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의 신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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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10단 변속 자전거 같은 것. 거의 안 쓰는 기어투성이다. ‘거의 안 쓰는 기어투성이’, 심지어 어떤 기어가 무슨 역할을 하는 지도 잘 모르는 것. 나조차 나를 잘 알지 못하는 것. 그게 사람의 특징이고 나름 인생의 묘미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연약하고도 불완전한 것. 하지만 오늘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새로운 하루를 각자의 방식으로 시작하고 마감한다. 그리고 <막차의 신>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 특별히 막차를 탄 사람들을 조명한다. 만원 전철이 갑작스럽게 인사사고로 멈추어 서게 되었을 때, 전철 안의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흔한 일이다. 흔한 일이라니? 잠깐만, 인사사고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내릴 역, 다음 정차역인 K 역에서 어쩌면 지금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멈춘 만원 전철에 타고 있던, 혹은 그 만원 전철과 관련이 있는 일곱 개의 단편이 수록된 <막차의 신>. 만원 전철 안에는 치한을 만난 의문의 여성이, 마감에 쫓기고 있지만 휴가를 명령받아 얼떨결에 쉬게 된 엔지니어가, 운동선수와의 사랑을 고민하고 있는 여성이, 이발사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회사원이, 여장 남자의 충격적인 과거 이야기를 듣는 연인이 타고 있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삶의 고민으로 번민하는 그들에게 주어진 뜻밖의 시간. 만원 열차 안에서, 그것도 막차에서, 그들은 각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인사사고는 일상다반사다. 전철을 타고 있다는 일상. 인사사고라는 일상. 느낌이 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죽음과 가까워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매일의 소중함을 느낀다. 인사사고로 전철이 정차된 뒤에야 느꼈던 일상의 소중함. 삶과 밀접한 ‘전철’이라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일곱 단편 속의 등장인물들이 느낀 감정들에 몰입시켰다는 것도 <막차의 신>의 매력적인 부분이다. 전철 안에서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봤을 감정들과 걱정들이 글로 나열되어 있어서 마치 나의 삶과 기분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평범한 전철에 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은 전철 안에서 개성을 죽이고, 사람 형상을 한 물체처럼 그저 조용히 처박혀서 실려 간다. 이 문구를 읽고 무언가를 끼적이게 되었다. 제목과 연관 지어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철 그리고 사고를 떠올렸다. 전철을 인생이라고 본다면 전철의 막차는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전철에서 사고는 꽤 빈번히 발생하는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차의 신> 마지막 부분에 스크린도어가 등장하는 게 아닐까. 더 이상 ‘전철의 막차’로 눈물짓는 사람이 없도록.


전철 안에서는 누구나 엇비슷한 부피를 차지하는 ‘승객’이다. 작가가 <막차의 신>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사회’라는 전철을 타고 ‘나’라는 개성을 숨긴 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처럼 삶에 회의감이 들거나 ‘전철의 막차’를 기다리게 되었을 때,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부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해주길. 인생과 달라서 복서의 라운드는 단 3분뿐이야.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면 반드시 공은 울려. 지금 버티면, 참아내면, 반드시 다른 문이 열릴 거야. 전철에도, 우리 삶에도 문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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