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시간을 걷다 - 동아시아 차문화 연대기
김세리.조미라 지음 / 열린세상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1. 오늘날 커피잔이나 찻잔과 비교해도 낯설지 않을 세련된 모양과 선의 토기. 그런데 가야시대에 만들어졌단 설명이 붙어 있다. 과연 이 그릇의 용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혹시 찻잔?

#2. 차 마니아들이 수집에 열을 올리는 자사호. 하지만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도 알기 어렵고, 몰라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선뜻 꺼내기 어렵다. 신비주의를 걷고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항상 접하는 한 잔의 차.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차에는 거의 대부분 ‘역사’가 숨어 있다. 차 마시는 방법부터 도자기, 차를 즐기던 공간, 더 나아가 차 때문에 생긴 각종 제도는 물론 차를 얻기 위한 전쟁까지. 이러한 끝없는 이야기는 동서양의 기술‧경제‧문화 발전사가 얽혀 있는 대하소설과도 같다. 반면 세계적으로 차 문화를 먼저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차로 맺어온 관계를 밀접하게 엮어낸 서적은 뜻밖에 적다.

차 관련 역사와 조선 후기 지성들의 차 교류사에 집중해온 김세리 교수, 차와 도자기에 깊은 조예를 지닌 조미라 선생이 공동집필한 <동아시아 차문화 연대기-차의 시간을 걷다>는 종합적인 안목을 갖고 차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차를 세계적 브랜드로 각인시킨 중국과 일본, 그 사이에서 영향을 받아온 한국의 차문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차와 불가분의 관계인 ‘차도구’ 그중에서도 도자기에 집중한다. 차를 여러 재료와 끓여 마시던 ‘고전의 시대’(당‧신라시대), 찻사발(다완)에 거품낸 가루차를 마시던 낭만의 시대(송대‧고려시대), 잎차를 우려 마시는 ‘실용의 시대’(명‧청‧조선, 일본 막부시대)로 구분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차에 매혹당한 사람들은 더욱 맛있고, 우아한 방법으로 차를 즐기려 온갖 공을 들였다. 그 사이 나온 아이디어는 종종 상상을 뛰어넘는다. 차를 공물로 요구하거나 세금을 부과한 한국과 중국의 역대 왕조들, 죽음을 무릅쓰고 차마고도 백척간두를 오가며 차를 팔아온 상인들, 순간에 사라지는 차거품 예술인 ‘투다’에 열정을 불태우던 송‧원대 중국인들과 고려와 일본인들. 심지어 일본은 ‘찻사발’ 때문에 조선을 침략했으며, ‘백색 황금’으로 불리는 도자기 개발에 성공한 유럽은 마침내 도자기 종주국이던 중국과 일본을 누르기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을 넘길 때마다 ‘과거는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카페에서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달콤한 시럽이 든 빙수 혹은 아이스 음료로 더위를 날리는 사람들. 최근 수년 새 우리나라 어디서든 흔해진 풍경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중국대륙 한가운데에서 일상적인 일이었다니. 게다가 일반 시민들도 심지어 한여름에 얼음 음료를 손쉽게 사마실 수 있었다니. 한잔 차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인생은 그때도 오늘날도 마찬가지였던 것일까.

차 문화의 암흑기로 꼽히던 조선 후기는 그 어두움이 더 심했다. 조정과 양반의 수탈에 못 이긴 백성들이 차나무를 베어버리던 시기였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 또한 길고 오래 남는다. 유배생활의 고통을 차로 달래던 다산 정약용과 그의 가르침을 받은 초의선사. 이들의 인연은 추사 김정희와의 인연으로 이어져 마침내 한국 차문화를 집대성한 <동다송>으로 꽃을 피운다. 제주에 유배된 추사를 끝까지 보필한 은송 이상적의 교류는 ‘세한도’라는 명작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다산의 제자들이 차를 가꾸고, 즐기기 위해 일궈온 계인 ‘다신계’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까지 100여년간 이어졌다.

당대의 ‘훈남’으로 꼽히던 정약용을 주인공으로 해 이들의 교류를 풀어낸 드라마 혹은 영화가 등장한다면, 한국 차문화에 새 바람이 일지 않을까? 최근 거듭되는 기후이상과 작황불량, 국산차 소비위축을 겪는 국내 차산업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차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조금은 어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친절한 설명과 꼭 필요한 사진들 덕분에 쉽게 읽히는 책이다. 역작을 내신 두분께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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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분발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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