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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간단 베이킹
마치노 키미히데 지음, 박문희 옮김 / 스타일조선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요리를 싫어하게 된 것이..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아마도 한 여섯 살에서 일곱 살쯤 되었을 때일 거다. 나에게는 연년생인 남동생 딱 하나가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쌍둥이 아니냐는 소리를 제법 들었을 만큼 어린 시절엔 성격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했다. 그 시절엔 내 남동생이 가장 친한 친구라 별것도 아닌 것에 경쟁심에 불타올라 하루가 멀다 하고 시합을 하곤 했다. 엄마가 주신 간식 빨리 먹기, 심부름 더 빨리 하기, 동전 더 많이 모으기, 그릇 깨끗이 닦기 등.. 그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엄마를 도와서 요리를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를 ‘도운’게 아니라 오히려 ‘방해’를 하지 않았을까 싶고, 요리를 했다고 하기 보다는 애호박이나 감자 따위를 씻은 것뿐이지만 그래도 나름 그 시절 나와 내 동생은 정말 재미있게 엄마를 돕곤 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엄마를 졸라서 칼로 감자를 썰어보겠다고 했고(된장찌개를 만들던 날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결국 자신이 보는 앞에서 매우 매우 조심하여(이 부분은 특히 강조됐다) 칼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셨다. 우리는 뛸 듯이 기뻐했고, 엄마의 현란한(?) 칼솜씨를 머지않아 우리도 따라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에 부풀었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고, 우리도 어느덧 좀 서툴지만 엄마가 한 번 더 자르지 않고도 바로 찌개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감자를 다루는 레벨이 되었다. 하지만 자만하면 큰 일이 나는 법.
어느 날, 요리를 함께 하던 엄마에게 갑자기 무척 급한 전화가 와서 우리 남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말만 남기고는 부엌을 나가셨다. 당시 무척이나 어렸기 때문에 둥근 감자를 우리는 한 번에 자르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고(안전을 위해 언제나 엄마가 먼저 반을 잘라주신 뒤 잘린 단면을 도마에 두고 자르곤 했다) 그 기회를 언제나 원했던 남동생에게는 정말 절호의 기회였다. 호기롭게 도전한 그 아이는 결국 자신의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를 한 2cm쯤 깊게 찌른 후에, 부엌과 도마가 피바다가 되고 집안에 울음소리와 다급한 목소리가 가득 울리고,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고, 몇 바늘 꿰맨 후에야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그 뒤로 동생과 나는 칼을 보면 질겁하고, 설거지를 할 때도 칼을 다루는 건 조심스럽다. 내가 다친 것도 아닌데 아직까지도 나는 칼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피바다가 됐던 부엌을 기억하게 되어 몸서리를 친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때면 지레 겁을 먹게 되고, 서툰 칼질을 떠듬떠듬 하면서 살기를 어연 십 수 년. [아이와 함께 간단 베이킹]이라는 제목 하나로, 나는 그렇게 요리의 세계에 처음으로 입문하겠노라 결심하게 됐다.
‘아이와 함께’라는 말에 처음에는 조금 뻘쭘했다. 아니, 내가 애도 아니고 집에 어린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과연 내가 읽어도 될까 싶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도 좋고, 안전하고,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하다는 말이 성립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역시나, [아이와 함께 간단 베이킹]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빵을 잘 먹지는 않지만 머핀은 무척이나 좋아하고, 가끔은 어메리칸 스타일로 팬케이크를 먹는 것을 즐기고, 떡이라면 껌뻑 죽는 나에게 이 책은 딱 맞춤형이었다. 시간도 2-30분만 있으면 바로 완성이고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구성돼 있어서 요리 초보 입문자인 나도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는데?’ 하고 자신감을 만땅 갖게 해 주었다. 시간을 내어 내일은 머핀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만들어 본다면, 칼질을 하지 않으니 위험하지도 않고, 조리 시간도 길지 않아 내 동생이나 나처럼 트라우마를 갖지 않고 요리를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긍정적인가!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꼭 한 권씩은 구비해 둘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