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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인도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스미타는 카스트제도에서 최하위이자 노예인 수드라보다도 더 낮은 달리트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고,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 스미타처럼 달리트로 태어난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싼 똥을 맨손으로 바구니에 담아 치우는 것이다. 노예보다도 못한 존재로 태어났기에 학교는커녕 글도 읽지 못했고, 높은 계급의 사람들과 접촉하지도 못했으며, 말을 거는 것, 쳐다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달리트의 삶을 사는 스미타. 자신은 타인의 배변을 맨손으로 치우는 삶을 살지만, 하나뿐인 딸은 전 재산을 주어서라도 학교에 보내 글을 배우게 하겠다는 것이 유일한 꿈이자 삶의 낙이었던 스미타. 그렇지만 학교에서조차 부당한 대우를 하고, 이에 대해 ‘하지 못하겠다’고 당당히 말한 딸아이가 심하게 매질당한 상태로 돌아온 그날 밤, 스미타는 목숨을 건 중대한 결심을 한다. 자신과 딸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인모로 가발을 만드는 공방을 무려 3대 째 운영하고 있는 줄리아의 가족. 시칠리아의 전통적인 방식대로 가발을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발 공방이라는 사실은 줄리아와 가족들에게 아주 큰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공방을 열고 닫았던 줄리아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게 되고, 줄리아는 우연히 공방이 엄청난 빚더미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공방의 식구들의 미래와 밥줄은 모두 이 가발 공방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어떻게든 이 공방을 살려야 하는 줄리아. 돈이 급급한 줄리아에게 우선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라며 넌지시 온 제안은 바로 결혼이다. 자신의 꿈과 유일한 희망인 공방을 살리기 위해 줄리아는 과연 이 제안을 수락해야 하는 것일까?
캐나다에서 오직 로펌 최고 변호사가 되기만을 바라며, 보이지 않는 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길만 걸어온 사라. 두 번의 결혼을 했고, 두 번의 이혼을 했으며, 아이들의 학교 행사들과 사소한 일상들까지 모두 다 포기해야만 했다. 더 강인한 모습으로, 신중하게, 또 믿음직스러운 변호사가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 그런데 갑작스런 암 선고를 받게 된다. 최고의 로펌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했던 모든 일들은 다 수포로 돌아가고, 그녀를 물어뜯기 위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눈독을 들이고 있던 경쟁자들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아무 소득 없이 침대에 눕게 되었다.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완벽한 커리어, 완벽한 변호사라는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좌절하고 주변의 시선에 더욱 더 괴로워하게 된 사라. 과연 사라는 암과 함께 찾아온 우울증이라는 녀석에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무엇이 더 그녀를 강인하게 만들어 주었을까?
책 속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각기 사는 형편도, 위치도, 나라도 다르지만 모두 다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그들의 삶을 결정지을 만큼 아주 거대하고도 복잡하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두려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각자의 삶의 배경을 통해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 몸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몸을 내던지면서 사회와 나라와 그들의 환경에 저항했고, 마침내 승리를 이끌어냈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이 세 사람이 어떻게 [세 갈래 길]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그들은 남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닥칠 때, 보통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하지만 스미타와 줄리아, 그리고 사라는 잠깐 머뭇거릴 수는 있으나 온 힘과 열정을 다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회에 신념으로 여겨져 왔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맞서 싸운다.
정말 안타깝게도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아주 많다. 그들은 신분 차이, 사회적인 관습, 인종, 성별 등 다양한 이유들로 차별을 받고 마침내 그들을 쓰러뜨리려 한다. 심지어 일어나려고 애쓰는 사람을 더 깊은 수렁에 가두어두기까지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다행이고 또 감사한 것은, 책에 나온 스미타, 줄리아 그리고 사라와 같이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깨우쳐질 거라는 거다.
소설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차별들과 억압들을 둘러보며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 역시 그 일들을 감내하는 것은 아닌가, 이들처럼 일어나 싸울 배짱은 되지 않더라도, 사리분별은 바르게 해야겠다는 자세를 취하게 됐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첫 발을 내딛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갔던 세 명의 인물들의 모습들을 지켜보며 어느새 부터인가 나도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삶의 주도권을 잡고,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았던 강인한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