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 아마티아 센, 기아와 빈곤의 극복, 인간의 안전보장을 이야기하다
아마티아 센 지음, 원용찬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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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 경제학자인 아마티아 센의 경제학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의 생존, 생활, 행복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선 제도적으로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하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정당한 요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또한 우선적으로 '기초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센의 주장을 들어보면 오로지 통계와 숫자의 함정에 빠져서 어느샌가 사람은 사라져버리고 숫자만 남아있는 보통의 경제학과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이다.

 

센의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한다. 9세 때인 1943년에 벵골에 대기근이 일어나서 수 백만 명이 아사하게 되는데, 이때 굶주린 사람들을 목격하여 충격을 받았고, 이 기억이 그를 인간 위주의 경제학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기아에 대한 센의 관점은 이렇다. 어느 나라라도 자연 재해 등으로 인해 흉작이 발생하여 기근 문제를 일으킬 수는 있다. 그러나 대규모 아사자는 오로지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는 나라에 한정된다. 즉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것은 그 문제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정부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우선 기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극민층의 생활을 안정시키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센의 다섯 개의 강연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이 강연들은 주로 2000년 전후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직후라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도 그 안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관심이 더 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국가들에 나타난 심각한 금융위기는 비즈니스에서 투명성의 결여, 특히 금융이나 상거래체계를 점검하는 공적 참여시스템이 부재했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효과적이고도 민주적인 공공논의가 없었던 까닭에 이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기아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경제적 문제의 근원에는 민주주의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를 기억해보면 메스컴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서구적 가치'에 무너졌다는 표현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아시아적 가치는 특히 싱가포르의 '리콴유'에 의해서 많이 알려졌는데, 주로 '유교적 권위주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2차 대전 이후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발전은 바로 '아시아적 가치'의 효과에 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센은 강한 부정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시아적 가치'라고 하는 것이 상당부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아시아적 가치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보급된 '기초교육' 덕택이라고 주장한다. 교육은 인간 개발을 이끌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 활동과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숙련도를 향상시킨다. 바로 이런 이유로 아시아에서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와 비슷한 말로 70년 대에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었다. 한국만의 독특한 사회, 문화, 경제적 여건에 맞는 민주주의를 시행하자는 것인데, 그 실상은 '개발독재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국적 민주주의'만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센의 말을 들어보면 그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가를 알 수 있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성장 전망을 결정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인구문제'라고 할 것이다. 각종 자원 고갈, 공해, 식량문제, 전쟁 발생 등의 내면에는 인구 과잉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시행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센은 '여성에 대한 교육'을 거론하고 있다. 여성이 교육을 기반으로 자기 개발하고 사회와 경제 생활에 참여하면 자연히 출산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마무리로 번역자의 말을 옮겨보면, "센이 강조한 인간의 안전보장은 가난한 나라,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국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한국사회의 내부에도 인간의 생존과 일상생활, 그리고 존엄성을 위협하는 물질성장의 그림자가 깊숙히 드리워져 있다."

 

현 정부 들어와서 한국에서 목도되는 '무슨 짓을 해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과 허구에 싸인 말인가를 알게 해준 책이었다. 그 주장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괴물의 그림자가 보인다. 똑바로 눈 뜨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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