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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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었다. 모든 걸 놓치고 있었다. 1983년 1월의 어느 날 저녁. 리즈는 영화관에서 <록키3>를 본다. 자신의 인생 영화를 만난 리즈.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던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매일 한결같고 단조로운 삶을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록키3>의 주인공 록키 발보아를 본받는 걸로 모자라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할 만큼 그 영화는 리즈의 삶에 아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영화관을 나설 때, 리즈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결심이 들어서 있었다. 록키 발보아처럼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공부를 더 할 것이다. 결심이 섰다. 의사가 될 것이다.


리즈의 인생을 절반으로 나눈다면, 아마 <록키3>를 보기 전과 본 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에는 포기했던 의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주체성을 띠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리즈를 막지 못했고, 그가 세운 확고한 뜻을 꺾지 못했다. 지난날의 꿈을 놓지 마, 그 꿈을 생생히 간직하며 싸워나가야 해. <록키3>의 주제곡 가사처럼, 포기했던 꿈을 다시금 꾸면서 삶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한 리즈. 훗날 의사가 되어 180도 달라진 인생을 바라보며 스스로도 감탄할 만큼 1983년은 리즈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어주었다. 1983년 1월의 어느 날 저녁 <록키3>를 보지 않았다면 그녀의 인생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마지막 히어로>의 작가 엠마누벨 베르네임은 20년간 100쪽 정도 되는 소설 다섯 권만 출간했다. 그중에서도 <나의 마지막 히어로>는 자전적 소설이고 작가 스스로도 가장 많이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할 만큼 여러 의미로 특별한 책이다. 실존 인물인 실베스터 스탤론과 영화 <록키3>로 한 사람의 삶과 죽음까지, 적은 수 페이지 속에 다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무척 놀라웠다. 이렇게 빠른 호흡으로 읽어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문장이나 이야기의 구조 자체가 꼭 필요한 것만 담고 추가적인 디테일은 과감하게 없애서 100페이지 안에 리즈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다뤘다.


<나의 마지막 히어로>를 읽으면서 나의 히어로나 나의 인생 영화, 혹은 ‘인생’ 무엇을 생각해보았다. 리즈에게 실베스터 스탤론과 영화 <록키3>가 그랬던 것처럼 영향력을 준 무언가가 과연 나에게도 존재할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 좋았던 책은 있어도 무언가를 읽고 내 인생이 리즈의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틱 하게 변화한 경험은 아직까지 없다. 그렇지만 내가 여태까지 만나고 읽고 경험했던 모든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고, 굳이 부정하고 싶지도 않은, 모두 소중한 하나하나의 삶의 조각들이라는 건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히어로를 꿈꾸면서, 리즈가 실베스터 스탤론을 그렇게 여겼던 것처럼 무언가에 ‘미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언가에 ‘미치는’ 건 사람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걸 또다시 <나의 마지막 히어로>를 통해 느끼게 된다. 아, 물론 좋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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