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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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무리 임신 중이라고 해도 젊은 여성이 이렇게 호흡곤란을 겪는다는 건. 단순한 독감이라고만 생각했다. 카린의 고열과 기침, 그리고 약간의 호흡곤란을 의사들은 임신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카린의 상태가 악화되고 급성 호흡부전으로 급하게 병원을 찾자 의사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톰에게 쏟아낸다. 급성 백혈병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카린과 톰의 첫아이의 탄생과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 환자가 죽어가고 있어요. 믿기 힘든 사실이 톰에게 전해졌다. 카린, 나 여기 있어.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이겨낼 수 있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겁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카린은 가장 먼저 아이의 안위를 살핀다. 그 무엇보다 아이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렸을 카린. 생과 사를 오가는 와중에도 엄마는 엄마였다.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그 어떤 시도보다 생명의 탄생을 우선시하기를 바랐다. 다량의 혈관수축제, 심한 혈액순환 장애, 여러 장기의 기능 부전, 신체 모든 구멍과 막에서 심한 출혈, 경색. 카린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됐고, 제대로 된 항암치료조차 시도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은 망가져 있었다. 다들 서둘러요. 환자가 죽어가고 있어요.


같은 의사를 대하듯이 제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바라는 건 그것입니다. 톰은 의외로 침착했다. 카린이 원하는 바를 알았고, 그 뜻에 따라 톰과 카린의 아이 리비아가 태어났다. 삶과 죽음, 그 간격은 리비아와 카린 만큼이었다. 한쪽에서는 새 생명이 태어났고, 한쪽에서는 다른 생명이 사그라들기 직전이었으니까. 지도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폭이 약 30미터에 해당한다. 나는 리비아와 카린의 병상 사이를 허공에서 가늠해본다.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톰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딸을 품에 안게 되었을 때 깨닫게 되었다. 그 간극을.


나는 그때 너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너는 이제 세상에 없는데. 카린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좀 더 그녀를 이해하게 된 톰. 인생에서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카린의 죽음에 슬퍼할 틈도 없이 그녀의 모습이 얼핏 보이는 사랑스러운 딸 리비아의 현실 육아가 시작됐다. 엄마의 빈자리를 홀로 채우게 된 톰. 삶과 죽음의 간극을 깨닫게 된 후, 카린의 죽음과 육아 사이에서 톰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공허함을 느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여 년간 투병을 이어가던 톰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내가 지금처럼 증오에 차 있었던 적이 없다. 방향도, 의미도 없는 증오다. 


한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닥쳤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은 저자 톰 말름퀴스트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아내의 죽음과 딸의 탄생, 그 사이를 오가면서 여러 감정을 표출하는 톰.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또 동시에 딸 리비아에게 관심과 애정을 부어준다. 카린과 리비아, 두 사람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부어준 톰.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함으로서 톰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살아 있는 모든 순간, 매 순간 서로를 사랑하라는 게 아니었을까.


나는 아이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악몽을 꾸고 침대에서 뛰어나와 너를 부른다. 아이가 사라져버렸다고 소리를 질러대다가 내가 지금 아이가 태어나기 전, 네가 아직 여기 있을 때의 꿈을 꾸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고 나니 무엇이 악몽인지 알 수가 없다. 딜레마에 빠진 듯한 모습도, 괜찮은 것처럼 보이다가 전혀 괜찮지 않아 하는 모습도, 모두 다 인간적이고 언젠가 내가 느꼈던 감정이라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 책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삶의 덧없음과 평소의 귀중함을 동시에 깨닫게 해 준 책. 있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라는 작가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와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심이 전달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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