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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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너프킨이 떠났어. 이제 가을이야. 가을이 찾아왔다. 무민과 그의 친구들이 사는 곳에도 역시 가을이 찾아왔다. 모두 각자 다른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무민 가족의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쓸쓸함의 대명사이자 외로움을 나타내는 계절 가을에 무민의 친구들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각자의 삶 속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움켜쥔 채 살아가고 있었던 여섯 친구들은 모든 아픔들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여름날의 무민 골짜기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그곳으로 향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정겨운 여름날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헤물렌은 무민 골짜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무민 가족은 늘 내 주위에 있는 존재 같았어. 그러니까 나무처럼 말이지. 아니면 물건처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자신들의 괴로움을 보듬어 줄 따뜻한 장소인 무민 골짜기는 휑하니 온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무민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무민 골짜기를 지키게 된 것은 상처투성이인 여섯 친구들. 외롭고 쓸쓸한 이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로 텅 빈 무민 골짜기를, 그리고 자신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게 될까? 


가을이 조용히 겨울을 향해 가는 시간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시간이자, 필요한 무엇이든 창고에 그득하게 채워 넣는 시간이었다. 가을 하면 쓸쓸함과 고독이 떠오르긴 하지만 또 동시에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늦가을 무민 골짜기>는 무민 가족의 친구들이 텅 빈 곳간에 수확물을 가득 채우듯 공허한 마음과 주인 없어 썰렁한 무민 골짜기를 어떤 이야기로 채우는지에 집중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계절의 변화,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부분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점점 더 짧아지는 가을을 그리워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언제나 그래 왔듯이 머무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어떻게 할지는 누구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포기할 방법은 없었다. <늦가을 무민 골짜기>에서 눈여겨본 것은 바로 주인공이었다. 다른 무민 연작 소설들과는 달리, <늦가을 무민 골짜기>의 주인공은 무민 가족이 아닌 이 여섯 친구들이었으니까. 이 친구들의 성장 소설이라고 바꾸어도 손색없을 만큼 말이다. 각자의 고통과 공허함을 극복해나가는 그런 이야기. 


위험한 단어들과 함께 동물은 점점 중요한 시점에 다다르고 있었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었다. 그 동물은 이제 더는 숨지도 않고 주위를 살피고 귀 기울이며 아무 두려움 없이 숲 가장자리를 따라 어두운 그림자처럼 살금살금 미끄러져 들어왔다. 나는 이 책이 ‘동물’들의 성장기로 보았다. 무민 가족의 따스함이 그리워 무민 골짜기로 찾아온 이들은 처음엔 무민 가족의 흉내를 낸다. 따스한 기억으로 남겨진 무민파파와 무민마마를 떠올리며 그들이 했을 법한 행동들을 서로에게 한다. 하지만 그 일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그들의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전에 느꼈던 따스함이나 포근함은 느낄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은 무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묻노라, 행복이란 무엇인가. 골풀과 갈대, 수렁을 떠나 항해하며 바다의 너른 자유를 그려 보는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다행히도 여섯 친구들은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는다. 무민 골짜기에서 머문 시간 동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등장인물들의 태도 변화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거였다. 무민이 아닌. 그 누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닌 나 자신이 되는 것. <늦가을 무민 골짜기>를 덮으면서 새삼 ‘좋은 사람’의 기준을 새롭게 느꼈다. 이렇게 무민 가족을 기억해주는 친구들이 많다니. 무민 가족들이 참 좋은 친구였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독자들이 아직까지도 무민 연작소설을 반기는 게 아닐까.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무민 가족과도 같은 사람으로 기억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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