어. 접힌 부분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보여주고, 귓불은 과거에 지은 죄를 드러내며, 연골은 죄책감을 숨긴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빛'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한다." (28쪽)


귀의 무늬에는 한 인간의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실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골과 피부, 살이 형성하는 모양과 그림자는 지문보다 더 고유한 개인의 특징이다. 그 안에 지난 삶과 잊어버린 죄의 화석이 들어 있다. 단서라는 것이 대체로 그렇듯, 아슬아슬하게 눈에 띄지 않도록 숨겨져 있는 단서다.


"스스로 자기 귀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창조주가 가진 천재성의 증거야." (212쪽)


귀 얘기가 재밌어서 썼지만, 소설에서 이 얘기만 계속 하는 건 아니다. 말리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말리는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말 그대로 저승 누아르가 스펙타클하게 펼쳐진다. 추리 요소도 있고, 퀴어 요소도 있고, 조금은 고어하기도 한가? 일단 재밌다. 인도의 현대사를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하게 다룬 한밤의 아이들도 떠오르고, 저승을 그린 우리 영화 신과 함께도 연상되고. 간만에 완전 재미로 승부하는 소설을 만났다.


그런가 하면, 이 소설은 재미로 그치진 않는다. 아픈 현실을 담고 있기도 하고,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라는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 조금은 다른 모양의 사랑도 있고, 목숨을 건 확률 게임에서 어쩌면 영원을 두고 선택하는 숭고한 희생도 있다. 긴박한 사건과 묵직한 배경에 치고 빠지는 가볍고 날렵한 문체. 멋진 소설이다.


저승 세계에서 바람을 타고 나는 법을 배우고, 이쪽 사람들에게 속삭이는 법을 알기 위해 그 어떤 대가라도 치르고자 하는 귀신의 사연. 책을 펼치지 않을 수 없고, 책을 펼치면 덮을 수 없다. 빨려들어가고픈 세계를 제시하는 것, 그보다 큰 소설의 역할이 있던가.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이 있다. 믿고 읽는 부커상 수상작.


직원에게 빛이 무엇이냐고 묻지만, 물을 때마다 다른 답이 돌아온다. 어떤 이는 천국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부활, 어떤 이는 망각이라고 한다. 라니 박사처럼 무슨 뜻이든 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맨 마지막 정도만 제외하면 모두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들이다. - P31

너는 죽음이 달콤한 망각이라고 믿었으나, 둘 다 틀렸다. 죽음은 달콤하지도 않았고 망각도 아니었다. - P44

네 머릿속의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가라. 하지만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항상 자기 자신은 아니야. - P211

모든 이야기는 재활용되고, 모든 이야기는 불공평하다. 많은 사람은 행운을 얻고, 많은 사람은 불행해진다. 많은 사람은 책이 많은 집에서 태어나고, 많은 사람은 전생의 늪에서 자라난다. 결국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모든 이야기는 암전으로 끝난다. - P218

모든 사람이 우주에게 묻고 싶어 하는 질문을 너도 하고 싶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왜 죽을까, 왜 이런 모든 것들이 존재해야 할까. 우주의 대답은 이게 전부다. 나도 몰라, 멍청아, 그만 물어봐. 사후세계는 생전만큼 혼란스럽고, 중간계는 저 아래 못지않게 제멋대로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꾸며낸다. 어둠이 두려워서. - P285

인간은 스스로 생각한다고,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 또한 우리가 태어난 뒤 삼키는 가짜 약이다. 생각은 안으로부터, 혹은 밖으로부터 오는 속삭임이다. 바람을 통제할 수 없듯,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속삭임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불어오고, 우리는 생각보다 더 자주 그 속삭임에 굴복한다. - P481

너는 네가 생각했던 네가 아니다. 네가 생각하고 행하고 느끼고 본 그 모든 것이 바로 너다. - P498

삶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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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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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1992)이 이승우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못 알고 있었다. 장편 데뷔작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그냥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였다. 제대로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설가 이승우를 좋아해야 마땅하지, 라고 생각했다. 생의 이면이 난 힘이 너무 들어간 소설 아닌가, 로 읽혔고 그래서 아마 그걸 데뷔작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저 내 나름의 논리였던 듯.

 

지상의 노래는 2012년작이다. 생의 이면과는 20년 차이가 난다. 다른 것보다 난 이걸 주목하고 기대했다. 충분히 힘 빼고 쓴 거장의 작품. 확실히 생의 이면보다는 잘 읽힌다, 만 이승우의 소설은 술술 읽을 소설은 아닌가 보다. 글솜씨랄까 글재주랄까, 문장마다 드러난다. 그래서 좋지만 그래서 더 흐름속에서 자꾸만 나오게 된다. 내용이 아니라 문장에 주목하게 될 때도 많고, 한번쯤 되새겨야 소화되는 경우도 많다. 술술술 읽으면 쏙쏙쏙 들어와서 줄줄줄 따라갈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기독교적 구원의 문제를 시대의 고민과 연결'. '지상과 천상 사이의 갈등과 화해가 현실에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잘 형상화'. '인간 실존의 문제와 성‚속의 이원성의 극복, 초월자와 인간의 영원한 괴리 등 다소 무겁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인물의 내면에 대한 정밀한 묘사와 유려한 문체를 통해 그 관념성을 극복'. 한국현대문학 대사전에 이승우를 소개하고 있는 문구들이다. 소설로는 생의 이면과 지상의 노래 두 권밖에 못 읽었지만, 인용한 문구들은 그의 작품 저변에 전체적으로 공통되게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 두 소설에는 딱 그랬다.

지상의 노래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한다. 사촌 누나 연희와 박 중위의 사이 밖에서 크게 떠도는 후의 이야기와, 아마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묘사된 한정효의 유배 또는 구금이 그것이다. 이 두 이야기가 교차되는 지점은 벽골 천산의 수도원이다. 쥐도새도 모르게 아무 이야기가 아무에게도 퍼질 수 없느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펼쳐질 수 없는 공간적 제약을 뚫고 펼쳐져 누구에겐가 알려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가족이나 사랑이라는 작고도 큰 이야기가 한 줄기를 이루고, 정치와 역사라는 크고도 작은 이야기가 또 한 줄기를 이루고, 그 두 이야기가 어우러져 교차하며 또 이야기를 만드는 구조다. 언뜻 복잡다단한 이 구조는 소설 속에 그렇게 복잡하게 얽어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건 자연스럽게 또 어느 정도 쉽게 읽힌다. 사랑, 욕망, 사건, 그리고 사건의 영향, 그 영향이 만드는 속절없는 운명,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 초월해야 하는 것들, 그래야 닿을 수 있는 길들, 그리고 지상의 노래들, 천상이 있기에 가능한 지상의 노래가 소설 속에 잘 담겨 있다.

성경 구절이 많이 인용되고,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종교적인 주제도 깊이 다뤄지고 있지만, 소설은 그렇게 종교적으로 읽히진 않는다. 종교는 일종의 배경으로 역할한다. 천상의 삶이 실제한다 하더라도 현실에 그 삶이 펼쳐질 수는 없듯이, 천상은 지상의 배경으로 작용할 뿐이다. 천상이라는 배경으로 지상은 여러 노래를 만든다. 삶이라는 게 또한 그러하다.


지상의 노래는, 지상의 노래라는 제목답게, 천상의 주제에 집착하지 않는다. 종교적 배경을 저변에 깔고 있지만, 인간적이고도 매우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가장 두드러진 이야기의 중심에 존재하는 '후'라는 인물은, 성경의 암논과 압살롬을 대비한다. 이복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암논과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이고, 다말은 다윗의 딸이다. 암논이 다말을 겁탈하고 다윗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후에 압살롬 반역의 원인을 제공한다. 후는 다말을 범한 암논에게 복수를 하는 압살롬 자리에도 있지만, 암논의 자리에도 교묘하게 위치한다.

이 교묘한 이중적 자리매김이 소설의 긴장감을 더한다. 후는 연희의 복수를 위해 생을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사촌 누나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둘 다 맞다고 소설은 이야기하지만, 사랑과 욕망쪽으로 추는 점점 기우는 느낌이다. 사촌이지만, 후의 아버지가 연희에게는 아버지 같은 삼촌이므로, 둘은 거의 친자매에 준하는 사이로 읽히게 되어 있다.


아버지 같은 삼촌의 묵인 또는 방조, 혹은 협력으로 연희는 박 중위에게 겁탈당한다. 후는 박 중위에게 칼을 휘두르지만, 그건 정의의 실현이기 전에 상처받은 자존심과 사랑과 욕망의 경계에 있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마음 때문인 것을 소설은 주목한다. 저마다 자기 삶을 살아가지만, 그 저마다의 삶 때문에 누군가의 삶은 엉망이 된다. 저마다의 삶에 대한 집착으로는 지상의 노래가 조화롭게 울릴 수 없다. 이 노래는 필연적으로 슬프다.


소설 속에 펼쳐진 인간군상과 삶의 모습들은 여러 가지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 있고, 삶은 또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내 선택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닌 이유로 인해, 어떤 삶은 망가진다. 그 어떤 삶은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삶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삶의 길 위에서, 우리는 또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또 어떤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것들에는 더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하는가. 초월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살아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밌게 흥미롭게 읽었지만, 재미와 흥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만큼 묵직한 소설이었다. 그만큼 대단한 작품인데, 다만 나는 글솜씨가 너무 두드러져서 글이 자꾸 읽히는 경험을 하곤 했다. 너무 유려한 문체보다는 문체는 기억나지 않는 소설이 더 좋은 소설일 수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검과 하나가 되어 검은 사라지는 경지? 무협지를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검이 아직 눈에 보였다 말하고 있긴 하지만, 소설가 이승우는 강호에 유래를 찾기 힘든 전설의 초절정 고수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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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0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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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칼칼한 소설을 만났다. 정미경의 소설은, 분명한 자기 결을 지녔고, 고결함과 순수함을 애써 고수하지 않는다. 장르적인 요소도 다분하고 조금은 컬트적인 느낌도 주는 소설들이다. 깔깔해서 씹는 맛이 새록새록한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인간 본성과 관계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심각하지 않게 심각한 소설로, 아니 심각한데 심각하지 않게 읽히는 소설들이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라는 제목은, My Bloddy Valentine에서 따온 것이었다. 약간은 컬트적인 얼터너티브 음악을 하던 그룹인데, 나도 한때 듣긴 했지만 심취하진 못했던 음악이었다. 소설 속엔 주인공 부부가 전등사에 가면서 듣던 음악으로 나온다. 이들 음악의 특별한 점이 무엇이었던가 떠오르지 않아, 다시 들어봤다. 묘한 개성은 있지만 빠져들 수 없는 노래들을 불렀다. 지금 들어봐도 여전하다. 그룹명이 곡보다 더 인상적이다. 소설에서도 아마 그래서 등장하지 않았을까. 피투성이가 된 건 사랑일까, 사람일까. 떠난 사람일까, 남은 사람일까.

여섯 편의 소설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깊은 인상을 준다. 사건도 이야기 전개도 너무 극단적인 느낌이 있지만, 그게 이질적으로 겉돌지 않고 강한 인상을 새긴다. 뜬금없는 도약으로 이뤄지지 않고, 세상사 인간사 사람 마음의 흐름에 기반을 두고 펼쳐진다. 너무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듯도 하지만, 주저앉아 널부러져 있는 소설들은 아니다. 뭔가 계속 꿈틀거리고, 빠지기도 하고 초탈도 한다. 남은 자는 또 꼼지락거리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꼼짝할 수 없어도 꼼짝하며 살 수밖에 별 도리 없는 인생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또 어느 생은 이어지고, 또 어떤 생들은 닫힌다. 끝난 비극은 누군가의 비극으로 또 다시 이어지기도 하고, 덮이지 않는 것들을 또 덮고 사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호텔 유로, 1203은 최종 선택보다, 중간의 많은 선택이 인상 깊었다. 생이 이토록 누추한데 거기다 근검절약까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말에 왜 이렇게 뜨끔한가 모르겠다. 도둑질까지 하며 명품을 탐내는 가난한 사람. 실속도 못챙기고 살면서 허영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 이 극단적 삶이 내 평범한 일상 속에도 깊이 침투되어 있다는 걸 느낀다. 헛된 가치들에 미혹되진 않아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게 살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나는 오늘도 많은 헛된 것을 꿈꾼다. 평범한 일상이 다칠 만큼.

비소 여인이나 나릿빛 사진의 추억때문에 정미경의 소설이 컬트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일상에 스며든 폭력. 뉴스에서나 마주할 사연들을 우린 비슷하게 경험하며 살아간다. 별 것 아닌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고, 이젠 어떤 나락밖에는 빠져나갈 길이 없는 과정 중에 있음을 알고도 그저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다. 세상 속에 산다는 건,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할 내 삶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이번 생은 유일한 단 한 번의 기회인데 말이다.

제목부터 확 끌렸던,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가 역시 가장 빛나는 소설이었다. 스스로의 빛이 아니면 어떠랴 싶지만, 정미경의 소설은 그렇게 밝게만 흐르진 않는다. 스스로 빛을 내며 인생을 살고픈데 스스로 낼 수 있는 빛이 없는 모든 삶들의 좌절이 담겨 있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위안해봐야 빛을 발할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래야 어둠 속에서도 살 수 있다. 희미한 빛을 서로 반사하면서라도 말이다. 그런 위안이 정미경의 소설 속에 있다. 작품 해설의 제목이 멋지다. 어둠의 편에서 보는 빛의 자리. 이 단편집의 특성을 잘 잡아낸 표현 같다.

대부분의 우린, 별이 아니라 스스로는 빛나지 못하는 차갑고 검은 덩어리예요. 존재란 스스로는 빛날 수 없는 것.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론 그믐도 되고, 그런 거 같아요.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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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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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답게 읽고 쓰기에 관한 소설이다. 읽고 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소설인데, 소설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그렇지 않을까. 작가 지망생의, 작가 지망생에 의한, 작가 지망생을 위한 소설로 썼다. 작가 지망생이라는 단어는, 이미 작가인 사람을 포함해 작가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이다. 


원하는 만큼의 작가가 되지 못해서 B급이고 삼류인 인생 이야기를 쓰느라고, 글도 약간 그런 느낌을 주게 쓰기도 했다. 강영숙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라기보다, 영인이라는 작품 속 인물이 쓴 글처럼 실감나는 부분이 많다. 의도했다면 대단한 글쓰기다. 꼭 그렇게 읽지 않아도, 소설 라이팅 클럽 속에는 글쓰기에 대한 공부나 생각거리가 될 요소들이 가득하다. 나는 수준이 딱 맞아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부분.


다음 날부터 미친 사람처럼 길거리를 싸돌아다녔다. J 작가가 말한 소설 쓰기의 기본인 묘사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다른 장르와 비교했을 때 소설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제일 비슷하기 때문이야. 설명하려 들지 말고 보여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라구." 그러니까 어떻게 보여주냐구요, 정말 답답하네! (102쪽)


Show. Don't tell. 그치, 그거 다 안다. 근데 그게 참 어렵다. 힘 빼고 머리 고정하고 스윙하면 골프는 끝이다. 그게 해도 해도 안되니까 미칠 노릇이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글쓰기 조언. 그게 되면 그 모든 방황을 누군들 하고 싶으랴. 영인의 답답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머리에 가시가 박힌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이 어렵다. 우선 가시를 빼내야 한다. 그 박혀버린 가시가 모든 일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병을 앓는 게 삶인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이 이 소설 속에 담겨 있다. 바보가 되고, 환자가 되고. 열망은 주고 왜 재주는 주지 않은 건지 원망하면서.


미쳐버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김 작가는 미치거나, 미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그래도 어떤 열망을 지니고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좌절도 절망도 열망이 있기에 온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지켜내고 키울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고, 승자라 할 수 있다. 열망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 꼭 승자가 아니라.


라이팅 클럽은 그런 소설이었다. 꺾이고 꺾인 열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큰 성취가 삶이 아니라, 아마 이런 작은 견뎌냄의 모임이 삶이다. 결국 누가 좋은 작품을 쓰고, 누가 좋은 작품으로 살지 모를 일이다. 글쓰기의 재주로 삶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지, 다만 글이라도 성공적으로 쓸 수 있을지. 지난한 삶 속에서 지지부진한 글쓰기가 그 소소한 재미 속에 빛나는 작은 것들을 담아낼 수도 있고, 온갖 어려움을 겪어낸 펄떡거리는 열망이 그 모든 재주를 넘는 감동을 글 속에 담아낼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계속 쓰고, 누군가는 계속 읽고, 누군가는 계속 살아간다.


글은 말이야, 재미있게 써야 해. 그래야 계속 쓸 수 있어. 그래야 계속 읽을 수도 있지. 다들 시간이 없잖아.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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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잖아요
심명옥 지음 / 푸른향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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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법정, 황현산, 김훈. 이 위대한 스승들의 수필에서 받은 만큼의 감동이 이 작은 책에 담겨 있다. 따뜻한 시선과 넉넉한 마음으로 힘겨운 세상을 건너는 중. 술술 읽히는 책을 몇 번이고 덮으며 뭉클한 감동을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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