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죽이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 이유도 딱히 없다. 사회의 쓰레기를 그저 한두 마리 처리하는 것뿐이다. ‘살인’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단편 <ABC 살인>. 주인공은 막대한 양의 빚을 지고 갚을 수 없게 되면서 주변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다. 우연히 옆 마을에서 발생한 두 건의 살인사건에서의 공통점-A 마을에서 이니셜 A를 가진 사람이, B마을에선 이니셜 B를 가진 사람이 묻지마살인의 희생양이 되었다-을 발견한 그는 연쇄살인사건으로 일을 꾸며 완벽범죄를 노린다. 연쇄 묻지마살인처럼 남동생을 죽이고 나는 잡히지 않는다. 이게 내 계획이다. 그런데 그가 간과한 한 가지 사실이 있었으니.. 아 참, 나도 도가야(D)의 단다(D)다……. 


회사는 나를 방치하고 있다. 나만이 엉거주춤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을 뿐이다. 마더컴이 편애한다는 차별 대우를 받는 채……. 미래 회사는 인사 채용과 승진, 발령 등을 컴퓨터인 ‘마더컴’을 이용해서 결정한다는 게 <사내 편애>의 배경이다. 약간의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이 컴퓨터에게 출근해 있는 내내 감시 아닌 감시를 받게 되는데, 주인공은 그 회사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다. 아주 드물지만 변덕이 극단적으로 한쪽에 치우치는 일이 있다. 분명 버그인데 원인은 모른다. 그렇다, 컴퓨터가 주인공을 극단적으로 ‘편애’하는 것이다! 마치 스토커처럼. 


죽은 자와 케이크와 파, 이 조합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은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의 입에 파 한 단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 케이크가 놓여 있는 기괴한 사건 현장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감을 잡을 수도 없는 이 독특한 조합을 바탕으로 범인을 검거해야 하는 경찰들. 범인을 추적하면 추적할수록 ‘파’의 이유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게 되어버린 바로 그 때, 불현 듯 들게 된 생각. 저는 범인의 의도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죽은 자가 성불하지 못하도록 그런 장식을 한 것이 아닐까. 


고양이 눈에는 마음 아픈 사람이 다 보인단다. 그래서 위로해주려고 하지. 휴가차 할머니 댁에 내려온 주인공은 할머니가 키우시는 늙은 고양이 미코와 뒹굴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존재, 미코. 그런데 깊은 밤만 찾아오면 반복되는 미코의 수상한 행동. 미코가 앉아 있다. 달빛만이 비치는 어둠 속에서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오도카니. 그런데 미코는 그저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엇다. 뭔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미코만이 홀로 ‘응시’하고 있었던 그것은 바로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밤을 보는 고양이>에서 확인하시길. 


시체의 머리 부분을 중심으로 하얀 것이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두부다. 세계2대전이 한창이던 당시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어떤 특별한 실험에 투입돼 괴상한 박사를 돕던 주인공은 우연히 죽은 동료를 발견한다.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말이 안 되는 것도 잘 알지만, 두부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억울하게도 첫 발견자인 주인공이 용의자로 몰리고 있던 상황인데, 정말 죽은 동료는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게 된 것일까? 


숨을 삼킨다. 누군가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모로이 실장의 후두부에서 피가 나는 게 아닌가. 머리카락이 젖었고 목덜미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다. 세상을 크게 놀라게 할 특별한 기술을 안전하게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임무를 띤 채 연구소로 향한 주인공. 무사히 기술을 받아 본부로 돌아가려던 그 때. 수상한 사람이 목격되고 침입자라는 생각에 그 건물로 접근하다가 실장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순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물, 양동이, 그리고 후두부의 상처……. 물이 들어간 양동이를 떨어뜨렸다. 모로이 실장의 머리를 겨냥해서. 하지만 범인이 도주할 법한 경로는 이미 다 차단돼 있었고, 워낙 보안이 철저한 곳이라 범인이 도주하는 것은 꿈꿀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기 직전인 주인공.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의 주인공과 주인공의 선배 네코마루는 범인 잡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추리와 미스터리 장르라지만 전혀 무섭지 않은, 섬뜩하다기보다는 ‘발상의 전환’, 혹은 ‘신선함’으로 대변될 수 있을 법한 책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에는 총 여섯 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물론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에 결론이라든가 결국 주인공들이 밝혀낸 진실들은 뻔하다고 생각될 만큼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심상치 않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은 이유는 뭘까. 나는 이 답을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속 네코마루 선배의 말 속에서 찾았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그래. 더 유연하게 생각해보자. 해답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찾아낼 수 있었다. 


제목부터가 말이 되지 않아 더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작가의 기막힌 ‘발상의 전환’에 박수를 보내게 만든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해답은 아마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가 주는 상황 그대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면 그 해답은 정말로 미궁 속에 빠질지도. 그렇지만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잠식시킨 고정관념,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당신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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