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The Power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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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는 나무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했으면서, 표지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군인 징집하는 포스터 느낌이 강했다.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걸까, 이걸 노린 걸까 잠깐 고민했다. 너무 강렬한 빨강이라서 더. <파워>는 독특하게 시작한다. 인트로에 ‘닉’이라는 작가와-누가 봐도 남자- ‘나오미’라는 편집자-누가 봐도 여자-가 주고받은 메일이 짧게 등장한다. 작가 ‘닉’이 쓰고자 하는 소설은 남자가 여성보다 힘이 센 설정인데, 그런 설정이 말도 안 되지만 신선하다고 마음에 든다는 편집자. 이거 혹시 작가가 들었던 말일까? 말도 안 되지만 신선하다는 거. 


핀과 바늘이 온 팔을 찌르는 느낌이다. 등에서 쇄골로, 목에서 팔꿈치, 손목으로, 손바닥으로, 바늘로 따끔하게 찌르는 듯하다. 피부 속이 빛난다. 소녀들에게 파워가 생겼다. 아니, 생겼다는 말보다는 각성했다는 게 더 맞겠다. 성폭행에 늘 노출돼 있었던 앨리는 파워를 이용해 악마의 굴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록시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엄마의 원수를 갚는다. 툰데는 우연한 기회에 소녀들의 파워를 동영상으로 찍어 떼돈을 벌게 된다. 마고는 파워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면 일자리를 잃을 것이 뻔해 능력을 감춘다. 파워를 깨우친 소녀들은 사회 혼란의 주범으로 지목됐으므로. 


처음에는 한 명이, 다섯 명이, 오백 명이 되고 마을과 도시가 되었다가 나라를 이룬다. 새싹에서 새싹으로, 이파리에서 이파리로.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소녀들의 파워는 점점 세졌다.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힘을 깨우쳤고, 자신들을 억눌렀던 힘에 대항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자 대 남자, 남자 대 여자. 어머니 이브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앨리를 필두로 소녀들이 모였다. 그리고 조직을 결성했다. 모든 여자들을 구하는 조직을, 그런 나라를 꿈꾸는 조직을. 


나는 이미 이쪽 세계관, 그러니까 현실에 너무 안주하며 살았나보다. 그냥 어색하다. 이 모든 말과 대화와 설정이. 잔인해서 왜 사람들이 이 책에, 이 능력과 힘과 이 <파워>에 열광하는 걸까 의아하기만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파워>에 있었던 모든 일은 늘 우리 곁에, 우리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다만 이질감의 이유는, 성별의 차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피해자로 있었던 여성들이 갖은 고초 끝에 숨겨진 힘을 찾아내 복수혈전을 벌이는, 정의를 구현하는. 


젠더는 셸 게임입니다. 남자가 무엇입니까? 여자가 아닌 모든 것이죠. 여자는 무엇입니까? 남자가 아닌 모든 것이죠. 껍데기 아래를 보세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파워>를 읽는 것 자체를 꺼릴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읽기 주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파워>의 의도는 성별을 나눠 싸우자는 것도, 싸움을 부추기는 것도 아니다. ‘여자에게 힘을 이만큼 줘야 해!’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차별과 싸움을,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성별 일들을 꼬집는 책이다. ‘닉’의 말처럼, 껍데기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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