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조종사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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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한 사람의 삶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식이라.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서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일단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많이 나눠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꼭두각시 조종사>의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해 편지치고는 제법 길었던 내용을 다 읽었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인생도 있는 법이다. 


2001년. 에리크 룬딘이라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장례식에 참석한 ‘나’. 신문의 부고를 보면 꼭 장례식에 참석한다. 문제는 고인과의 관계를 거짓말로 꾸며내 장례식장에 참석한다는 거다. 이번에는 추모식장에 늦게 들어가 유족 테이블에 합석하기까지 한 ‘나’. 거짓말이라 언제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꾹 닫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나’는 고인의 제자였다며 장례식장에서 언어의 어원에 관해 이야기를 하며 지식을 뽐낸다. 장례식장에서 거짓말에, 잘난 척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우리의 주인공.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삶을 산다는 것은 서사의 한 장르입니다. 장례식에 매번 참석하는 것은 나름 ‘나’의 중요 일과다. 그런데 갈 때마다 에리크 룬딘의 유족을 계속 마주쳐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탄로 나게 생긴 ‘나’의 진짜 정체. ‘나’가 계속 장례식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악습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족의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올해를 반추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고, 그렇게 될 거라 믿었다. 연말을 장식하기 딱 맞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내 기대가 무색해졌다. 오히려 실망감만 가득하더라. 누군가의 삶을 결코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사랑을 원했지만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던, 그래서 계보 있는 언어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 장례식장에서만이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꼈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이 주인공의 거짓말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마지막에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주인공의 말 그 어느 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훌륭한 ‘소설가’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흠뻑 빠져들었을 정도로 그의 이야기는 생동감 넘쳤고, 거짓말이었지만 흥미진진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언어학자가 아닌 소설가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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