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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2월
평점 :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그 통제권이 무의미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죽음을 앞둔 인간의 자기 결정권과 삶의 통제권에 대한 깊은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의사인 저자는 자신이 보아온 여러 환자들, 그리고 의사인 자신의 아버지의 경험을 빗대어 현대 의학의 맹점과 대안의 가능성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가족과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죽음을 먼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여겨 버리고 자신의 삶의 통제권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러다 통제권이 흔들릴 즈음부터 이 고민을 시작한다.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죽음에 반응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생겨나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며 또 다른 수많은 질문들을 던져주고 있다.
64p
이 새로운 인구 구조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 사회는 거의 없다. 우리는 여전히 65세에 은퇴하는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아주 적은 비율이었을 때나 말이 됐지, 그 비율이 20%를 육박해 감에 따라 점점 유지하기 어려운 개념이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초고령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연금개혁이 불가피하며 도심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요양병원들을 심심찮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노령 인구는 많아졌으며 이에 대한 대책이나 대안은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천편일률적으로 운영되는 요양원이 노인들의 삶의 주도권을 어떻게 빼앗는지 그리고 생존과 요양이라는 목적을 위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노인들의 심리 상태를 조명하며 의료 시설과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아버지가 길을 걸으며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요양병원은 아무리 좋게 포장한들 현대판 고려장일 뿐이다." 글을 읽어가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오르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덧 환갑을 넘은 부모님과 머지않은 미래에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될지 모른다. 또한 나도 머지않은 미래에 삶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94p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식과 존엄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사실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냥 노인들의 투정과 고집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의미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가깝다는 인식을 가지지 못했었다. 당장 나라고 한들 기약 없이 죽을 날까지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렇게 할 것 같다. 저자는 의료 시스템의 목적이 병의 치료나 통증의 완화보다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2년을 더 사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6개월을 살더라도 불편하지만 인간답게 사는 것이 옳은가. 저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의 제목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한 질문을 현실로 옮겨본 두 명의 사람의 소개하며 현대 의료 서비스의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201p
두 사람은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유지하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토머스는 사람들에게 돌봐야 하는 생명을 주는 것으로 첫발을 디뎠고, 윌슨은 잠글 수 있는 문과 자신만의 부엌을 주었다.
천편일률적인 호스피스 서비스는 훨씬 효율적이며 사회적, 경제적 목적 달성에 용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의 만족도는 외부에서 높을 뿐이며 당사자들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토머스와 윌슨은 환자들에게 각각 삶의 의미와 개인의 독립성을 부여하면서 환자들의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식물을 키우고 작은 동물들에게 밥을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의 생동성이 높아지는 것은 놀라운 결과이다. 인간에게는 삶의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부분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문화로 자리 잡은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필요하다.
287p
의료인들의 책임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한 번 죽는다. 생이 끝나 가는 걸 경험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 이른 사람들은 차마 꺼내기 어려운 대화를 기꺼이 나눠 줄 의사와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
이 책은 의료인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이다. 삶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이며, 정답이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은 결국 의료인들이다. 저자가 현대의학의 맹점에 대한 커다란 담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만나게 될 나의 주치의는 그런 분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