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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씽 인 더 워터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가방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운명과도 같았던 첫 만남 이후, 순조로운 연애를 거쳐 결혼한 신혼부부 에린과 마크. 두 사람은 신혼 여행지인 보라보라 섬으로 떠나던 중에 바다 한가운데서 수상한 가방 하나를 발견한다. 사방으로 망망대해뿐 아무것도 없다. 우리 주변 물속에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종이. 하얀 종이들이다. 이게 뭐야? 사방으로 수평선뿐이다. 물밑에는 작은 비행기가 가라앉아 있었는데, 가방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흔적 역시 바다 깊은 곳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추락한 비행기, 시체, 그리고 수상한 가방. 가방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가방에는 100만 달러어치 다이아몬드, 수상한 USB, 권총 한 자루, 그리고 100만 달러의 지폐가 들어 있었다. 가방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가방을 차지하기로 한 이후, 관련된 모든 정황을 없애버리는 데 성공하며 완전범죄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서던 바로 그때. 당신 누구야? 회색 점들이 진동한다. 깜빡. 깜빡. 깜빡. 가방의 주인이, 다이아몬드와 100만 달러, 그리고 USB의 주인이 에린과 마크를 뒤쫓기 시작한다. 가방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 너무 늦었다.
나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집과 남편, 그리고 가끔 떠나는 휴가. 좌석은 일반석이면 충분하다. 그냥 조용한 삶을 살고 싶다. 우리의 삶을. 여행 중 갑자기 바다에서 200만 달러를 가지고 있는 가방이 두둥실 떠올랐다면, 그리고 당신이 경제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다면, 200만 달러를 가지기로 한 뒤부터는 모든 초점이 오직 하나에 맞춰지게 될 것이다. 완벽범죄. 에린과 마크는 제법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흔적을 없애는 데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약간의 실수를 없애기엔 역부족이었다.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독단적으로 한 행동은 서로에게 불신과 화를 심기엔 충분했고, 서로에게 다정다감했던 신혼부부는 그렇게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제삼자보다는 에린과 마크의 불화와 불신이 마크의 죽음을 자초하는 원인이 된 게 아니었을까.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누군가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누군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살던 한 신혼부부가 수상한 가방과 그 내용물들을 가져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 <썸씽 인 더 워터>.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라 꽤 많이 기대했던 작품인데, 마구 몰아치면서 전개가 빨랐던 초반부와는 달리 이후 계속 늘어져 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숲 속에서 마크의 무덤을 파는 에린의 모습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실 에린의 뒤통수를 치고 그를 곤란하게 만드는 범인을 너무 빨리 알아낼 수 있었다는 점은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고려할 때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른 말로는, 도입부가 끝내주게 좋았다는 것. 도입부의 스릴과 그 여운을 끝까지 가지고 가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마도 당신이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매력적인 도입부, 실망스러운 전개와 결말의 연속이었지만 그런데도 <썸씽 인 더 워터>를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작할 때 에린이 나에게 던진 이 질문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을 때 무덤을 파고 있는 한 여자. 죽은 남자에게서 자신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주도면밀이 움직이는 에린의 모습은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이어 훅 들어온 질문. 과연 에린은 나쁜 사람일까? 나는 내 나름의 답을 찾았다. 에린은 가방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 열지 않았더라면 마크는 어떻게 되었을까? 에린과 마크는 완벽한 부부가 되었을까? 하지만 그랬더라면 <썸씽 인 더 워터>는 시작되지도 않았겠지. 원래 마피아나 그 어떤 암흑 세력보다 더 무서운 건, 적어도 소설 속에선, 바로 주인공의 호기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