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달
하타노 도모미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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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지사로 근무하고 있던 스물여덟 살의 가와구치 사쿠라는 손님으로 만난 마쓰바라가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며 관심을 표하자, 그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 오랜만에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어 들뜬 것도 잠시. 만난 후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사쿠라는 마쓰바라의 본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이상적인 여자 친구 모습에 사쿠라가 맞추기를 강요했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은 채 제 생각만 강제했다. 결국 사쿠라는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렇게 끝났으면 참 좋았으련만, 마쓰바라는 사쿠라를 스토킹하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강압에 못 이겨 억지로 자신에게 이별을 고한 것이라 믿으며. 


<지지 않는 달>이 그려내는 스토킹 범죄의 끔찍한 진실은 스물여덟 살의 생기 넘치는 젊은 청년을 한순간에 바스러질 것처럼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는 가해자에게서 오는 일차적인 가해뿐 아니라 주변에서 수군대는 이차적 가해를 통해 더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사쿠라는 이별 이후 직장을 잃었고, 집을 여러 차례 떠나야 했고,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고서는 밖을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절망하고 있는 피해자를 도울 수 없을지언정 제대로 처신하지 못해 그런 일이 일어났음을 책망하는 인물, 그리고 그로 인해 더 구렁텅이에 빠지는 사쿠라가 <지지 않는 달>에 묘사되었을 때는 뜨끔했다. 혹시 나도 내심 사쿠라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짐을 하나 더 얹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인 사쿠라, 스토킹 범죄자 마쓰바라의 관점으로 번갈아 진행되는 <지지 않는 달>. 너무 사실적이라 읽는 게 벅찼고, 심적으로 힘들기까지 했다. 큰 피해가 생기지 않는 이상 그 심각성은 인지되지 않고 법은 개정되지 않는다는 말. 결말을 읽은 후 다시 생각하니 씁쓸하기까지 하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는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피해자 사쿠라뿐 아니라 읽던 내게도 생각의 전환점이 된 구절. 나쁜 건 그 남자예요. 그 남자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일이에요. 이런 짓을 하는 놈이 나쁜 거예요. 가와쿠치 씨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유난스럽다느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요. 아니, 이 일은 유난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마땅해요. 아무 일도 없으면 그걸로 다행인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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