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언제 집에 가요? - 아빠, 엄마, 네 살, 두 살. 사랑스러운 벤 가족의 웃기고도 눈물 나는 자동차 영국 일주
벤 해치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원 제목은 [Are We Nearly There Yet?]이다. 단어 그대로 풀이하자면 [우리 언제 도착해요?]가 맞지만, 왜 굳이 [우리 언제 집에 가요?]라는 제목을 썼을까 궁금해 하면서 책의 첫 장을 열게 됐다. 사실 읽을 책 고르기를 할 때 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꼼꼼하게 본 다음 읽는 스타일은 아니라 그냥 책이 내 눈길을 끌면 읽게 되는 편이라 그저 자동차 영국 일주에 관한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웬걸. 책을 읽기도 전에 작가 벤 해치가 그의 아내 다이나와 함께 여행 가이드북을 썼다는 이력이 있어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책 겉표지에 적힌 아빠, 엄마, 네 살, 두 살. 사랑스러운 벤 가족의 웃기고도 눈물 나는 자동차 영국 일주는 모두 다 벤과 그의 가족에게 일어났던 실제 사건들을 모아 놓은 글이라는 것이다. 어렴풋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여행 중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어 (소설인 줄 알았을 때에는) ‘, 이야기에서 아빠가 여행 중에 죽고 엄마랑 두 아이가 역경을 이기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겠구나.’ 싶었는데 작가 벤이 여행 중 사고로 죽었다면 이 책이 어떻게 빛을 볼 수 있었단 말인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그리고 새로 [아빠, 우리 언제 집에 가요?]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을 깨달으면서 책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바로 작가의 유머러스함이었다. 전혀 웃기지 않을 법한 상황에도 그와 아내 다이나는 재미있는 상황들을 만들어냈다. 이 둘은 진짜 괜찮은 조합이었다. 대화를 많이 나누는 부부라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많았고, 서로의 결함은 읽는 내가 봐도 정말 재미있기만 했다. 예를 들어, 다이나는 거북이 공포증이 있고, 벤은 박쥐를 무서워한다. 다이나에게 무슨 일로 토라진 벤은 가이드북을 쓰기 위해 방문한 수족관과도 비슷한 곳에서 일부러 거북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이나는 만으로 네 살도 되지 않은 두 어린 아이를 그곳에 남겨두고 줄행랑을 친다. 벤을 원망하면서. 벤은 시치미를 뚝 떼고 거북이가 있는 줄 몰랐다고 하지만 함께 산 지 15년도 훨씬 더 된 두 사람이니까 거짓말 하는 것은 금방 알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도 복수를 하는구나. 참 두 사람의 유쾌한 케미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나는 결혼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지만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 떠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라는 것은 안다. 당일치기나 일주일도 아니고. 이 두 사람은 어린 아이들과도 함께 떠날 수 있는 곳이라는 주제를 잡고 무려 다섯 달 동안 차 한 대 안에서 몇 달 동안 생활할 때 필요한 모든 물건들과 함께, 매일 호텔을 바꾸어가면서 여행을 했다. 다행히 그들이 쓰는 글은 미국의 여행 가이드북과 관련해서는 제일 큰 출판사인 프롬머에서 출판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묵었던 호텔과 방문하는 음식점, 여행하는 장소들은 모두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 숙소를 옮겨 다녀야 했고 가이드북에 맞는 여행지 근처에 있는 숙소를 자신들이 직접 찾아야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 챙기는 것도 바빠 제대로 빨래 한 번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책에서 나온 내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 중 하나인데, 옷을 제대로 빨지 못해 네 가족에게서 모두 다 냄새가 났고, 차 안에서 먹고 나서 버린 음식들과 먹다 버린 것들(네 살, 두 살 아이들이니까)에서 나는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얼마나 심했으면 여행 책자를 건네주려던 사람의 얼굴 표정에서 감출 수 없었던 냄새의 당혹스러움’, ‘냄새의 역겨움을 작가가 보았노라고 했다. 그 다음 번에는 차 안에 얼굴을 넣지 않고 바깥에서 손으로 건네주었다고. 또 사고가 나서(작가 차량의 잘못이 아니다) 차가 심하게 훼손돼 폐차해야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는데, 이들의 어린 딸 피비는 새 차에서(렌터카)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냄새가 나서 차를 바꾼 거야?”고 묻기도 했다. 처음에는 냄새가 나지 않았던 그 차에서도 나중에는 스멀스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작가의 독백이었다. 작가 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같은 병으로 돌아가시게 됐다. 암이었는데, 얼굴과 눈이 노랗게 변하자 걱정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던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병명이 암이라는 것과, 남은 날은 몇 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이드북을 쓰기 위해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벤은 여행 중 틈틈이 아버지를 뵈러 갔고, 전화도 했을 뿐 아니라 편지도 쓰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병원에서는 항암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나중에는 항암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벤과 그의 가족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검사결과로 항암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참 가슴 아픈 말을 한다. “아버님이 몇 달이나 살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몇 주 남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아드님께는 며칠 남았다고 말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진심으로 유감입니다.”(417)

이 부분을 읽는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작가는 결국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한 뒤 곧바로 복귀해 여정을 계속한다. “아버지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벅차게 부풀어 오르는데, 그래서 전화를 걸어 이야기하고 싶은데, 순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더는 전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깊이 절망했다.”(478) 여행 중의 즐거운 소식이나 앞으로 갈 곳들에 대한 이야기꽃을 아버지와 피웠지만 더는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벤은 진심으로 절망한다. 이 책을 집필하느라 또다시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겼을 작가의 진심어린 고백이 읽는 나에게도 전달될 만큼 진정성이 있었고, 그것을 느끼고 나도 함께 절망했다.

우여곡절 가득했던 여행길. 영국을 한 번도 방문한 적 없었던 나이기에, 또 이런 부류의 책일 것이라고는 예상치도 못했던 나에게 이 책은 참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가이드북을 집필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심마저 생겼다고 해야 할까.

책을 덮는 순간, 끝났다는 기쁨과도 함께 여태껏 벤의 가족들의 여행길을 함께하면서 이렇게 끝났다는 허무함이라는 감정이 함께 몰려왔다. 여행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벤의 여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고 여행이다. 계획은 세워두었지만 돌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하고, 원하지 않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슬픔, 기쁨 등 다양한 감정들도 느낄 수 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재미있고도 유쾌한 벤과 그의 가족들의 여행이었지만, 동시에 마음 아픈 일들도 일어난 것을 함께하게 되어서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벤의 가족은 또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될까 기대를 하면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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