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 한국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이은선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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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교에서 여성주의를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낯설다. 왜냐하면 유교하면 남성중심주의적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페미니즘)는 서양에서 인간 자신에 대한 자각과 이성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계몽주의가 발달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산하면서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 역시 그 이전의 역사를 보면 남성 중심으로 여성을 억압해왔고, 그것을 종교적, 제도적, 윤리적 장치를 통해 공고히 다져왔다. 따라서 이것에 반하여 일어난 여성주의는 당연히 전통적인 가치와 제도, 윤리 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결합되면서 여성운동이 여성의 모성(母性)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도 우리 공동체의 삶을 더욱 더 바람직한 인간적인 삶으로 이끄는 것’(p.166)이라고 말하고, 여성운동이 그 본질적 가치를 찾는 길은 ‘여성과 여성의 몸과 여성 주체성의 신성한 차원을 다시 회복하’(p.167)는 것에 있으며, 이는 결국 ‘세속화’를 넘어선 ‘종교적’ 가치를 지니는 ‘영적 혁명’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영적 혁명’의 바탕을 한국의 유교에서 찾고 있다.

과연 유교는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 저자는 ‘오늘날 현대 종교현상학의 종교 이해는 어떤 구체적인 인격신적인 신에 대한 믿음이나 성직자 체계의 유무 등을 종교의 핵심으로 보지 않고 대신 삶의 진행과정에서 경험되는 성(聖)과 속(俗)에 대한 구별 의식을 그 핵으로 본다’(p27)라고 하여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추구하는 유교도 역시 종교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유교는 춘추시대에 활동한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인(仁)을 주장했다. 인은 그 글자대로 풀자면 두 사람(二人)을 뜻한다. 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서로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교는 원래부터 인간의 문제에 착안하였고 또한 공동체적 가치를 주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주로 논의하는 유학은 북송의 정이천과 정명도 형제, 주돈이, 장재 등에 의해 발전하고 남송의 주희에 의해 완성된 성리학(성리학)을 말하고 있다.

도학(道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리학은 그 이전의 유학에 비해 더욱 더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하늘(天)이란 존재는 완전무결하며 이 세상의 가장 본원적 원리인 이(理)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이가 각자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 성(性)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성이 도덕적 원리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한다. 따라서 성리학에서는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자각하고 그것이 더럽혀 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었으며, 이를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였다. 인의예지의 덕성은 곧 인간 사회의 덕목이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수행 방법이란 공동체 생활 속에서 그 덕목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성(聖)과 속(俗)이 분리 되어 있지 않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의 법통을 주나라에서 찾았다. 주나라는 이른바 ‘종법(宗法)’에 근간을 둔 제도를 운영하였다. 종법이란 한 집안을 장자인 남성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국가 운영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종통(宗統)을 세우는 것이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 제도를 이은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도 역시 종법 질서를 따랐으며, 그 결과로 남성 중심적이었고, 여성은 종속적 지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여성이 단순히 종속적 위치에 만족하고 가정 내에서만 머무르는 존재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써 영, 정조 연간에 생존했던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이라는 두 여성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비록 규중에 갇혀있는 여성의 몸이었지만, 학문을 연마하고 도덕을 수양하여 당시 남성도 이르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고, 이들은 며느리, 아내, 어머니, 종부로서 역할을 다하여 모든 이들이 존경을 받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삶이 ‘매우 역동적이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았다’(p.182)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적 개념으로 가정을 사적 공간으로 여기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여성들은 비록 가정에 머물렀지만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을 통해서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면 당시 가정은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영역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성은 가정 내에 머물면서도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오늘날 여성주의가 과도하게 사적 영역에 몰두함으로써 잃어버리고 있는 공적 영역의 일을 다시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p.185)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여성 여성주의가 인간성 상실과 생태적 위기, 과도한 경쟁 원리의 적용과 주관주의에 함몰되는 위험 앞에서 다시 ‘보살핌’의 윤리를 찾고, ‘어머니 되어 주기’의 의미를 찾는다면, 바로 한국 유교 전통의 여성들이야말로 참된 생명의 배려자와 살림꾼으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p187)고 말하고 있다.




또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나가야 할 길은 유교적 예화와 성화에 대한 자각을 서구적 주체성의 의식과 여성주의로 다듬어서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성찰의 힘으로 넓혀 나가’(p.205)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여성주의’를 완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성주의가 과연 보편적인 여성 운동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인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현재 처해 있는 인간과 여성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참고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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