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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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독이 찬 지 오래로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었다가 모종의 독에 감염돼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나’는 그곳에서 새벽마다 기이한 소리를 듣는다.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성한 곳 하나 없는 옆 침대의 남자가 ‘나’와 단둘이만 있게 되면 중얼중얼, 속삭이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조몽구. 무언가에 홀린 듯 조몽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나’. 사흘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그의 이야기 전체는 다름 아닌 바로 ‘독’과 ‘독성’, 요컨대 이 세상에 미미한 독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려 애썼지만 잊지 못했고, 벗어나려 했지만 벗어나지 못했던 조몽구의 독과 독성에 대한 고백. ‘나’는 조몽구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던 말들을 회고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그의 이야기는 나를 흔들고 자극하고, 그리하여 깨워놓고 있었다고. 


나는 손과 이마로 온갖 독성을 흡수하고 있었어. 그건 그야말로 독이 독을 부르는 돌이킬 수 없는 악순환이었어. 그런데 그 낙인은 대체 누가 찍은 것일까. 태아 시절부터 조몽구와 독의 비극적인 인연은 시작됐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조몽구는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어린 시절부터 이마에 통증을 느꼈다. 손을 짚고 있으면 그나마 견딜 만했지만, 통증은 더욱더 심해져 어린 조몽구가 ‘괴짜’로 놀림 받는 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외톨이 생활을 지속하던 조몽구에게 도움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삼촌이었다. 독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삼촌은 어린 조몽구에게 독에 대해 설파한다. 세상에는 함부로 맛보았다가는 톡톡히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있지. 독이야. 독은 위험하지만 무척 흥미롭거든. 독에는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말이야.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그때 문득 그는 자신이 세상의 모든 독으로부터 공격당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온몸으로 세상 모든 독을 흡수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 중심에 이마가 있었다. 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성장한 조몽구의 삶은 어른이 되어서도 별다를 게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독을 더는 배척하거나 자신으로부터 빼내려 하는 게 아니라, 독과 함께하는 것을 택했다는 것, 독을 내뿜는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랑과 원한.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인생을 독과 연결지어 표현한 이 문맥에 꽂혀 그대로 읽기 시작한 장편소설 <독의 꽃>. 사실 죽음을 독과 함께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처음에는 <독의 꽃>에서 풍기는 특유의 으스스함이 낯설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독의 꽃이야. 


한마디로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독을 몸에 지니게 되고,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그 독을 더욱 키우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하고, 그러다가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게 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게 바로 <독의 꽃>의 내용이다. 조몽구라는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힘을 매우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물질은 독이며 독이 아닌 물질은 없다. 다만 올바른 용량만이 독과 약을 구별한다. 독과 약의 차이점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얼마나 사용하느냐’의 차이, 그 하나였다. 생각해보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에게 독이 되는 것, 그리고 약이 되는 것은 공존한다. 어차피 둘의 차이는 올바른 용량뿐이니까 문제는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비롯된다. 무엇을 얼마만큼 사용할 것인지. 조몽구의 선택은 우리의 앞에 놓여있다. 선택의 결과도 함께. 조몽구의 삶을 잣대로 삼아 그의 삶과는 다른 방향으로, 다른 독의 방향으로 흘러가 보는 것은 어떨까. 원래 독의 이야기에는 끝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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