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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게임에서 진 적은 거의 없다. 게임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냐고? 그렇다면 승부를 겨뤄보지 않겠는가. 누가 진짜 고수인지, 확실히 가려보지 않겠는가.”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패배나 실패라는 것은 몰랐던 사쿠마는 다니던 광고 회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기획이 좌절되자 그 일의 원흉인 가쓰라기 가쓰토시 부사장에게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부사장의 집 근처를 갔다가 우연히 주리가 담을 넘어 가출하는 것을 목격한 사쿠마는 부사장의 약점을 잡으려는 생각으로 주리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주리를 통해 그녀가 부사장의 혼외자녀라는 것, 가족들간의 불화로 가출했다는 것과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쿠마는 자신을 ‘거짓유괴’ 해 달라는 주리의 말에 유괴 범죄로 부사장에게 복수를 꿈꾸게 된다.
아무리 혼회자녀라고 해도 딸은 딸이지만, 이상하게도 사쿠마의 예상과는 다르게 부사장은 매번 모임에 꼬박꼬박 참여하고, 당황하거나 빈틈을 내보이지 않는다. 3억 엔이라는 돈을 주리의 몸값으로 책정해 보내야 했기 때문에 바빠야 할 법도 하고, 유괴 신고도 하면서 딸 주리를 찾을 것이라는 사쿠마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멀쩡해도 너무 멀쩡한 부사장. 과연 사쿠마는 완벽 범죄를 할 수 있을까? 부사장에게 복수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소설들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게임의 이름은 유괴]를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네임벨류 때문이었다. 언제나 대단하다고 생각해왔던 작가이기 때문에 그가 쓰는 미스터리 소설은 어떠한 식으로 보여질 지가 무척 기대되기도 했다. 상황에 맞는 가면을 바꾸어가며 완벽 범죄를 꿈꾸는 사쿠마와, 돈이 필요해서 가족을 상대로 거짓유괴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동조하는 주리의 캐릭터는 진부해보일 지는 몰라도, 사쿠마의 뛰어난 두뇌 회전과 상황에 200% 몰입하는 성격을 토대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게임의 이름은 유괴]를 진부하지 않게 써내려갔다.
정말 마지막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까지 휘몰아치는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짝 아쉬운 것은, 반전의 반전을 생각보다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는 거다. 한 번의 반전은 깜짝 놀랐지만, 반전의 반전은 앞부터 열심히 달려왔던 나를 순식간에 힘이 쭉 빠지게 하는 내용이었다. 결말에서 작가가 의도했던 반전은 성공했을지 모르나, 그 반전의 반전은 좀 신선하지는 못했다는 평을 내리고 싶다.
이 책을 통해서 언제나 줄거리가 3D 영화화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더 경험할 수 있었다. 탄탄한 스토리나 깜짝 놀랄 반전보다는, 그가 창조해 낸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에 집중하면서 읽었던 [게임의 이름은 유괴]를 통해 두뇌 회전이 빠른 사쿠마와 뭔가 수상한 주리가 생동감 있게 내 눈 앞에서 그려졌다. 그리고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은 사람을 묘하게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책 [게임의 이름은 유괴]. 미스터리 소설계의 독보적인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무언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는 느낌은 내 착각일까? 결말은 아쉬웠지만 내용은 탄탄하고 훌륭했으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찾아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게임의 이름은 유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