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능력 있고 성실한 데다 열정까지 갖춘 로펌 최고의 변호사, 솔렌. 탄탄대로를 계속 걸을 것만 같았던 그의 삶과 커리어에 갑자기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번아웃. 의뢰인이 유죄 판결을 받고 나서 자살을 했다. 그것도 솔렌이 보는 앞에서. 충격, 트라우마와 함께 무기력이 솔렌을 찾아왔다. 삶의 모든 의욕을 잃은 솔렌. 의사는 그에게 살아갈 이유와 일해야 할 이유를 다시금 되찾으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봉사활동이 최고라고. 솔렌을 다시금 일으켜 세운 단어는 바로 작가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을 꿈꿨던 어린 솔렌의 뜻은 비록 부모의 반대로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이젠 남는 게 시간이니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피난 와서 지내는 곳이 있어요. 여성 전용 쉼터죠. 그곳에서 일해 보는 게 어떨까요? 여성 궁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쉼터에서 대필 작가로 봉사하게 된 솔렌. 버려지고 상처받은 여성들이 머무는 곳이라 그 누구도 쉽게 솔렌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시간을 버리는 건가, 싶었을 때, 솔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온다. 처음엔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함께 마주하게 되었을 때, 솔렌은 분노한다. 여태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돕기 시작한다. 그게 심지어 허황된 일이라 하더라도. 


빈티의 목소리가 솔렌에게 스며들어 섞였다. 마치 받아쓰기처럼 솔렌은 그 목소리를 언어로 쏟아 냈다. 그것은 한 영혼이 스며들어 와 불러 주는 묘한 노래였다. 참 신기한 일이다. 번아웃으로 고통받던 한 여성이 여성 궁전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이겨낸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심지어 여성 궁전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들은 할례를 당했거나, 마약 중독자였거나, 한때 노숙인이거나 매춘부였다. 세상은 그들에게 매정했다. 하지만 여성 궁전은 그들을 품어주었고, 다시 삶의 의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여성 궁전에는 삶에 대한 갈망을, 계속해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몸짓들이 있을 뿐이었다. 


여성 궁전이 저를 구했어요. 이제 제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어요. 오랜만에 연대의 이야기를 읽었다. 이 말이 마치 솔렌의 고백이 될 것 같아 읽는 내가 다 뿌듯했다. 서로의 구원이 되어 주는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소중한 집, 궁전이길 바랐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러한 꿈을 가지고 여성 궁전을 세운 블랑슈가 이 고백을 들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세 갈래 길>도 그랬지만, <여자들의 집>도 참 좋다. 따뜻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