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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사랑이 시작되었다
페트라 휠스만 지음, 박정미 옮김 / 레드스톤 / 2017년 5월
평점 :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사는 이자벨레는 27살의 플로리스트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사실 이자벨레는 못 견디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익숙한 습관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참 재미없게 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자벨레는 주기적인 삶을 선호했고, 그래서 매 주 요일마다 하는 일이 정해져 있었다. 예를 들면 월요일에는 장을 보고, 화요일에는 수영을 하고, 수요일에는 빨래, 목요일에는 아버지의 묘지, 금요일에는 스포츠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집 청소, 친구 만나기와 어머니 방문 등이 포함돼 있었다. 앞으로의 10년까지 계획이 모두 다 돼 있고, 계획돼 있지 않았던 일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자벨레의 지난 27년간의 삶은, 옌스라는 한 요리사가 그녀의 인생에 등장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말이다.
11년 동안 자신이 일하는 꽃집 앞에 있는 베트남 식당에서 점심으론 누들수프를 먹었던 이자벨레는, 하루아침에 베트남 식당이 문을 닫고 대신 다른 레스토랑이 문을 열자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는 수 없지’하고 체념할 법도 한데, 이자벨레는 즉석식품으로 점심을 대신하면서 그 레스토랑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은 속는 셈 치고 한 번 방문한 그 레스토랑에서 요리사 옌스와의 다툼으로 드러나게 된다. 꽤 까탈스러운 입맛과 취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것’보다는 ‘원래 것’을 더 선호하는 그녀의 성격 상 이자벨레는 아무리 봐도 훌륭한 손님은 아니었다. 타고난 까칠한 성격을 갖고 있는 요리사 옌스에게 그것이 좋게 보일 리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말다툼을 벌이게 되지만, 서로 한 발씩 양보하면서 옌스는 이자벨레에게 새로움에 대해 알려 주고, 이자벨레는 옌스에게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게 해 준다.
티격태격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들어 버린 옌스와 이자벨레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정말 ‘뜬금없이’ 서서히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심장이 쿵 하고 울리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이자벨레와 한 번 이혼을 한 경험이 있는 옌스. 계획적인 삶을 사는 것을 선호하는 이자벨레와 한 번은 ‘휘리릭’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옌스. 책을 읽는 내내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과연 이들이 어울릴까? 엄연히 한 책의 주인공들이고 결말은 둘이 이어지는 것으로 결론 날 게 분명한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그런데 역시 사랑은 사랑인가보다. 심장이 쿵 하고 울린 남자를 만나 봤지만, 자신이 평생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던 남자를 만났지만 자신이 ‘상상했던’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연애는 현실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깨달은 이자벨레는 결국 자신의 마음이 말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머리가 원하는 게 아니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길 결심한 것이다. 그녀는 옌스를 택했고, 계획적인 삶도 좋지만 가끔은 휙 떠나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도, 가끔 ‘뜬금없는’ 일상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살다 보면 정말 어울릴 것 같았던 두 사람의 끝이 좋지 않다든가,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이었는데 신선하고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준 이 책에 정말 고맙다.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은 이자벨레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이 다 계획적이고 정해져 있는 순리를 택하는 삶을, 순종적으로 고분고분 순응하면서 사는 것을. 때때론 호흡이 곤란한 모습까지 보이면서, 나는 이자벨레가 얼마나 ‘계획’에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묘사한 이유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자벨레의 그러한 강박관념을 단편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한 인생을 27년간 살았던 이자벨레는, 거짓말같이 자신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의 옌스를 만나면서 좀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된다. 의도치 않게 백수가 된 그녀는 그 길로 항공사에 찾아가 2주간 베트남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까. 단골집이었던 베트남 음식점이 사라진 이후 생긴 새 레스토랑에 가서 수프가 없다며 불평했던 그녀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 함께 마음이 뜨거워졌다. 사랑으로, 이자벨레가 변화한 것이다.
이자벨레가 참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형을 일편단심 기다리는 것도, 또 심장이 ‘쿵’ 해야지만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믿는 것도. 참 부러울 정도로 순수했던 이자벨레는, 옌스를 통해서 그런 것도 사랑이지만 가끔은 조용히 스며드는 것도 사랑이라는 걸 알려준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하고 반성했다. 나는 과연 변화한 이자벨레처럼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속박돼 삶을 살고 있던 과거의 이자벨레처럼 살고 있는 것일까? 이자벨레가 책을 통해 보여준 건 아무래도 ‘변화한’ 자신의 삶이 훨씬 더 좋다고, 훨씬 더 행복하다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뜬금없는’ 삶도 가끔은 괜찮다고 말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