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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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이 책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나는 두려움이라고 하겠다. 남성우월주의로 가득한 196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의 모습을 읽으며 그 당시 여성들을 향한 동정과 연민 가득한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레누는 그 당시 여성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날은 우리 동네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들은 신경질적이고 남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존재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게도 그때 당시 이들의 나이는 기껏해야 나보다 열 살에서 스무 살 정도 많은 정도였다. 그럼에도 여성스러운 매력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어머니들은 남편과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의 육신에 잠식되어 날이 갈수록 외모까지도 그들을 닮아갔다.’(137)

이 대목을 읽는데 내 입에서는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레누의 나이가 당시 열일곱 살 정도 되었을 테니 마을의 어머니들은 기껏해야 서른 후반 정도 된 여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린 시절의 여성성을 잃고 남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존재들이 되었다는 것이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사악함의 끝을 보여주는 스테파노가 아내 릴라를 강간하면서 이때 굴복시키지 않으면 평생 굴복시키지 못한다.’ 라고 생각하는 대목에서는 당시 남성들이 여성이라는 존재들을 얼마나 하찮게 취급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스테파노의 잔인함, 그리고 악랄함으로 릴라는 자신이 결혼으로 자아를 망쳤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혼으로 모든 것을 잃은, 순수하게 아름다우면서도 지적인 능력마저 뛰어났던 릴라. 갖고 있었던 게 많은 사람일수록 그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 자신의 망가져버린 자아를 자신만의 예술로 승화시켜 버리는 릴라를 보면서, 그 대목을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읽는 사람마저도 안타깝게 만드는 릴라의 뛰어난 능력이, 스테파노와의 결혼을 통해 모든 것이 잠식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릴라 본인도, 작가도 암시적으로 풀어낸 대목이 아닐까 싶었다.

겉으로는 완벽한 삶을 살고 있었던 릴라에게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열등감을 갖고 성장하는 릴라의 오래된 친구, 레누. 심지어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릴라에게 학업과 관련된 열등감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을 끝없이 낮추는 레누를 보고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오랜 시간동안 짝사랑하고 있었던 남자를 유부녀인 릴라에게 빼앗기면서도 용감하고 열정 가득한 사랑을 할 줄 아는 릴라와 자기 자신을 비교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레누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훌륭한 삶을 일구어냈고, 열등감으로 인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었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에 살고 있었던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세밀한 감정묘사까지 풍부하게 기록해놓아 마치 내가 레누와 릴라가 살았던 시대를 경험하는 듯 한 느낌을 가졌다. 베일 속에 감추어진 작가라는 말 자체가 나를 호기심 가득하게 이 책을 읽도록 하였는데, 책장을 덮고 나서도 레누와 릴라의 뒷이야기, 그리고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계속 궁금해지게 만든다. 부디 두 사람이 각자의 두려움을 딛고 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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