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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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은 다음 곧바로 감기를 심하게 앓은 영향 때문이 분명하다. 나는 왜 제목 <붕대 감기>를 ‘붕대를 감다.’ 할 때 그 붕대 감기라고 이해하지 않고, ‘붕대’와 ‘감기’를 각각 다른 단어로 이해했을까. 지금 보면 분명히 붕대를 감는 것인데, 왜 한구석에 ‘붕대 + 감기’라고 적어두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여러 면으로 봤을 때 나에게 <붕대 감기>라는 책 자체는 무척 독특했다.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으리라. 여기서 질문. 그렇다면 <붕대 감기>는 뭘 뜻하고 의미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지상의 삶에 밀착되어 자갈과 흙과 모래들만 바라보는 사람이 된 거야? 그들은, 진경과 세연은, 한때 ‘단짝 친구’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친했다. 어떻게 무슨 사건을 계기로 급격히 친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학생다움을 강조하며 화장을 금했던 당시에 세연이 화장을 하고 다녀 고등학교 생활 내내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시절 모두가 좋아했던 아이 진경이 세연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거였다. 글을, 아니 그냥 사람 자체를 서로 존경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세연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걸 느낀 진경. 너만의 특별함. 너만의 느낌. 그런 게 다 사라졌다. 너의 글에서. 


진경은 거울일 뿐이었다. 세연은 진경을 통해 잊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불완전한 모습을 부끄럼 없이 글로 표현하는 진경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은 극복한, 사실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린 것이다. 27년 전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 붕대를 들고 서 있던, 단지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고,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어서 엉거주춤 서 있던 어린 자신을. 그래서 진경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친구 하나 없던 나에게 손을 뻗어준 은인이더라도. 존경하는 친구더라도. 이유는 단순했다. 세연은 자기 자신을 한없이 미워하고 있었으니까. 


이게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건 다 읽고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등장인물이 모두 다 여자라 혹시 했는데 역시였다. 나는 페미니스트 관련 책을 찾아 읽는 스타일은 아니다. 서평을 부탁받은 이후 접하게 되는 게 전부인데, 그 이유가 사실 아직은 여성 차별과 관련된 일들을 삶 속에서 체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피해자 시선, 혹은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을 두둔하는 문체로 쓰인 책들은 읽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붕대 감기>는 달랐다. 어디까지가 차별이고 어디까지가 꼭 필수적인 요소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인지, 그 경계를 헤매는 청년들의 모습도 있었고, 경계가 수없이 그어져서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격차를 바라보며 젊은 세대에게 넘어갈 수 있을까, 내 말과 행동이 차별은 아닌 걸까 고민하는 멋진 옛 세대 어른들의 모습도 있었다. 


<붕대 감기>는 진경과 세연을 필두로 그들의 주변과 이웃에서 벌어진, 일상적이지만 큰 영향을 끼친 일들과 그걸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어느 페미니즘 소설보다 ‘넘침’과 ‘부족’ 사이의 ‘중용’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고백이 담긴 책이라 더 정이 가는 책. 감정적으로 휘두르지 않고 담담하게 할 말만 하는 식의 문장인데 그 자연스러움이 너무나도 좋았던 책. 나는 <붕대 감기>를 통해 책 내용과는 그리 관련 없는 교훈을 하나 얻었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 담담한 문장 하나가 때론 훨씬 더 큰 여운을 남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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