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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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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초급 한국어로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문지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2016년부터 2021년도까지 발표된 단편 소설들 중에서 'SF 소설'과 '이민자 소설'이라는 커다란 범주를 기초로 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소설집에 포함된 단편 소설들을 꿰뚫는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책갈피처럼 책 속에 끼어 있는 우리 삶의 '특이점'이다.  책갈피처럼 끼어 있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각인되어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삶에서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족의 죽음과 상실, 살인, 사고, 천재지변 등 일종의 '재난'이 발생하면서 생기는 일상의 균열을 통해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풀어간다.

'다이빙'과 '폭수', '아일랜드'는 가족의 죽음으로 변화된 삶과 삶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 보며, '서재'와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는 종이책이 멸종한 디스토피아에서 종이책을 매개체로 일어나는 이야기다.

'애틀란틱 엔딩'은 이 소설집에 실린 8개의 소설 중 가장 긴 단편이자 가장 일상에 가깝게 느껴지는 미국 이민자 1세들의 이야기를 '살인'이라는 사건을 바탕으로 풀어간다. 유일하게 명확한 가해자의 시각에서 '재난'을 풀어간다.  사실 전체 흐름과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이 책의 제목인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일본 대지진, 미국의 남북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복불복처럼 느껴지는 삶의 경우의 수와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실린 소설 중에서 가장 짧은 '어떤 선물'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재난 중 마치 선물처럼 가벼운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던져 주고 떠났다. 읽고 나서 조금 벙찌기도 하다...ㅋㅋ

깔끔한 문장이나 조금은 수수하게 느껴지는 글의 분위기는 사실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사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바닷가에서 언제 당도했는지도 모르는 파도가 나를 철썩 때리듯이 문장의 파고가 내 생각을 넘실거린다.

재난을 맞닥뜨린 인간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재난과 재난 이후의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에게 달린 일이다. 비워진 삶의 지면을 채우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상 가능한 길이 아닌 또 다른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은 모두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이다. 작가는 일련의 사건들로 무너져버린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결국 나약하나 단단한 인간의 몸부림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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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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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그 통제권이 무의미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죽음을 앞둔 인간의 자기 결정권과 삶의 통제권에 대한 깊은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의사인 저자는 자신이 보아온 여러 환자들, 그리고 의사인 자신의 아버지의 경험을 빗대어 현대 의학의 맹점과 대안의 가능성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가족과 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죽음을 먼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여겨 버리고 자신의 삶의 통제권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러다 통제권이 흔들릴 즈음부터 이 고민을 시작한다.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죽음에 반응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생겨나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며 또 다른 수많은 질문들을 던져주고 있다.

64p
이 새로운 인구 구조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 사회는 거의 없다. 우리는 여전히 65세에 은퇴하는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아주 적은 비율이었을 때나 말이 됐지, 그 비율이 20%를 육박해 감에 따라 점점 유지하기 어려운 개념이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초고령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연금개혁이 불가피하며 도심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요양병원들을 심심찮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노령 인구는 많아졌으며 이에 대한 대책이나 대안은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천편일률적으로 운영되는 요양원이 노인들의 삶의 주도권을 어떻게 빼앗는지 그리고 생존과 요양이라는 목적을 위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노인들의 심리 상태를 조명하며 의료 시설과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아버지가 길을 걸으며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요양병원은 아무리 좋게 포장한들 현대판 고려장일 뿐이다." 글을 읽어가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떠오르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덧 환갑을 넘은 부모님과 머지않은 미래에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될지 모른다. 또한 나도 머지않은 미래에 삶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94p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식과 존엄을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사실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냥 노인들의 투정과 고집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의미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가깝다는 인식을 가지지 못했었다. 당장 나라고 한들 기약 없이 죽을 날까지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면 그렇게 할 것 같다. 저자는 의료 시스템의 목적이 병의 치료나 통증의 완화보다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2년을 더 사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6개월을 살더라도 불편하지만 인간답게 사는 것이 옳은가. 저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의 제목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한 질문을 현실로 옮겨본 두 명의 사람의 소개하며 현대 의료 서비스의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201p
두 사람은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유지하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토머스는 사람들에게 돌봐야 하는 생명을 주는 것으로 첫발을 디뎠고, 윌슨은 잠글 수 있는 문과 자신만의 부엌을 주었다.

천편일률적인 호스피스 서비스는 훨씬 효율적이며 사회적, 경제적 목적 달성에 용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의 만족도는 외부에서 높을 뿐이며 당사자들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토머스와 윌슨은 환자들에게 각각 삶의 의미와 개인의 독립성을 부여하면서 환자들의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식물을 키우고 작은 동물들에게 밥을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의 생동성이 높아지는 것은 놀라운 결과이다. 인간에게는 삶의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부분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문화로 자리 잡은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필요하다.

287p
의료인들의 책임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한 번 죽는다. 생이 끝나 가는 걸 경험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 이른 사람들은 차마 꺼내기 어려운 대화를 기꺼이 나눠 줄 의사와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

이 책은 의료인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이다. 삶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이며, 정답이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은 결국 의료인들이다. 저자가 현대의학의 맹점에 대한 커다란 담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만나게 될 나의 주치의는 그런 분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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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마태복음 - 맛있게 먹는 말씀 맛집
왕인성 지음 / 두란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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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마음을 다지면서 구약은 창세기부터 신약은 마태복음부터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다시 마태복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그나마 익숙한게 마태복음인데 사실 또 복음서를 또 그 중에서 가장 익숙한 마태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복음서는 중첩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대조하면서 읽어봐야 하고 그냥 읽기만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메세지들을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의 제목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품을 수 있을 듯한 질문들이 제시되고, 그에 따른 간단하지만 명쾌한 답변들이 들어가 있다. 이 책이 소그룹 성경공부 교재 혹은 통독 참고자료로서 포지셔닝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많이 낮춘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던져지는 질문들이 무거운 반면, 너무 간단한 설명만 한 채 넘어가는 챕터들이 많은 점은 개인적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1장부터 28장까지 4-5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장이 마무리될 때마다 저자의 간략한 정리도 추가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마태복음의 큰 흐름을 잡는 데는 굉장히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챕터가 1장씩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소그룹에서 마태복음을 함께 공부할 때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산상수훈 부분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항상 어렵게 느껴지는 팔복과 잘못 들으면 오해하기 쉬운 예수님의 메세지를 포인트마다 잘 정리해주셨다. 

59p
특히 우리는 ‘교회의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이라는 표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세상 곧 믿지 않는 이들의 세계에서도 소금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 밖을 떠나서도 소금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빼먹곤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만’ 유다의 사자처럼 행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발견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단순히 착하고 친절한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세상의 기준이 충돌할 때가 있다. 그 때 우리는 세상의 기준보다 더 높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살아냄으로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 그것은 항상 칭찬받는 일도 아니며, 때로는 비난과 조롱을 감수해야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빛은 어둠 속에서도 그 빛을 나타내야 하며, 소금은 환경이 바뀐다고 짠 맛을 잃을 수 없다.

우스갯소리로 그리스도인들이 제정신이 들면 신앙생활 못한다는 말을 한다. 현타가 오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똑똑하게 자기 몫 잘 챙기는 사람들이 앞서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것도. 이렇게 헌신하다보면 자기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두려운 생각도 들면서 불안하고 의심하게 된다. 저자는 그런 시간을 지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준다.

80p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다 보면 때로 나만 손해 보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된다. 하지만 주님 안에서 우리는 결코 손해 보는 인생을 살지 않는다.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고, 유익이 없어보여도 성령을 주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찬양의 가사들이 ‘주께 내 삶을 드린다’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멜로디가 입혀져서 그렇지 사실 엄청 무거운 신앙고백이다. 찬양을 부를 때 정말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부르게 되면 사실 쉽게 부를 수 있는 찬양은 한 곡도 없다. 찬양과 기도는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자 두려움과 불안을 하나님께 맡 겨드리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기억함으로 이 세상을 지나간다.

164p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자들은 한 번의 고백이 중요하지 않다. 수시로 삶의 방향을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두는 재설정이 필요하다. 베드로가 사탄이라고 책망받은 것은 제자들,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보다 세상의 일에 집중하면 사탄과 연대하여 하나님을 거스르게 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다.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 계속 듣다보니 익숙해져서 지식으로 남을 수 있는 복음의 감격이 다시금 나를 주장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다가도 이러한 책을 읽으며 성경을 읽으며 오늘도 나의 중심이 하나님 나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살펴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책과 함께 마태복음을 묵상하면서 어긋난 방향과 마음들을 다시 설정하면서 많은 유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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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자리로 - 그 나라를 향한 순전한 여정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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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의 글은 언제 읽어도 놀랍다.  빨리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항상 그의 글에서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기독교 변증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 또한 C.S. 루이스와 21세기 C.S. 루이스라고 불리는 팀 켈러의 존재 때문이다.

이 책은 신자로서 가질 수 있는 깊은 15개의 질문을 바탕으로 저자의 저작들을 엮어서 펴낸 책이다. 사실 순전한 기독교와 고통의 문제, 헤아려 본 슬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정도만 알고 있었으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책들보다 영광의 무게, 피고석의 하나님 등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 다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새로웠으며 저 책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어떠한 것일까. 우리 주변에는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진짜 신자도 있을 것이고, 율법적인 종교인도 있고, 무늬만 크리스천인 사람도 있다.

기독교 신자의 문제이자 가장 큰 축복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그리고 가장 큰 자유로서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자유의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의중을 잘못 판단한 사람은 이생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그러한 사람들로 인해 교회가 교회되지 못한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92p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거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말은, 단지 그분에 대해 생각한다거나 그분을 본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나를 통해 움직이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에게 어떠한 교훈을 받고, 마음의 평안을 주시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주를 위한 산다는 것은 비단 목회의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본질적인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책에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신자의 덕목이자 자세에 대해서 말해준다. 지식, 종말, 용서, 자비, 사랑, 과학, 심판 등 크리스천들이 고민해봐야 할 다양한 논점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조금씩 읽어가는 성경은 영의 양식이 아니라 지식이 되며, 자칫 방심하면 계속 주워들은 설교 말씀들도 그저 지식적으로 남아서 내 삶에서 지혜로 작동하지 않는다. 신앙생활을 조금씩 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머무는 것이 어렵다.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 반면, 험난한 이생의 어려움들과 환경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인간적인 노력으로 애쓰는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91p
그리스도인은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능력을 받아 회개하고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다. 내면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 항상 그를 치유해 주고, 그 분이 친히 맛보신 자발적 죽음을 능히 본받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간다. 루이스가 말하듯이 우리는 넘어질때마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치유를 받고 그 분의 보혈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다시금 걸어갈 수 있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즌을 지나면서 교회가 이전처럼 모이기 어렵고, 기존의 사역자 중심의 예배 형식이 아니라 각 사람 사람이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함을 경험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자로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교회가 교회될 수 있다. 이 책은 신자로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게 머리 속에 떠 있는 몇 가지 의문들을 제거해주고 서게 해준다. 신자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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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에서 답을 찾다 - 모든 시작점은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 조정민 목사의 창세기 돋보기 1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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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모두가 알고 있는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이다. 이 책은 이 구절을 시작으로 노아의 방주까지의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저자의 창세기 강해 시리즈의 첫 책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성경은 항상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강해서들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다른 강해서들과는 달리 신학의 범주가 아니라 일상에서 성도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들을 다루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창세기에 숨겨진 수많은 함의들을 상세하게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솔직하게 지난 번 저자의 책을 읽고 엄청 실망했던 경험이 있어서 사실 이번에도 큰 감흥없이 책을 읽었던 이유도 있는 것 같다.

177p
성경은 오직 죄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는 유일한 책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곧 죄의 확장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사건들을 들여다 보면서 원죄를 통해 인류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 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죄가 가진 확장성에 의해 죄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지도 알려주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성경을 면밀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신앙서적을 많이 읽다보면 성경적 지식이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그 지식들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장애물이 될 뿐이다.

성경이란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며 항상 새롭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시 성경을 열심히 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성경이 너무 어려워 그저 읽는 것이 막막한 분들이라면 이러한 책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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