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 과학자의 초상 - 편견과 차별을 넘어 우주 저편으로 향한 대담한 도전
린디 엘킨스탠턴 지음, 김아림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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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디 엘킨스탠턴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폭력과 학대로 군데군데 얼룩진 유아 청소년기, 여학생 수가 매우 적었던 80년대 공과대학 MIT에 진학한 뒤 자존감을 잃은 청년기를 겪었고, 첫 번째 결혼은 실패하기도 했다.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의 틀에 자신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안 린디는 극심한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고,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서 불합리한 일을 마주하며 공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린디를 과학, 특히 지질학 연구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다. 지질학과 방대한 지질학적 시간, 행성의 성장 과정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취약성과 실패를 덜 위험한 것처럼, 그리고 결국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린디는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 남편 제임스와 아들 터너, 그리고 자신이 제시한 과학계의 협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며 굳건히 설 수 있었다. 


과학자로서 연구를 위한 표본 채취 목적으로 러시아에 방문했을 때 일 인분을 넉넉히 감당하는 과학자가 아닌 그저 도움을 주어야 하는 여성으로 인식되었던 경험, 비록 종신 교수직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나 커리어를 걸고 성적으로 학대받은 학생들의 편에 서서 학교와 싸운 일, 그동안 학계에서 당연시되던 부조리에 이의를 제기하며 변화를 촉구했던 순간…. 윤리적인 의무와 법적 강제 때문에라도 내가 최종적인 핵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졌다. 소설가 아나이스 닌은 인생은 나의 용기에 비례해서 넓어지거나 줄어든다고 했다. 나는 내 인생을 넓히는 중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인생을 넓혀가는 린디를 보며 뿌리가 깊이 박힌 나무 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리 태풍과 비바람이 몰아쳐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 자신이 몸담은, 어찌 보면 정말 폐쇄적인 학계를 더 좋은 쪽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결국 연구 분야의 모든 노력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람들의 상호 작용, 경쟁, 협력, 그리고 사람들이 반응하고 자기만의 결론을 형성하는 것까지가 포함된다. 이 멋진 과학자를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진정한 리더에 관한 것이었다. 자료 공유를 꺼리고 공동 연구도 원활하지 않은 과학계에서, 린디는 하나의 큰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된 분야 사람들과 여러 그룹을 결성해 연구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시베리아 범람현무암이 생성되던 분출 과정이 페름기 말기의 대멸종을 야기했다는 사실을 성공적으로 입증해 냈다. 또한 한 사람이 진두지휘하는 영웅 모델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큰 질문을 던져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방식을 개발하고 적용한 프시케 프로젝트를 이루면서 여러 사람의 상호 작용, 그리고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린디 엘킨스탠턴의 <젊은 여성 과학자의 초상>을 다른 말로 정의하자면, <랩걸>의 우주 및 지질학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편견과 차별이 없을 것으로 포장되는 미국에 백인 여성이 과학자로 또 개인으로 겪은 크고 작은 일들을 보며, 역시 이 지구에 완벽한 곳은 없음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러나 책 초반의 배경보다는 결말이 훨씬 더 희망찼으므로, 아직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한 해를 이렇게 멋진 책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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