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코의 모험
미시마 유키오 지음, 정수윤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쿄 부잣집 딸로 태어나 미모와 지성과 수많은 구혼자를 거느린 나쓰코. 열렬한 사랑과 애정의 고백에도 나쓰코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모두 거절한다. 아아, 누구와 함께해도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거나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없어. 남자들은 입만 열면 시대가 틀렸다느니 사회가 문제라느니 말이 많지만, 자기 눈 속에 정열이 없다는 게 제일 나쁘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어. 나쓰코는 무언가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한탄하며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한다. 가족들이 모두 다 반대하며 들고 일어났으나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수면제를 먹고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한 나쓰코. 그 무엇도 그를 수도원을 가기 위한 여정길에서 방해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배에서 한 청년의 눈빛을 보고 나쓰코의 목적지는 수도원에서 이탈한다. 나쓰코는 깊이 감동했다. 지금까지 어떤 청년의 눈에서도 이만큼의 감동을 찾아낸 적은 없다. 도시의 젊은이들은 경박하고 텅 빈 공허한 눈, 음탕하고 차가운 눈, 어린애 같은 토끼 눈을 가졌지만,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저 눈이야말로 정열의 증거였다. 


나쓰코의 눈길을 사로잡은 정열적인 눈의 소유자, 츠요시. 그에게는 복수해야 할 대상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곰이었다. 식인 곰. 츠요시가 깊이 애정했던 한 여자를 해친 그 곰에게는 한쪽 발가락이 넷만 있다는 특징이 있었는데,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마다하고 그 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여정길에 오른 것이었다. 깊은 혼돈 속에서 비치어 드는 듯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무언가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아무튼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오전의 해협에 비치는 밝은 빛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현상 너머에 있는 분명치 않은 그림자를 쫓고 있는 듯한 깊은 눈동자다. 그 눈에 반한 나쓰코는 자신도 위험한 모험에 참여하겠다며 떼를 썼고, 결국 츠요시와 함께 곰 사냥을 떠난다.


왜 나쓰코의 모험일까. 결말을 읽기 전에는 왜 츠요시는 포함돼 있지 않는 것일까 궁금했다. 츠요시야말로 곰 사냥의 주체이자 복수를 해야 하는 대상을 가진 모험의 주체라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쓰코가 찾고자 했던 것은 단발적인 정열이 아니고 끊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름답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청년의 눈 속에 정열은 흔적도 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눈의 반짝임이다. 아침저녁 통근 전차 속에서, 퇴근길 긴자 주변에서, 어디서든 쓸어 담을 만큼 널려 있는 청년의 눈이다. 젊어서 빛난다. 그것뿐이다. 정열, 무언가에 흠뻑 빠진 사람의 눈빛은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그 빛은 주변 사람을 감화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처음에는 세상 곱게 자라 단순히 투정 부리는 부잣집 아가씨 정도로만 보았다. 하지만 나쓰코에게는 사람의 눈에서 정열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매사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도전 정신,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봐 준 유일한 사람일 나쓰코. 책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나쓰코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쓰코 본인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열정이 끊임없이 샘솟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계속 청춘에 머물게 하며, 열정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서서히 늙어가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히 청춘일 나쓰코. 책을 읽는 내내 나쓰코가 내게 물었다. 네 눈은 정열로 반짝이고 있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