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손을 보다
구보 미스미 지음, 김현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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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풀을 내가 베어줄까? 그러니까, 내가 풀을 베게 해주면 안 될까?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스물 네 살의 히나.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히나를 혼자 도맡아 키워주신 할아버지께 은혜를 갚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적성에 제법 잘 맞았다. 도움을 주려 참여하게 된 홍보 촬영에서 우연히 디자이너 미야자와를 만나게 된 히나. 하나뿐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엉망이었던 히나의 정원을 미야자와가 가꿔주게 되면서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된다.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던 미야자와. 언제든 마음을 먹으면 미야자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점점 중독되는 마약처럼, 난 어느새 미야자와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과연 히나와 미야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가만히 손을 보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사랑과 관련된 아픔이 있다. 어린 시절 부족했던 사랑, 사랑의 결핍은 평범한 사랑을 향한 걸림돌이 되었다. 등장인물 모두에게 이러한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아무와도 마음을 깊이 통하고 싶지 않다. 타인에게 나 자신을 이해받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 나는 누군가와 마음을 서로 통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고백하는 미야자와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단지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히나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정착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이 정착의 끝이 결국 도피가 되고, 권태기를 느끼며 이별을 통보했으니까. 미야자와에게 있어서 히나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이 누군가와 마음을 서로 통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히나를 원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만히 손을 보다>는 나오키상 최종 후보까지 갔다는 나름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최악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납득할 수 있다면 제법 만족스러워하며 읽는 편이지만, 책의 등장인물 모두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인간적이라고도 느끼지 못했다. 아이러니했던 것은, 가장 문란하다고 생각했던 마유미가 상대방을 생각해 먼저 이별을 고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다시 원점. 그래서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뭐지? 


나는 시간을 들여 정원을 말끔하게 다듬기로 마음먹었다. 오직 나 혼자의 힘으로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막대한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비록 하나의 사랑은 끝나버렸지만. 좋다.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치자. 하지만 꿈이 있다고 묘사하고 앞으로의 큰 발전이 있을 것만 같았던 히나의 뜬금없는 엔딩은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온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차례 거절했던 사람과의 재결합을 암시하는, 심지어 상대방이 거절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와중에 무척이나 관계 회복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히나. 이건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나오키상 최종 후보작이라는 말에 무척 기대하며 읽었던 작품이라 실망이 배로 컸던 <가만히 손을 보다>. 하지만 요양 보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주 장르는 분명 로맨스였는데, 이도저도 아니게 끝이 난 것은 아마 작가가 의도한 거였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도저도 아닌 것,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이 인생이고 사랑인 것이고, 매일의 삶 속에서 겪어야 하는, 어쩌면 숙명이 아닐까 싶다.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거라고 믿고 싶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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